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나가 지난달 23일 국내 복귀 기자회견을 진행한 서울 시내 식당 계단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낙중 기자 sanjoong@
KLPGA투어로 돌아온 장하나
‘물 들어올 때 노 저으라’라는 말이 있다. 잘나갈 때 열심히 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물 들어올 때 배에서 내린 이가 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투어에서 활동하던 ‘명랑소녀’ 장하나(25)다. 장하나는 지난달 초 멕시코에서 열린 로레나 오초아 매치플레이를 끝으로 LPGA투어 출전권을 자진 반납했다. 그리고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에 전격 복귀했다. 장하나는 LPGA투어 카드를 반납하기 전까지 세계랭킹 10위, LPGA투어 상금랭킹 11위를 달렸다.
장하나가 지난 2일부터 제주 롯데스카이힐 제주 골프장에서 열린 KLPGA 투어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 출전, 국내 복귀전을 치렀다. 장하나를 대회 기간 사흘 동안 만났고 지켜봤다.
첫날 경기를 마친 장하나는 밝은 표정을 담아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기자뿐 아니라 만나는 사람마다 먼저 고개를 숙였다. 장하나는 1라운드를 3언더파 69타로 끝낸 뒤 인터뷰에서 “복귀전이어서 긴장되고 설?던 하루였다”면서 “평일인데도 많은 팬이 오셔서 놀랐다”고 복귀 소감을 말했다. 장하나는 표정부터 달랐다. 행복을 찾으러 한국에 돌아왔기에 만족스러운 듯. 장하나는 복귀전에서 소원대로 부모와 팬클럽 ‘하나짱’ 회원을 비롯한 많은 사람에 둘러싸여 플레이했다. 국내 복귀소식이 알려지면서 팬클럽 회원 수가 1300명으로 늘었다. 최근 열흘 사이 400∼500명이 새로 입회했을 정도다. 이 때문에 이번 대회 내내 장하나는 가장 많은 갤러리를 몰고 다녔다.
장하나가 시원한 티 샷을 날리면 관중 사이에선 “굿 샷” “나이스 샷”이란 구호가 어김없이 터졌다. 팬들은 “부모와 함께하며 더 즐거운 골프 인생을 살고 싶다”는 장하나에게 효심이 깊다는 뜻의 ‘장심청’이란 별명을 붙여줬다.
장하나는 4일 끝난 롯데 칸타타 여자오픈에서 공동 9위를 차지했다. 전날 2라운드까지 선두에 1타 뒤진 공동 3위에 올라 내심 우승까지 노렸으나 마지막 날 버디 3개와 보기 4개로 1타를 잃으면서 순위가 내려갔다.
그러나 장하나는 순위에 아랑곳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어머니의 든든한 응원을 제대로 받아 힘을 냈다”면서 활짝 웃었다. 장하나는 “대회 첫날 제가 오르막에서 ‘아이고’라는 앓는 소리를 냈더니 어머니가 ‘딸 힘내, 파이팅!’이라고 외치셨다. 어머니의 파이팅이란 말처럼 투지가 솟구쳤다. 어머니가 갤러리가 되시니, 운동도 돼 건강에도 좋을 듯싶다”고 말했다.
장하나는 유쾌한 세리머니로 사랑을 받는다. 장하나는 “이번 국내 복귀전에서 세리머니를 준비했지만 아쉽게 우승하지 못했으니 공개하지 않겠다”며 “대회에 나갈 때마다 세리머니를 준비는 하는데 그 주에 맞는 이미지, 대회의 이미지를 고려해 세리머니를 정한다”고 설명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토요일 저녁이면 세리머니를 확정한다고 귀띔했다.
LPGA를 주름잡았기에 팬들은 장하나를 보는 눈높이가 높아졌다. 하지만 장하나는 겸손하다. 장하나는 “LPGA 투어에서 활약하면서 초청선수로 국내 대회에 출전하는 것과 지금은 느낌이 다르다”며 “KLPGA투어 시드는 올해까지라 2∼3년 마음 편하려면 올해 꼭 우승해 시드를 확보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느낀다”고 덧붙였다. 지나치게 긴장한 탓이었을까. 장하나는 복귀전 첫날 6번 홀에서 ‘수모’를 겪었다. 드라이버로 친 티샷이 OB가 났는데 ‘5년 만의 OB’였단다.
물론 장하나의 한국행을 두고 ‘의외’라는 반응이 일반적이다. 장하나는 LPGA투어 진출 2년 6개월 만에 4승을 거둔 A급이다. ‘골프여왕’ 박세리를 제외하고 한국 선수 중 그 누구도 이처럼 짧은 시간에 이 같은 성과를 올린 적은 없다. 이 때문에 장하나는 LPGA투어에서도 ‘전도유망’으로 분류됐다. LPGA투어는 골프선수라면 선망하는 세계 최고의 무대.
