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경제’ 해법을 묻다>“노동시장 유연성 확보 못하면 ‘경제 살리기’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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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②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수출 위축·청년 실업 악화…
성장률 2%도 쉽지 않을 듯
위기 극복 해법, 구조개혁 뿐

586세대, 대승적인 자세 갖고
다음 세대 위해 기득권 놓아야

1990년대 중반 침체 겪던 獨
노동개혁으로 최강국 재부상

韓 노동경쟁력 51위에 그쳐…
과도한 고용경직성 해소되면
기업들도 투자·고용 늘릴 것

“우리 경제는 현재 심각한 위기 상황에 빠져 있고 이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법은 노동 개혁을 포함한 구조 개혁밖에 없습니다. 정치권이 한국 경제를 살린다는 대승적인 자세를 갖고 구조 개혁을 이뤄내기를 간절히 바랄 뿐입니다.”

19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동 전국경제인연합회 회관 내 사무실에서 만난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은 카랑카랑하고 날 선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에 대해 “말은 무성했지만 성과는 거의 없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우리나라 규제 방식이 기본적으로 포지티브 규제(원칙 금지·예외 허용)이다 보니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산업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현재 우리나라의 기득권은 586세대가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면서 “자유 민주주의의 성과를 마음껏 누리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려 하지 않는 이들이 대승적인 자세를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고도 했다.

―우리나라 현 경제 상황에 대해 간략히 진단해달라.

“경제 전망이 매우 안 좋다. 수출도 예전 같지 않고 경제 원동력이라고 할 수 있는 소비도 위축돼 있다. 저출산·고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돼 우리 경제에 점점 부담될 것이다. 실업, 특히 청년 실업도 악화되고 있다. 기업 역시 노동 개혁이 지연되고 규제 완화가 이뤄지지 않아 투자에 소극적이다. 국가 재정으로 버티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이렇게 가다간 경제성장률 2%도 쉽지 않을 듯하다. 선진국을 코앞에 두고 있는 상황에서 선진국보다 더디게 성장하는 국면으로 치닫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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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고용 절벽 등 고용 문제가 예상보다 심각한 상황이다.

“실업 문제 등 경제에 문제가 있을 때 공산주의, 사회주의 체제 같으면 정부 주도로 푸는 게 맞다. 하지만 그 결과는 역사가 증명하고 있지 않은가. 결국, 기업들이 투자와 고용을 더 많이 늘릴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을 풀어가야 한다. 그렇다면 기업들은 왜 투자를 늘리지 못할까.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으나 과도한 고용 경직성이 주된 원인 중 하나일 것이다. 대기업, 금융회사, 공기업 등 취업 희망자들이 선호하는 기업들의 노조들은 앞장서서 수시로 파업을 하고 불법 폭력 시위를 하는데 이런 상황에서 기업들이 국내 투자를 늘리긴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여파는 청년 실업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또 과연 이들이 근로자들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에 대해 부정적이다.”

권 원장의 말대로 우리나라 고용 유연성이 떨어진다는 사실은 외부 연구 보고서 곳곳에서 드러난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의 올해 국가 경쟁력 보고서를 보면 우리나라는 국가 순위에서 29위를 차지하고 있지만, 노동시장 효율성은 51위에 그쳤다. 노동시장 효율성은 2013년 27위, 2015년 35위, 2016년 51위 등으로 계속 떨어지는 추세다. 우리나라의 노동 분야가 상대적으로 낙후돼 있고 이 분야에 대한 개혁이 필요한 것은 글로벌 연구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은 왜 그렇게 비효율적으로 변했나.

“1997년 외환위기 전후해 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당시 30대 대기업 가운데 16개가 문을 닫았다. 대신 살아남은 기업들의 부채는 이전에 비해 크게 줄어 이후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 금융회사들도 마찬가지다. 회사 간 통폐합, 감원 그리고 공적자금 투여 등을 통해 대대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졌다. 민영화가 급물살을 타는 등 공공 분야 개혁도 진행됐다. 다만 손을 못 댄 곳이 노동 분야다. 당시 김대중 정권은 주요 지지기반인 근로자들을 건들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노사정 대타협이라는 이름으로 노동 개혁을 진행했는데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러한 전통이 흘러와서 노동 분야는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네덜란드, 스웨덴 등은 노사정 대타협 방식을 통해 개혁을 해나가지 않았나.

“이들 국가는 인구가 적고 수십 년에 걸쳐 노동개혁 문제를 논의한 경험이 있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의 역사가 짧은 탓인지 이해관계가 다른 집단 간 의견을 조정하는 능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우리가 참고해야 할 게 독일이다. 독일은 1990년대 중반 극심한 경제 침체를 겪는다. 당시 게르하르트 슈뢰더 총리는 폭스바겐의 임원이었던 피터 하르츠 주도로 노동 개혁을 추진한다. 노동시장 서비스와 노동정책의 실효성 제고, 실업자들의 노동시장 재유입 유도, 노동시장 탈규제로 고용 수요 제고 등이 주 내용이다. 지지기반이었던 노동조합의 입장에 반하는 것이었지만 독일은 밀어붙였다. 슈뢰더 총리는 그 여파로 사회민주당 정권을 내주었다. 다른 당 소속이었던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이를 이어받아 노동 개혁을 일관성 있게 추진했다. 그 결과 독일은 현재 EU 최강의 국가로 다시 부상하지 않았나.”

―현 정부의 규제 완화 정책은 어떻게 평가하는가.

“말은 무성했지만 성과는 거의 없다고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우리나라 규제 방식이 기본적으로 포지티브 규제다 보니 4차 산업혁명으로 대변되는 새로운 산업의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AI), 빅데이터, 클라우드, 핀테크, 의료 연계 관광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을 빠르게 잃어가고 있는 상태다. 글로벌 기업 순위를 보면 우리 기업들의 경쟁력도 점점 약화되고 있는 것을 뚜렷이 체감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가.

“현재 우리나라의 기득권은 586세대가 잡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들은 1980년대 대학에서 좌파 사상에 많이 침윤(浸潤)됐고, 반기업 정서를 공유하고 있다. 물론 국가가 민주화되는 데 많은 기여를 했지만 현재는 자유 민주주의의 성과를 마음껏 누리면서 자신의 기득권을 놓치려 하지 않는다. 현재 관련 법안이 모두 국회에 올라가 있지만 통과가 안 됐다. 지금도 다른 문제를 가지고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고 있지 않느냐. 이는 여야 의원 모두에게 해당된다. 정치권뿐 아니라 사회 모든 분야에서 586세대는 공고한 기득권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이들이 대승적인 자세를 갖고 문제 해결에 나서야 한다. 자신이 좀 손해를 보더라도 우리 후배들이 사회에 진입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다.”

유회경 기자 yoology@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