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보 금리 조작’ 3人, 英서 유죄 판결
약 4년 전, 전 세계 금융시장을 충격에 빠뜨렸던 영국 리보(Libor) 금리 조작 사건으로 처음 기소됐던 전직 은행원들에 대해 영국 법원 배심원단이 최근 유죄 평결을 내린 데 이어 법원도 유죄로 판결했다. 또 앞서 리보 금리 조작 사건에 연루된 글로벌 은행들은 천문학적인 벌금을 부과받는 등 금융가의 신뢰를 훼손한 대가를 치르고 있어, 한국판 ‘리보 금리 조작 사건’으로 비화될 것으로 예상되던 양도성예금(CD) 금리 조작 의혹이 공정거래위원회에 의해 사실상 무혐의로 판단된 것과 대조를 이루는 풍경이다. 7일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영·미 언론에 따르면 리보 금리 조작 혐의로 기소된 영국 바클레이즈은행의 전직 은행원 조너선 매슈, 제이 머천트, 앨릭스 파본 등 3명에 대해 런던의 사우스워크 크라운 지방법원은 이날 유죄를 선고했다.
앞서 이들의 상사로서 이 사건의 핵심 인물로 함께 기소된 피터 존슨은 이미 자신의 행위에 대해 유죄라고 자백하고 현재 복역 중이다. 이들은 지난 2005년 6월부터 2007년 8월까지 리보 금리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됐으며, 영국 법원은 조만간 이들에 대해 1심 판결을 내릴 예정이다.
리보 금리 조작 사건은 비단 이들 4명만 연루된 것이 아니었다. 2014년 2월 영국 중대사기수사국(SFO)은 존슨과 매슈 및 스틸리아노스 콘토굴라스 등 3명의 영국 국적 바클레이즈 은행원들을 기소했다. 이후 같은 해 5월 머천트, 파본, 라이언 리치 등 3명의 미국인 바클레이즈 은행원들을 추가로 기소했다. 이들은 리보 금리 조작 파문이 불거진 후 SFO가 기소한 첫 은행원들이었다. 그러나 배심원단은 콘토굴라스와 리치 등 2명에 대해서는 리보 금리 조작 가담 혐의에 대해 유·무죄 평결을 내리지 못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영국 런던 동부의 금융중심가 카나리 워프에 위치한 바클레이즈은행의 본사 전경. 지난 2011년부터 바클레이즈은행을 비롯한 유럽과 미국의 12개 글로벌 은행들은 리보(Libor) 금리 조작 파문에 연루돼 일부 은행원들이 사기 혐의 등으로 기소되고 각 은행들은 금융당국으로부터 천문학적인 액수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AFP연합뉴스
리보 금리 조작 사건은 바클레이즈은행뿐만 아니라 영국과 미국, 유럽의 총 12개 은행이 가담한 것으로 조사된 바 있다. 리보 금리는 한 곳의 은행만이 조작할 수가 없는 런던 은행 간 달러 대출금리이기 때문이다. 즉, 리보 금리란 런던의 은행들 사이에서 단기로 달러를 거래할 때 부과하는 금리로 매일 18개 은행의 리보 금리 담당자들이 제출하는 금리 중 상위 4개와 하위 4개 금리를 제외한 나머지 10개 은행의 금리를 평균으로 산출해 산정된다. 또 런던의 각 은행은 리보 금리를 기준으로 각종 주택담보대출이나 기업대출의 금리를 책정하고 이에 따른 파생상품을 판매하기도 했다. 파문이 불거졌을 당시 리보 금리에 따라 움직이는 전 세계의 자금이 약 350조 달러(약 40경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되기도 했다. 그러나 신뢰를 바탕으로 이뤄지는 막대한 규모의 금융 거래가 일부 은행원들의 조작에 의해 좌우되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자 일각에서는 리보 금리 조작 사건에 대해 ‘탐욕적인 금융권의 상징적 사건’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이미 리보 금리 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은 은행원도 있다. 전직 바클레이즈 은행원들의 재판이 벌어지고 있는 사우스워크 크라운 법원은 지난해 8월 리보 금리 조작 혐의로 기소된 전직 UBS 및 씨티그룹 파생상품 트레이더 톰 헤이즈에 대해 유죄로 판결하고 징역 14년형을 선고했다. 재판에서 헤이즈는 자신의 혐의를 대체로 인정하면서도 리보 금리 조작과 관련한 자신의 행동이 업계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고 상사들도 이를 묵인해줬다고 진술해 금융권 소비자들에게 충격을 던졌다. 또 법원은 그의 혐의에 대해 “금리 조작이라는 음모를 꾸민 무대감독 역할을 했다”며 “더 높은 급여를 받기 위한 탐욕이 금리 조작을 불렀다”고 질타했다.
사건에 연루된 은행원들뿐만 아니라 유럽과 미국의 은행들이 치러야 할 대가도 천문학적 수준이었다. 이번에 유죄 평결을 받은 은행원들이 속해 있던 바클레이즈은행은 2012년 6월 영국 금융당국으로부터 4억50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스위스 최대은행인 UBS는 같은 해 미국, 영국, 스위스 당국에서 총 15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았다. 영국의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은 2013년 2월 6억1500만 달러의 벌금을 미국과 영국 정부에 납부하기로 합의했고 독일의 도이치뱅크는 지난해 4월 미국, 영국에서 총 25억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아 리보 금리 조작 사건과 관련해 최대 규모의 벌금 기록을 세웠다.
가장 최근인 지난 5월에는 미국 은행 중 처음으로 씨티그룹이 리보 금리 조작 사건과 관련해 4억2500만 달러의 벌금을 부과받기도 했다. 특히 씨티그룹은 UBS 근무 당시 헤이즈가 리보 금리 조작에 가담했었다는 사실을 알고서도 그를 영입했던 것으로 드러나 비판을 받고 있다.
박준희 기자 vinke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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