하지만 장하나는 미국 생활을 접고 한국으로 유턴했다. 그동안 LPGA투어에서 국내로 유턴한 경우는 수없이 많다. 대부분 LPGA투어에서 몇 년간 우승하지 못하는 등 정체돼 국내로 돌아왔다.
그런데 장하나는 올해 호주여자오픈 우승으로 2019년까지 LPGA투어 출전권을 확보한 상태에서 국내로 돌아왔다.
혹자는 지난해 발생한 가방 사건에서 이유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당사자인 장하나는 웃으며, 하지만 단호하게 “노”라고 대답했다. 장하나는 국내 복귀를 지난해부터 머릿속에서 그려왔다고 설명했다. 장하나는 “외동딸을 둔 부모님이 65세를 넘긴 고령이어서 더 이상 딸을 위해 미국을 오가며 투어 뒷바라지를 하기에 힘들었다”며 “부모님과 함께 즐거운 골프인생을 가꿀 수 있는 곳은 국내뿐이라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장하나는 그동안 아버지 장창호(65) 씨와 투어 생활을 했으며 어머니 김연숙(66) 씨는 홀로 한국에 머물러왔다. 아버지 장 씨는 “아내도 곧 일흔이 되는데, 1년에 340일을 혼자 지내느라 심신이 지쳤다”면서 “하나가 복귀를 결심한 결정적인 이유”라고 말했다.
장하나는 지난달 23일 서울 시내의 한 식당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세계 최고가 되는 것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더 소중하다고 생각해 국내로 복귀한다”고 발표했다. 기자회견장에 참석했던 어머니는 연신 눈물을 흘렸지만, 앞으로 딸이 늘 곁에 있게 됐다는 안도감 덕분인지 중간중간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
장하나는 “세계 최고가 유일한 목표인 줄 알았지만 우승을 해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다”면서 “일흔이 눈앞인 어머니가 늘 눈에 아른거렸기 때문이고, 그래서 외롭게 지내시는 걸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고 밝혔다.
장하나는 생기발랄한 겉모습과는 달리 3년간 미국에서 생활하면서 몸도 마음도 피폐해졌다고 고백했다. 지난해엔 예기치 않은, 전인지와 연루된 ‘가방 사건’의 가해자가 돼 마음의 병이 더 커졌다. 심리적인 고통은 몸도 망가트렸다. 선수 이전에 여자로서 말 못할 정도로 건강이 나빠졌고 선수 생활의 기로에 섰다. 가방 사건 이후 국내로 들어와 매일 병원을 다니면서 치료를 받았다. 정신과 상담까지 받았다. 외부 전화는 일절 받지 않았다. 사실상의 은둔생활. 부모는 죄인 취급 받는 딸의 상처를 보면서 애가 끓었다. 외동딸과 부모는 이렇게 힘든 시간을 보냈지만, 엉뚱한 소문은 단호하게 반박했다.
‘행복 찾기’에 나선 장하나는 지난달 29일 제주에 도착, 부모와 제주 토속 음식을 먹으러 다니는 단란함을 연출했다. 장하나는 “앞으로도 어머니를 모시고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다니고 아름다운 풍경을 찾아다니겠다”고 다짐했다.
장하나는 오는 9일부터 11일까지 제주 엘리시안 골프장에서 열리는 S-오일챔피언십에도 출전할 예정이다. 20일 동안 제주에서 그토록 사랑하는 부모와 함께 지낸다. 인근 골프장 내 빌라를 빌려 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챙겨 먹는 것도 행복의 일부. 장하나의 어머니는 서울 서초구 반포 지하상가에서 맛집으로 소문난 고깃집을 운영해 온 터라 ‘손맛’이 무척 뛰어나다.
장하나는 어릴 적 ‘골프 신동’으로 불렸다. 초등학생 시절 260야드를 넘나드는 장타를 날렸고 중학생 신분으로 국가대표로 발탁돼 아마추어 세계골프 무대를 평정했다. 2010년 프로에 데뷔한 이후 KLPGA투어에서 3시즌 만에 상금왕에 올랐고 2년 연속 최고 선수로 군림했다.
장하나는 그리고 2015년 스타들이 그러하듯 LPGA투어에 입성했다. 다소 과할 정도로 발랄한 몸짓과 거침없는 스윙으로 미국 무대를 손쉽게 접수했다. 데뷔 첫해 톱10에 8차례나 들었고 이 가운데 4차례는 준우승이었다. 데뷔 2년 차이던 지난해 시즌 3승을 거뒀고, 올해 초 호주여자오픈 우승으로 한국 선수 중 가장 먼저 첫 승을 신고했다.
장하나는 선수라면 모두가 부러워할 위치였지만 영예를 뒤로하고 가족과 행복을 찾아 새로운 골프인생을 시작했다.
장하나의 선택은 그동안 1등만을 좇으며 살아왔던 선수에겐 분명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터. 그리고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아직 모른다. 장하나의 선택이 돋보이는 가장 큰 이유다.
인터뷰 = 최명식 부장(체육부) mscho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