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한국경제’ 해법을 묻다>“찔끔찔끔 구조조정 할 때 아냐… 재창업 정신으로 비상경영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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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④ 유병규 산업연구원 원장

“수출품목 경쟁력 쇠락해도
경제주체 ‘액션플랜’ 안보여
勞使 서로 눈치만 보며 어기적

주력업종 구조조정 기업 주도
성장률 연연하기보다 전략필요
고비용·저효율 생산체제 개선”

내수와 함께 한국경제의 양대 버팀목인 수출이 최장기간 마이너스 침체의 늪에 빠져 비상등이 켜졌다. 호황기에는 몰랐던, 주력 산업의 쇠퇴해진 경쟁력과 총체적 부실이 하루아침에 민낯을 드러낸 형국이다. 간판 수출 품목의 세계시장 점유율은 갈수록 떨어지고 파죽지세인 중국 등 신흥기업에 그 자리를 내주고 있다. 국내 산업, 수출의 난맥상이 표출되면서 산업구조조정을 통한 활로 모색과 수출 증대 방안, 신성장동력 창출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 됐다.

유병규(사진) 산업연구원(KIET) 원장은 31일 문화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비상대책을 주문했다. 유 원장은 “수출 증대 주역은 결국 기업으로, 위급한 상황을 고려하면 재창업 정신으로 기업별 ‘비상경영혁신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산업 구조조정 역시 기업 주도로 신속하게, 고비용·저효율 생산체제의 개혁을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권고했다.

-수출 부진 속에 정국마저 혼란스럽고, 경제 위기가 더 가중되는 분위기다. 성장둔화의 우려도 한층 커지고 있는데.

“수출 부진은 우선 세계 경제의 저성장 기조와 무역 수요 감소, 정보기술(IT)에 기반을 둔 서비스 무역 등 새로운 무역형태 진전이란 대외적 요인에서 기인했다. 여기에 국내 주력 수출업종의 경쟁력 약화 및 이를 보완할 서비스업의 낙후, 전자상거래 등 신(新)무역 인프라의 취약성 등 대내적 요인이 가세했다. 우리나라는 부존자원이 빈약하고 내수기반도 약하다. ”

-상황이 이런데 주력 수출품목의 경쟁력은 쇠락하고 있다.

“위기의식을 가져야 하는데 누구도 움직이지 않는 모습이다. 경제주체들의 ‘액션 플랜’이 보이지 않는다. 노사가 서로 살길을 찾아야 하는데 눈치만 보고 있다. 기득권 유지 심리가 문제다. 찔끔 찔금 구조조정을 할 때가 아니다.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통해 경직된 문화를 개선해야만 수출 경쟁력도 회복할 수 있다. 산업별 구조조정을 통해 국내 주력산업이 중국 등과 차별화할 경쟁력을 확보해야만 수출 회복도 가능하다. 성장률에 연연하기보다 구조조정에 역점을 둬 세계 경제 회복 시기가 도래하면 더 빠른 속도로 몸을 추슬러 치고 나갈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

-구조조정도 게걸음 형국이다.

“국내 주력업종의 구조조정이 글로벌 경쟁력 확보 차원에서 더욱 전략적으로 진행될 필요가 있다. 현재 상황은 1970, 1980년대 정부 주도의 구조 조정기나 1997년 외환위기 당시의 금융주도형 구조 조정기와 전혀 다르다. 더욱 신속하려면 기업이 산업 구조적인 측면에서 주도할 수 있는 구조조정이 필요하다. 노사 협력을 통해 호황기에 누적된 고비용·저효율 생산체제를 쇄신해야 한다. 주요 수출기업들은 재창업을 한다는 결의, 각오 아래 대외여건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비상경영혁신대책을 추진해야 한다. 현재 주력 수출기업은 대부분 2~3세 체제로, 창업 시기의 열정, 도전의식이 보이지 않는다. 선대(先代)로부터 물려받은 사업을 수성하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 이래서는 혁신이 일어날 수 없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들이 사전적으로 구조조정을 원활히 하고 어려움을 타개할 수 있도록 지원정책, 인프라 등 조성에 정책 역량을 쏟아부어야 한다. 이의 하나가 ‘기업 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기활법) 아닌가. 이른 시일 안에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 원활히 운영되도록 신경을 쓰고 보완과제를 고민해야 한다. 규제, 행정 절차상의 어려움을 푸는데 방점을 둬야 한다.”

-이를 추진하면서 동시에 신성장동력을 반영한 수출 전략은.

“완성품의 수출 물량을 늘리는 것보다 글로벌 가치사슬 구조상의 원천기술, 핵심 부품소재와 같은 고부가가치 창출 분야의 경쟁력 확보 쪽으로 전환하는 등 궤도 수정이 필요하다. 중국 등 신흥 개발도상국에서 인기가 높은 화장품, 음식료품, 의약과 같은 소비재 상품 개발에 힘쓰는 한편, 무형재화인 의료, 문화, 건설, 정보통신 등 서비스업의 수출산업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 지역도 수출 지역 다변화와 함께 지역별 소득 및 지역 내 소득 수준별로 제품을 차별화하는 투 트랙 전략을 펴야 한다. ”

-수출 경로는 어떻게 확대되어야 하나.

“중소벤처기업의 수출 역량을 높이고 전자상거래 인프라를 확충하는 게 시급한 과제다. 현지 진출기업과 중소수출기업은 해외 국가정책, 수출국 정보, 비관세 장벽 등 현지 무역정책 정보에 대한 갈증이 심하다. 수출국에 주재한 우리나라 지원 기관들이 이리저리 분산돼 있는데 찾아다니다 하루를 다 보낸다. 수출 지원 기능을 기업 수요자 중심으로 바꿔야 한다.”

-대중 수출의 감소세가 눈에 띄게 심화하고 있는데.

“중국 경제, 산업구조가 급변하는데 우리는 과거에 이득을 보던 시절에만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는 거대 시장인 만큼 중국의 지역별·산업별·소득별 구조변화를 적기에 연구해 대응해야 한다. 경제 수준이 높아진 중국 동부 해안 지역에서 화장품, 음식료품 등의 고급소비재와 프리미엄 공산품 개발이 중요하다. 반면 개발 및 소득수준이 낮은 서부 내륙은 여전히 범용제품, 투자 수요가 존재한다. 중국을 동태적·종합적으로 접근하고 양국이 특수를 누릴 수 있도록 양국 간 비교우위에 기초한 산업구조조정도 함께 이뤄 나가야 한다.”

이민종 기자 horiz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