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믹스트존>한국 올림픽 선수단 ‘단복 변천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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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8년 첫 등장… 물자부족 탓 장만에 애먹어
대부분 태극기서 영감… 金염원 ‘금빛 정장’도

2016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참가하는 한국 선수단의 단복은 세 종류다. 정장 단복, 시상식용 단복, 트레이닝 단복으로 나뉜다. 이 가운데 정장 단복은 올림픽 파견 선수단은 물론 나라의 얼굴에 비유할 수 있다. 올림픽 개회식에서 선수단은 정장 단복을 입고 입장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의 개회식은 전 세계 40억 명,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 개회식은 30억 명이 지켜봤다. 선수단은 개회식과 폐회식은 물론 선수단 결단식, 올림픽 개최지로 출국하고 입국할 때, 선수촌 입촌식, 그리고 현지에서 열리는 다채로운 공식 행사에 정장 단복을 입고 참가한다.

대한민국이 처음 올림픽에 등장한 건 1948년이다. 그해 1월 30일부터 2월 8일까지 스위스 생모리츠에서 열렸던 동계올림픽에 이효창, 문동성, 이종국 등 3명이 스피드스케이팅에 출전했다. 정부 수립(1948년 8월 15일) 이전이었기에 미 군정 치하에서 대한올림픽위원회 자격으로 참가했다.

한국 선수단이 단복을 차려입고 올림픽 개회식에 처음 입장한 건 런던하계올림픽(1948년 7월 29일∼1948년 8월 14일)이다. 당시 임원 15명, 선수 52명으로 구성됐던 한국 선수단은 군청색의 더블 브레스트 재킷과 회색 바지를 입었다. 왼쪽 가슴에는 KOREA란 글자와 태극문양, 그리고 오륜기가 조화를 이룬 휘장을 달았다. 일제강점기에서 벗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에 물자가 부족했고, 이로 인해 67명(임원 15명·선수 52명)의 단복을 마련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전해진다. 당시의 단복 중 단 한 벌이 남아 있고 1992년 문화재로 등록됐다. 당시 선수단을 금전적으로 후원했던 고 이원순이 한국 선수단의 고문자격으로 런던올림픽에 참가하면서 입은 단복이며, 그는 1986년 이 단복을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올림픽 단복엔 나라를 상징하는 색과 디자인이 사용된다. 한국의 올림픽 단복 색상은 대부분 태극기에서 영감을 얻었다. 전통적으로 파란색, 하얀색, 검은색이 어우러졌다. 상의는 푸른색 계열인 감색이나 짙은 청색, 바지는 흰색을 선호했다. 1952년 헬싱키·1956년 멜버른·1960년 로마올림픽 단복은 감색 상의와 회색 하의, 1964년 도쿄올림픽은 짙은 청색 상의에 흰색 바지, 1968년 멕시코올림픽에선 역시 짙은 청색 상의와 흰색 바지를 입었다.

단복 색상에 변화가 생긴 건 1972년 뮌헨올림픽 때다. 종전과 달리 황금색 상·하의 정장을 선택했다. 색상을 바꾼 건 김택수 당시 대한체육회장이었다. 건국 이후 참가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이 나오지 않자, 김 회장은 올림픽 단복을 황금색으로 바꿨다. 당시의 에피소드. 김 회장은 경남모직 임원에게 “올림픽 선수단 정장 단복을 금메달 색상으로 제작하라”고 지시했다. 경남모직은 김 회장의 형(김한수)이 경영했고, 김 회장도 대주주였다. 경남모직은 4차례의 시행착오를 겪고 나서야 황금을 닮은 색상을 뽑아냈다. ‘전통’에서 벗어났기에 반발이 있었지만 김 회장은 고집을 굽히지 않았다. 뮌헨에서의 금메달 낭보는 없었다. 1976년 몬트리올올림픽에선 보다 화사한 금빛 단복을 입고 출전했고, 레슬링의 양정모가 건국 이후 첫 올림픽 금메달을 획득하며 김 회장과 국민들의 염원을 풀어줬다.

1984년 LA올림픽에선 다시 전통으로 돌아가 푸른 상의에 흰색 하의를 입었고, 한국 선수단은 금메달 6개라는 ‘대박’을 터트렸다. 서울에서 열린 1988년 올림픽의 단복 역시 푸른색 상의와 흰색 하의였다.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선 상·하의 색상을 바꿨다. 흰색 상의에 감색 하의였고,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선 위아래 모두 흰색으로 통일했다. 2000년 시드니올림픽은 상의 감색과 하의 흰색, 2004년 아테네올림픽은 상의 파란색과 하의 흰색이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까지 여자에겐 주로 치마 단복이 제공됐다. 치마의 길이는 짧아졌다. 1988년 서울올림픽까지는 무릎 아래까지 내려오는 치마를 입어 단정함을 표현했고, 19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부터 무릎을 드러내 여성미를 강조했다.

