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경영혁신, 기업문화를 바꿔라>금요일 오후5시 칼퇴근 ‘가족의 날’… 직원자녀 진로문제도 상담 ‘休포트’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이 서울 강서구 오쇠동 사옥에서 정기적으로 진행하는 ‘입시전문가 초청 진로 설명회’에서 중·고교 자녀를 둔 임직원들이 전문가 강연을 듣고 있다. 아시아나항공 제공

- ⑫ 금호아시아나 ‘親가정’

유쾌한 방송으로 ‘퇴근’ 알려
“물질적인 보상보다 더 값져”

갯벌·모터스포츠·주말농장 등
가족 위한 ‘체험 프로그램’도

원활한 정시퇴근, 출산휴가와 육아휴직 등 복지 혜택 확대, 능력 중심 채용, 조직 성과의 공유, 가족 같은 분위기 조성을 통해 문화를 일신하려는 기업들이 늘고 있다. 이는 조직을 튼실하게 뒷받침함으로써 창의성과 도전정신을 북돋워 궁극적으로 기업가치를 높여주는 동력으로도 작용한다. 능동적인 기업문화 형성을 위해 톡톡 튀는 아이디어를 토대로 벤처정신을 강조하고 있는 롯데그룹이나 임직원 자녀를 위해 영어강의와 입시설명회를 진행하는가 하면, 부부 소통기회를 마련하기 위해 캠프를 열기도 하는 금호아시아나그룹의 노력 역시 이런 범주에 속한다.

“돌아온 전라도 교통방송입니다잉. 현재 이 시각 교통정보인데요잉, 지금 회사를 빠져나가는 게 여간 어려운 게 아닙니다. 한 가지 팁을 드리자믄 회사 입구 쪽 지하차도 옆짝에 올라가서 좌회전하시믄 새로 뚫은 도로가 나옵니다잉.”

지난 2일 오후 5시 정각이 되자 서울 강서구 오쇠동 아시아나항공 본사에선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로 교통정보를 알리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방금 전 사뭇 진지하던 근무 분위기가 무색해질 만큼 장난기 어린 사내방송이었다. 고개를 갸우뚱거릴 때쯤 DJ 역할을 맡은 경영지원팀 사원 김호중 씨는 이 방송의 정체성을 조금씩 드러냈다.

“요런 ‘꿀팁’을 잘 활용하믄 편안한 퇴근길이 되실 겁니다잉. 피로해소송 하나 듣고 가겠습니다잉. 행복한 주말 맞이하십숑. 뿅.”

‘피로는 간 때문이야’라는 CM 송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직원들은 기다렸다는 듯 짐을 싸서 퇴근하기 시작했다. 김 씨는 방송 부스에서 벗어나 “직원들의 정시 퇴근을 독려하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있다”며 “상사 눈치를 보면서 우물쭈물하는 일이 적어도 이날만큼은 용납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아시아나항공의 ‘정시퇴근’ 방송 모습.

매주 금요일 퇴근길을 독려하는 수준을 넘어 ‘강제’하다시피 하는 아시아나항공의 ‘패밀리 데이’ 풍경이다. 1주일에 한 번 정시퇴근을 장려하는 다른 기업들의 비슷한 제도가 기존 조직문화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유명무실해지는 경우가 많지만 아시아나항공의 패밀리 데이는 파격 방송을 통해 생명력을 얻었다.

본격적인 시작은 지난 5월 김 씨가 마이크를 잡으면서부터. 2010년 9월 패밀리 데이가 시행된 후 원래는 음악을 들려주는 게 주 내용이었던 방송은 직원들이 돌아가면서 DJ를 맡다가 지금의 김 씨 체제로 굳어졌다. 동시에 정시퇴근의 꿈도 무르익었다. 사무실 분위기가 무거워져 짐 싸는 게 쉽지 않은 상황이 닥쳐도 유쾌한 김 씨 방송이 웃음으로 ‘퇴근정신’을 일깨운다.

김 씨는 “퇴근길 발걸음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해야 하는 만큼 방송은 재미에 주력한다”며 “사실 오늘보다 재밌는 방송이 많았다”고 말했다.

예컨대 밴드 장기하와 얼굴들의 노래 ‘사람의 마음’에서 ‘이제 집에 가자’란 가사만 편집해 내보내는 건 기본이고 나비의 ‘집에 안 갈래’라는 노래 뒤에 바로 미쎄스 비비의 ‘뻥이야’를 틀어 반전 개그를 선보이는 식이다. 매주 창작의 고통을 느끼면서 방송 내용을 구상한다는 김 씨는 “일반 직원뿐 아니라 ‘윗분’들 호응도 높다”며 “정시퇴근이란 게 직원들에겐 웬만한 물질적 보상보다 더 값지게 느껴지는 듯하다”고 말했다.

아시아나항공이 패밀리 데이 정착을 위해 김 씨의 파격을 허용하고 지원할 수 있는 건 ‘임직원 가족들의 행복이 곧 회사의 행복’이라는 기업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한 결과다. 업무 고민뿐 아니라 가족문제를 상담하는 사내 심리상담실 ‘OZ 휴(休)포트’ 운영, 임산부를 육체적 강도가 낮은 직무로 재배치하는 임산부 보호제도 등이 대표 사례다.

심지어 ‘입시전문가 초청 진로 설명회’도 정기적으로 열어 임직원 자녀의 입시 문제까지 함께 고민한다. 그 결과 지난 5월에는 농림축산식품부와 여성가족부가 공동 주관하는 가족사랑 실천 모범사업장으로 선정돼 정시퇴근하는 직원들에게 장미꽃과 쌀을 나눠주는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이제는 대외 홍보용 자료에 ‘국내 대표 가족친화기업’을 수식어로 쓸 정도다.

거슬러 올라가면 재계에서 수준급으로 평가받는 그룹 차원의 친가정 기조가 눈에 띈다. 금호타이어의 경우 치즈 만들기 체험, 갯벌체험, 모터스포츠 체험, 주말농장 등 가족 단위로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여가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이미 이 분야에서 선구자 역할을 하고 있다.

금호건설 역시 가족과 떨어져 현장에서 근무하는 직원을 위해 가족들이 도시락을 전달하는 깜짝 이벤트 ‘사랑의 도시락 행사’를 수시로 열어 화제를 모았다.

이근평 기자 istandby4u@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