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지난 5일 일본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에서 열린 한국인 원폭 희생자 위령제에서 서장은(앞줄 맨 왼쪽) 주히로시마 총영사와 김원수 유엔 군축고위대표, 앨런 그린버그 주오사카·고베 미국 총영사가 나란히 서 있다.
서장은 駐히로시마 총영사
8월, 한국도 덥다지만 일본도 날마다 35도를 넘는 폭염이 계속되고 있다. 국내에서나 일본에서나 여름 피서를 생각할 시기지만 이곳 히로시마(廣島)는 오히려 이즈음이 일 년 중 가장 바쁜 때이다. 며칠 전 8월 6일, ‘원폭의 날’ 때문이다. 이날 치러진 평화기념식전과 각종 기념사업 준비로 7월 중순부터는 도시 전체가 들썩이고 얼핏 긴장감도 감돌았다. 연례행사라지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지난 5월에 이곳을 방문한 뒤여서인지 히로시마 사람들은 예년보다 조금 더 상기된 듯했다.
8월 6일 아침 8시15분.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등 일본 주요 인사는 물론이고 필자를 포함한 세계 91개국 외교사절들이 평화기념공원 경내에 자리 잡은 가운데, 71년 전의 원폭 투하로 목숨을 잃은 14만여 명과 그 뒤 유명을 달리한 약 30만 명의 희생자를 추도하는 평화기념식전이 거행되었다. 일본 주시코쿠(中西國) 지방을 통틀어 유일한 외교공관인 주히로시마 대한민국총영사관의 대표로서 이 행사에 참석한 것도 올해로 세 번째이다.
기념식전에서, 히로시마평화선언을 낭독한 마쓰이 가즈미(松井一實) 히로시마 시장은 원폭을 “절대악(絶對惡)”이라고 표현했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도 메시지에서 “히로시마의 원폭은, 핵무기는 성별·연령·종교·사상·국적을 가리지 않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고 했다. 전대미문의 위력으로 한순간에 반경 2㎞ 이내의 모든 것을 지워버린 원폭의 참혹한 결과들을 히로시마평화기념자료관에서 보다 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말들이다. 원폭으로 희생된 이들을 추도하고 핵 없는 세상을 만들자는 데 누가 이의를 제기할까?
그러나 이구동성으로 핵무기 없는 세상을 제창하는 평화기념식전 자리에 앉아 있노라면, 물론 그 주장에 동의하면서도 마음이 편치만은 않다. 3년째 평화기념식전에 참석하면서 두 가지 불편함이 늘 가슴을 무겁게 만들었다. 첫째는 일본하고도 히로시마 땅에서 거행되는 이 엄숙한 식전이 내거는 평화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필자는 지난 2년간 현지 주요 인사들을 만나거나 강연을 할 때면 “당신들이 말하는 평화는 도대체 어떤 평화인가? 왜 히로시마가 주장하는 평화는 늘 1945년 8월 이후의 평화뿐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 왔다. 일본인들은 이런 질문에 고개를 갸우뚱거리지만 독자들은 필자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금세 알 것이다. 제국주의와 식민지, 전쟁과 원폭,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원폭에 희생된 2만여 우리 동포의 존재를 머릿속에서 지울 수 없는 것이다.
평화기념자료관은 일본인에게는 일종의 성지이면서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연간 15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명소이기도 하다. 오바마 대통령이 5월에 방문한 뒤로 더욱 주가가 올라간 이 자료관의 그 많은 전시물 중에, 2만 명 이상의 한국인 원폭 희생자를 설명하는 문장은 딱 한 줄밖에 없었다.
필자는 인류가 원폭의 참화를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아야 하며, 세계평화를 위해 모두가 힘을 모으자는 주장에 전적으로 공감한다. 그러나 또한, 원인을 도외시한 채 결과만을 부각시켜 역사의 가해자와 피해자가 뒤바뀌는 것은 정의롭지 못하다고 단언한다. 그렇기에 원폭 이전을 설명하지 않는 “평화”는 공허하다는 생각으로 앞서와 같은 질문들을 던져 온 것이다.
이것이 필자만의 생각이랴. 이곳의 동포들은 힘을 모아 한국인원폭희생자위령비를 세우고 지난 47년간 위령제를 지내 왔다. 위령제가 열리는 8월 5일, 히로시마의 성지 평화기념공원 안에 울려 퍼지는 애국가에 필자가 느낀 가슴 벅찬 감회를 어찌 다 표현할 수 있을까. 피폭 70주년이었던 지난해부터는 총영사관도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서 현지 주요 인사들을 위령제에 초청하고 헌화하게 했으며 올해는 미국 총영사도 초청, 참석시켰다. 광복의 감동 속에 이국만리 우리 동포의 원통한 죽음을 잊지 않는 것, 일본 사회가 예를 갖추어 그 희생을 기억하도록 하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부여된 최소한의 책임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이런 노력이 헛되지 않았던지 히로시마시는 지난해부터 평화선언에서 한국인 희생자를 공식 언급하기 시작했고, 지금 한창 진행 중인 평화기념자료관 리모델링 과정에서는 한국인 희생자의 존재를 적절히 알리는 것도 함께 검토키로 했다. 한·일 관계의 진정한 발전이 어느 한순간에 충분히 이뤄지기는 어렵겠지만, 이렇게 우리의 “평화”를 조금씩 심어간다면 내 마음 한편의 불편함이 언젠가는 풀리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러나 더 큰 불편함 하나가 남아 있다. 핵무기에 희생된 민족의 한 갈래인 북한이 바로 그 핵으로 동족과 세계를 위협하고 있다는 아이러니이다. 원폭으로 이어진 역사 앞에 겸허할 것과 한국인 희생자에 대한 애도를 현지 일본인들에게 요구하면서도, 현재의 위협으로 다가선 북한 핵문제는 도대체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이 불편함이 요새 날로 더 커지고 있다.
◇서장은(51) △고려대 법학과 졸 △중앙대 법학박사 △㈔한국법제발전연구소 선임연구원 △중국 베이징(北京)대 동방학 연구원 △서울시 정무조정실장 △서울시 정무부시장 △한나라당 수석부대변인 △새누리당 국민공감위원회 위원장 △새누리당 제18대 대통령선거중앙선거대책위원회 전략기획단장 △㈔한중 친선협회 부회장 △㈔서울&아시아대도시 네트워크 이사장 △주히로시마 총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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