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위기 심각해지면 ‘로맨틱 발라드’가 뜬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가수 싸이의 ‘강남스타일’의 인기는 한국에 대한 문화적 근접성을 키워줌으로써 결국 한국 상품 소비로 이어지게 한다.

박스오피스 경제학 / 김윤지 지음 / 어크로스

영화는 불황산업으로 불린다. 불경기엔 비교적 싼 가격으로 즐길 수 있는 영화관으로 사람들이 몰린다는 것이 통념이다. 이 같은 통념의 시작은 세계 대공황 당시로 거슬러 올라간다. 1929년 대공황 때 다른 산업은 모두 어려움을 겪었지만 월스트리트의 영화 관람객 수만은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영화가 다른 문화활동에 비해 돈이 덜 들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이뤄졌다. 하지만 바로 그때가 기술적으로 영화 산업이 막 꽃피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했다. 대공황기 월스트리트 영화 관람객 증가가 ‘싼 영화 관람료’ 때문인지 ‘새로운 영화에 대한 수요’ 탓인지는 명확히 가려지지 않았지만, 그 뒤 영화는 큰 이견 없이 ‘불황에 강한 산업’으로 인식돼왔다. 그런데 진짜 불황일 때 영화 산업의 매출이 오를까? 대중적 ‘감’으로 보면 그럴 것 같은데 실제로 그럴까.

‘박스오피스 경제학’은 이 두 지점을 연결한다. 영화, 드라마, 가요, 아이돌같이 누구나 익숙한 대중문화를 둘러싼 넘치는 ‘감’에 머물지 않고 실제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하고 다양한 경제학적 틀로 해석하는 작업이다. 시중은행 경제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는 경제학박사인 저자는 투자자와 제작자 사이에 다리를 놓기 위해서도 이 책을 썼다고 했다. “투자자들은 수익률, 성공과 실패 확률, 성장률 같은 숫자를 요구한다. 반대로 제작자들은 문화를 돈으로만 판단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그러다 보니 투자자들과 금융업 종사자들 사이에서 문화 산업은 악명이 높다. 그래서 책은 가능한 한 숫자 데이터, 국내외의 다양한 연구 결과, 여러 경제학적 이론으로 한국의 다양한 대중문화 현상에 대한 분석을 시도한다.

일단 실제로 진짜 불황에 영화 산업 매출이 오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오랫동안 불경기에 영화 산업 매출이 오르는지 확인했더니 영화 관람 행위도 다른 재화들처럼 소득과 가격에 탄력적으로 반응했다고 한다. 몇몇 미국 경제학자들은 영화 관람 지출이 향후 경기전망을 나타내는 소비자 신뢰 지수(CCI·Consumer Confidence Index)가 높아질 때 동반 상승한다며 영화 산업은 불황보다 호황과 밀접한 사업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경기와 문화의 또 다른 상관관계를 몇 개 더 보면, 실업률·소비자 물가지수·자살률 등과 같은 경제 지표와 비교 분석한 결과 사회·경제적 위협이 높아질수록 발라드 음악 가사는 더욱 편안하고 로맨틱해지고, 사람들은 성숙한 인상의 가수를 선호했다고 한다. 플레이보이의 모델을 비교해도 호황기엔 눈이 동그랗고 귀여운 여성이, 불황기엔 성숙한 외모의 여성이 더 많이 등장한다고 했다.

이와 함께 미국 경제학자 하이먼 민스키의 금융 불안정성 가설로 아이돌 가수들이 왜 해체와 솔로 활동을 두고 고민하는지를 분석하고, 드라마 ‘별에서 온 그대’가 중국에서 열풍을 일으킨 이유를 조지 애컬로프의 ‘정체성 경제학’을 기반으로 설명한다. ‘혁오’의 음악을 소비하는 ‘힙스터’ 문화의 본질은 하비 라이벤스타인의 스노비즘(속물효과)에서 찾고,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한국 상품 수출에 미친 영향은 ‘한국에 대한 문화적 근접성’ 개념으로 풀어내는 등 경제학의 거장들과 고전 이론들을 유연하게 불러낸다. 또 참신한 발상으로 변수들을 찾아내 명쾌한 결론을 이끌어낸 최신 계량경제학 연구들도 소개한다. 남자 배우들이 아카데미상을 받은 직후 이혼하는 경우가 많고, 맨 부커상 수상자보다 오히려 후보자들이 더 활발하게 작품 활동을 한다는 연구 결과를 들어 ‘인센티브의 역설’을 이야기하는 식이다. 우리의 일상이자 우리에게 강렬한 영향을 미치는 대중문화에 대한 분석은 언제나 환영한다. 게다가 새로운 접근이 주는 새로운 통찰이 있다. 빅 데이터 시대, 깊은 인문학적 분석과 또 다른 숫자가 주는 명쾌함도 있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