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신동력 고갈되는 한국경제>‘사령탑 없는’ 삼성전자, 미래투자 어쩌나

3차례 선제투자로 최대실적 증명
新사업 주도 이재용 부회장 부재
재계 “빠른 의사결정 필요한데…”

2009년 1월 23일 삼성전자 서초사옥이 싸늘한 긴장감에 휩싸였다.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가 덮치면서 삼성전자는 이날 2008년 4분기 7400억 원 영업손실이란 충격적인 실적을 내놓았다. 삼성전자가 2000년 분기별 실적을 집계한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한 것이다. 당시 전 세계 주요 기업들은 생존하기 위해 투자부터 줄였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달랐다. 1개월가량 지난 그해 2월 18일 삼성전자는 ‘초격차 전략’을 선포했다. 2년에 걸쳐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23조 원 이상 쏟아부었다. 이후 삼성전자는 반도체 시장 내 ‘치킨게임’의 승자가 되면서 현재까지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13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가 올 2분기에 일궈낸 사상 최대 실적은 과거 3차례 단행됐던 투자의 결실이다. 지난 10년 동안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이 딱 두 번 역성장한 때 삼성전자는 이를 투자의 적기로 삼았다.

2009년에 이어 2012년 삼성전자는 반도체에 다시 한 번 승부수를 걸었다. 그해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갤럭시S3가 대박을 터뜨리면서 연간 영업이익 29조 원을 벌었다. 한 해 영업이익 절반이 넘는 약 18조 원을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에 모두 투자했다.

세 번째 승부수는 2015년 평택 반도체 공장 투자 결정이다. 15조 원을 들여 평택공장을 짓기로 한 그해는 세계 최대 종합반도체회사 인텔과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업체 TSMC가 반도체 시황을 부정적으로 판단해 설비투자를 대폭 줄였던 시기다. 최근 가동한 평택공장 출하량은 올해 3분기 실적부터 잡힌다. 깜짝 실적은 하반기에도 이어질 것이란 얘기다.

3차례 결단은 4차 산업혁명 수요가 폭발되는 시점에 맞춰 적기에 투자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실적이 고공행진할 수록 삼성전자 내부에서 위기감은 짙다. 삼성전자는 선행 투자가 몇 년 후 실적으로 증명되는 경험치를 가진 조직이지만 최근 사업구조를 개선할 만한 투자는 제자리걸음이란 이유에서다.

실제로 삼성전자는 지난해 11월 미국의 자동차 전자장비(전장) 전문기업 ‘하만’을 9조 원에 인수한 이후 올 들어서는 대형 인수·합병(M&A) 발표가 단 한 건도 없다. 삼성전자는 이재용 부회장의 주도로 2014년 이후 약 3년간 M&A 15건을 추진하며 신사업에 진출해왔다.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전장업체 등 주로 삼성이 신사업으로 삼고자 하는 혁신 기술을 가진 기업들이 대상이다.

재계 관계자는 “시장 수요에 대응해 부품을 공급하고 있는 것이지, 삼성이 주도하는 기술 리더십이 없다는 점이 우려된다”며“산업구조 변화를 기회로 살리기 위해서는 강한 리더십과 빠른 의사결정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