올림픽 단복은 대한체육회에서 구성한 문화위원회가 제작을 맡은 후원사와 협의해 디자인과 색상을 결정한다. 문화위원회엔 디자인 전문가, 체육회 관계자는 물론 단복을 착용할 선수와 지도자도 참가한다. 2012년 런던올림픽을 앞두고는 9차례나 단복 제작을 위한 회의가 열렸다. 그 덕분인지 2012년 런던올림픽 한국 선수단 단복은 당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베스트 단복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다. 당시 타임은 단복 베스트 7개국, 워스트 6개국을 선정했는데 한국은 영국, 독일, 이탈리아, 뉴질랜드, 자메이카, 프랑스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빈폴이 제작한 2012년 런던올림픽 단복은 1948년 런던올림픽 단복이 모티브로, ‘영광재현 1948’이란 콘셉트를 담았다. 64년 전 가난했던 시절 불굴의 스포츠 정신으로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했던 선배들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1948년 런던올림픽 단복에서 영감을 얻어 디자인했고 상의는 군청색, 하의는 흰색이었다. 1948년 런던올림픽 참가를 기념하며 임원들에게 수여됐던 참가장을 본뜬 장식을 재킷 오른쪽 가슴에 부착했다. 왼쪽 가슴 부위 주머니에는 포인트를 주기 위해 붉은색 행커치프를 넣었다. 남자는 재킷 안에 하늘색 셔츠와 빨강-파랑이 섞인 줄무늬 넥타이를, 여자는 군청색 줄무늬가 들어간 흰색 니트 티셔츠를 입었다. 흰색 페도라와 흰색 옥스퍼드 구두는 개최국인 영국을 상징했다. 아테네올림픽 때는 일반인을 대상으로 디자인과 색상을 공모해 단복을 채택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 이어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의 정장 단복 제작을 맡은 빈폴은 이번 단복에 품격과 전통의 미를 녹여 집어넣었다. 은근함과 섬세함이 깃든 한복에서 영감을 얻었으며, 직선과 곡선의 조화를 꾀했다. 재킷 앞쪽에서 눈길을 끄는 흰색 라인은 한복의 동정이 모티브다. 바지는 밑으로 내려갈수록 폭이 좁아지며, 밑단은 접어 올려 단정함을 강조했다. 하늘색 리넨 저지 셔츠는 현지 기후와 활동성을 고려해 제작했다. 남성은 빨강과 파랑 물방울 무늬가 들어가 있는 넥타이를, 여성은 브라질과 한국 국기를 상징하는 노랑·초록·빨강·파랑색이 섞인 스카프를 목에 두른다. 스카프는 여러 색상의 천을 붙여 만든 조각보에서 영감을 얻었다. 왼쪽 가슴엔 태극기의 빨강과 파랑, 브라질 국기의 노랑과 초록을 섞어 만든 사각판매듭 장식을 달아 포인트를 줬다. 구김이 덜 생기고 물빨래가 가능한 리넨 재킷·티셔츠와 오염에 강한 나노 가공 팬츠를 토대로 기능성을 대폭 강화했다. 또 지카바이러스에 대비하기 위해 방충 소재를 활용했다.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단복은 활동성도 고려했다. 개·폐회식은 물론 리우데자네이루로 출국할 때도 입어야 하는데 불편하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빈폴은 오는 5월 초 SNS이벤트를 통해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에 참가하는 국가대표들을 응원하는 국민들의 메시지를 수렴하고, 응원 메시지를 재킷 안쪽 등 부분에 디자인된 태극 무늬 안감에 새겨 넣을 예정이다.

2012년 런던올림픽 당시 빈폴이 남녀 30벌씩 한정수량으로 매장에 내놓은 정장 단복 풀세트는 120만 원이라는 고가에도 불티나게 팔렸다. 빈폴은 그러나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단복의 판매는 고려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빈폴의 김수정 디자인실장은 “지구촌 최대 축제인 올림픽에서 한국 고유의 미와 색을 표현하고 싶었다”며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단복은 우리의 정서를 반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김 실장은 “격이 있는 옷, 한국의 전통미를 표현하는 옷이어야 한다는 데 중점을 둬 단복을 디자인했다”고 밝혔다. 서울올림픽처럼 파란색(상의), 빨간색(넥타이)으로 하자는 의견도 제시됐다. 그러나 올림픽 선수단장을 맡은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이 단복 디자인은 전문 디자이너에게 맡기자고 중재해 ‘고비’를 넘겼다. 신발은 ‘로퍼’ 타입이다. 굽이 낮고 끈으로 묶지 않는다. 2012년 런던올림픽에서는 옥스퍼드 구두를 신었는데 불편했다는 의견이 있어 신발을 교체했다.

단복 제작은 쉽지 않은 과정을 거쳤다. 체조선수는 몸이 작지만 역도선수는 체구가 크다. 종목의 특성에 따라 상체가 하체에 비해 훨씬 발달하거나, 그 반대의 경우도 있다. 몸에 비해 팔, 또는 허벅지가 지나치게 두꺼운 선수들도 있다. 그래서 국가대표 개개인의 신체 사이즈를 측정, 맞춤 제작했다. 해외, 지방 전지훈련 중인 대표들은 현지로 ‘출장’을 떠나 사이즈를 측정했다. 2012년 런던올림픽 땐 현지로 떠나기 전 급격히 감량하는 선수들도 있어 올림픽 현지로 떠나는 비행기에 오르기 직전 단복을 다시 수선하는 예도 있었다. 이번 리우데자네이루올림픽 참가를 위해 출국할 때도 이런 진풍경이 연출될 것으로 내다보인다.

전현진 기자 jjin23@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