매화, 동백에 이어 벚꽃이 한창인 남도 사찰에 현대미술의 꽃이 활짝 피었다. 한반도 남쪽 끝에 자리 잡은 전남 해남 미황사에서 새봄 미술축제가 한창이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달마산 자락의 ‘천년 고찰’ 미황사에 새로운 미술공간이 문을 열었다. 이 사찰의 입구, 대웅전 건너편에 자리 잡은 자하루미술관의 개관기념전 ‘땅끝 마을 아름다운 절, 미황사’전이 지난달 말부터 5월 말까지 두 달여 펼쳐진다.
절 주변이 온통 붉은 신태수 씨의 그림과 절 위로 부엉이와 보름달이 떠 있는 안윤모 씨의 작품(사진)에는 이른 봄 미황사를 둘러싼 동백숲의 장관이 담겨 있다. 홍선웅, 박방영 씨의 작품은 인도의 불상과 경전이 전해진 미황사의 창건과 설화를 주목했다. 오원배 씨는 프레스코 기법의 불화를, 이인 씨는 대웅전 벽화인 천불상을 입체화한 나무불상을 선보였다.
미황사와 행촌문화재단(이사장 김동국)이 마련한 자하루미술관 개관전에는 이밖에 김선두, 김억, 김천일, 서용선, 송필용, 윤석남 씨 등 지난해 이 절에 체류하며 주변 풍광의 영감을 화폭에 펼친 작가 32명의 신작 60여 점이 나왔다. 출품 작가 중 이종구 씨는 미술관 개관에 앞서 지난해 10월 ‘미황사-절집 기행’이란 제목의 개인전을 통해 미황사 시리즈 30여 점을 절 곳곳에 내걸었다. 이번 전시엔 한밤 달빛 아래 달마산 불상들이 반딧불이처럼 빛나는 ‘만불산’을 발표했다.
성보미술관을 갖추고 불교 관련 예술품을 보관 전시해온 사찰들이 근래 종교를 초월해 동시대 예술까지 아우르며 문화공간으로서 그 역할을 강화하는 추세다. 그동안 해남 미황사 외에 광주비엔날레 기간 중 주요 전시공간으로 한몫했던 광주 도심의 무각사를 비롯해 합천 해인사, 강화도 전등사, 남원 실상사 등에서도 다채로운 현대미술 기획전이 펼쳐졌다.
전통 사찰의 현대미술 기획전은 불교와 미술의 만남을 너머 종교와 현대미술, 전통문화와 예술이 어우러지는 문화예술 이벤트로 기대를 모은다. 종교적 공간, 신앙의 장소인 사찰에 현대미술이 더해지고 당대를 담아내는 미술 공간으로서 사찰의 역할이 확장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획전은 예술가들이 전통문화를 모티브로 창작세계를 일궈 나가는 기회이며, 관람객으로선 봄나들이 길에 다양한 현대미술을 만끽할 수 있는 색다른 일상의 공간이다.
서구 여행 때면 가톨릭 신자가 아니라도 성당을 찾아 미술문화를 한껏 접하듯 “사찰이야말로 전통문화에 기반을 둔 우리의 예술 명소”라고 미술기획자 이승미 씨는 말한다.
미술저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