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전망대>21세기 중국의 ‘천동설’외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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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세영 베이징 특파원

지난해 말 인터뷰한 중국의 저명 학자는 올해 중국 외교정책은 변화가 없는, 지난해까지 제시한 어젠다를 실천하는 한 해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그의 말처럼 올해 중국이 새롭게 제창한 어젠다는 없었지만 대신 외부의 각종 사건을 치러내야 했다. 그 과정에서 민첩하게 대응하지 못하거나 예상치 못한 사건에 준비 없이 대응하느라 허둥대는 일이 많았다.

먼저, 올해 중국 외교를 가장 큰 충격과 혼란에 빠뜨린 남중국해 관련 헤이그 상설 중재재판소의 판결이다. 중국은 필리핀이 제소할 때도, 재판이 진행될 때도 “대응할 가치가 없다”면서 변론에 참여조차 하지 않다가 일방적으로 패소했다. 국제적으로 체면을 구기고 당황한 중국은 이례적으로 외교부 고위 관료가 CCTV 생방송 카메라 앞에서 장시간 얼굴을 붉히고 말을 더듬을 정도로 흥분해 목소리를 높이며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국제사회 준사법기관의 절차와 판결을 정면으로 무시한 뒤 힘으로 주장을 밀어붙인 것으로 사실상 외교의 대실패다.

그러나 중국 국내에서는 강한 반미, 반필리핀, 반일, 반한 정서가 불었고 지방 도시들에서는 ‘문화대혁명’ 때나 있었던 선동과 비이성적인 행위들이 나타났다. 매체들과 네티즌 여론은 반성이나 질책보다는 왕이(王毅) 외교부장의 ‘멋짐’을 칭송하는 기사와 게시물들이 인기를 끌었다. ‘외교’의 영역에서 보면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국내 정치’를 하고 있다고 해석하면 다소 설명이 된다.

여기에 비슷한 시기에 한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를 선언한 것 역시 중국 입장에서는 외교의 실패다. 중국은 ‘뒤통수를 맞았다’고 표현하며 한국에 대해 거친 대응을 이어가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중국의 강력하고 끈질긴 요청에도 불구하고 12월 11일 15년간의 유예기간이 끝나는 시점에도 결국 미국과 EU로부터 시장경제국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다. 미국뿐 아니라 독일과 호주 등 각국과 무역 마찰도 빚었다.

이 같은 주변의 외교적 환경에 대한 중국 당국의 대처는 거칠기 짝이 없다. 요약하자면 “강자에는 약하게, 약자에겐 강하게”다. 북한이 4차, 5차 핵실험을 해도 ‘핵실험을 했다’는 사실 보도와 함께 외교부 대변인 성명 및 브리핑을 통한 ‘외교적인 말’만 보도한 것과는 달리 한국의 사드 배치 발표 이후 한국에 대해서는 “칼춤을 춘다” “식탁 아래 기관총을 두는 격”이라는 등 각종 상상력을 동원한 수사들이 동원됐다. ‘사드 보복’을 공공연히 협박하며 안보와 관련 없는 경제, 문화, 산업 등이 모두 영향을 받았다.

최근 기자와의 식사 자리에서 “한국의 사드 도입 결정은 중국의 뒤통수를 친 것”이라고 핏대를 세우던 한 중국 관변 학자는 “중국은 사드가 미국의 것이라고, 중국을 포위하려는 미국의 뜻이라고 주장하면서 왜 미국은 제재하지 않고 한국만 제재한다고 하는지 궁금하다”고 했더니 꿀 먹은 벙어리가 됐다.

국제사회의 규범과 질서를 무시하는 북한에 대해서는 인터넷에 ‘진싼팡(金三반·김 씨 집안 3대 뚱보)’ 검색 차단을 요구하자 이를 들어준 중국이다.

이쯤 되면 상대국의 지중파, 친중파들도 할 말을 잃게 된다. 포린폴리시는 최근 중국이 과거 1960년대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힘이 커졌지만 “이웃 국가들을 윽박질러 굴종시키는 게 친구를 얻는 유용한 방법이 아니라는 건 아직도 깨닫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달라이 라마의 몽골 방문 논란 때도 몽골 국회 부의장이 용(중국)을 건드리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고 공개 발언했으나, 중국의 고압적인 위협으로 인해 중국을 고려하자는 측의 입지는 도리어 축소됐다. 사드 배치론도 마찬가지다. 배치 발표 전까지만 해도 신중설이 꽤 많았지만 중국의 고압적인 위협으로 인해 지금 한국 내에서 ‘중국의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는 외압에 굴종하는 모양새가 돼 버렸다.

환웨이쓰카오(換位思考).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한다는 중국말이다. 그러나 지금 중국 외교는 상대방을 이해하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익과 주장 위주로 세상이 돌아갈 것으로 믿는 천동설에 빠져 있다. 그러다 보니 원인과 결과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해 논리의 모순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연말, 올해 어떤 사건보다 중국을 가장 당황스럽게 하는 외부 사건이 발생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당선자의 ‘하나의 중국’에 대한 도전 앞에 중국은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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