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무더운 여름을 지내면서 우리는 지구 온난화가 바다 건너 일이 아니라는 걸 절감한다. 기후변화는 거대 빙하의 융해와 해수면 상승을 떠오르게 한다. 국내에서 10여 권의 책이 번역된, 고고학과 인류학 분야의 저명한 학자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인 브라이언 페이건의 이번 책은 ‘인류의 터전을 침식하는 해수면 상승의 역사와 미래’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선사시대부터 벌어진 해수면 상승의 역사를 소개하고 금세기에 닥칠 수 있는 위협에 대해 경고한다.
2만1000년 전 해수면은 지금보다 정확히 122m 낮았다. 인류가 겪은 마지막 빙하기가 1만5000년 전에 끝난 뒤 대해빙이 시작됐다. 해수면의 첫 번째 급상승(펄스·pulse)은 1만9000년 전이었고, 해수면은 10∼15m 상승했다. 두 번째 펄스는 1만4600∼1만3600년 전으로, 해수면이 16∼24m 상승했다. 마지막 펄스는 기원전 6200년∼기원전 5600년 사이에 있었고 약 1m 안팎의 소규모 상승이었다. 이 시기인 기원전 5500년 무렵, 민물 호수로 초기 농경 인구의 터전이었던 ‘에욱시네 호수’(흑해)가 지중해의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순식간에 바다가 됐다. 이는 ‘노아의 방주’의 신화를 낳은 역사적 근거로 여겨진다.
당시 인류는 그 수가 워낙 적었고, 수렵 생활 위주였기 때문에 해수면이 상승해도 다른 곳으로 이주하거나 고지대로 옮기면 됐다. BC 4000년∼BC 3000년 무렵 지구의 해수면 상승은 사실상 멈추었다. 해수면 상승 속도는 19세기 중반 인류가 산업혁명의 절정기에 진입하기 전까지 매우 느렸다. 그 사이 인류는 거대한 문명을 쌓았다. 도시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했고, 인구는 점점 조밀해졌다. 엄청난 양의 퇴적물이 쌓여 광활한 삼각주가 발달하는 강어귀는 매혹적인 삶의 터전이었고, 도시는 그런 곳에 발달했다. 산업 혁명의 절정기인 1860년쯤부터 다시 해수면 상승이 시작됐다. 화석원료의 남용은 온난화에 일조했다. 최근 수십 년간 가속화된 해수면의 변화는 누적적이고 점진적인 양상이지만, 상승이 언제 끝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태평양 중부의 섬나라 키리바티의 한 해변 마을이 해수면 상승으로 잠겨 들고 있는 모습. 지구온난화로 가장 직접 적인 피해를 보는 이 지역 섬들의 거주민은 호주나 뉴질랜드 등으로 이주를 모색하고 있다. 자료사진
지구온난화는 1880년 이후 해수면을 약 20㎝ 높였는데, 지역별로 편차가 있지만 상승 속도는 계속 빨라지고 있다. 과학자들은 이번 세기에 20∼203㎝ 상승할 것이라고 예상한다. 만약 현재의 속도대로 온실가스 배출이 계속된다면 다음 몇 세기에 그린란드와 남극 빙하 일부가 녹으면서 우리는 최소 4∼6m 상승한 바닷물에 갇히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북극해 근처의 여러 마을은 곧 바다에 잠길 것이지만, 미국에 속한 이들 공동체는 부유한 조국이 지원해줄 것이기 때문에 행운이다. 금세기에 물에 잠길 것이 거의 확실한 인구 1만 명의 투발루는 뉴질랜드가 이주를 확약했고, 인구 11만 명의 키리바티는 호주에 도움을 구하고 있다. 반면 고도가 2.4m에 불과한, 인구 30만 명 규모의 몰디브는 뚜렷한 이주 계획을 세우지 못했다.
뭍도 안전하지는 않다. 2012년에 도시의 70%가 물에 잠긴 지중해의 베네치아는 퇴적 능력을 강화하지 않으면 40년에 걸쳐 15∼20㎝ 가라앉을 것으로 예측된다. 중국 상하이(上海)도 주변의 해안선 절반이 침식 상태에 있어 해수면이 1m 상승하면 상하이 전체가 물밑으로 사라질 것이다. 방벽을 건설할 재원이 없는 방글라데시는 다음 세기에 예상되는 1m 이상의 해수면 상승으로 1000만 명 이상의 난민이 생길 수 있다.
바다의 습격은 ‘이주’냐, ‘방벽’이냐 선택을 강요하지만, 인류는 이주할 공간도 적고, 또 쉽게 ‘터전’을 버릴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다. 남은 선택지는 ‘제방’, 즉 방벽 건설밖에 없을 것으로 저자는 전망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대비책이 원시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지금은 그것밖에 없다. 늪지와 습지, 맹그로브(열대와 아열대의 갯벌이나 하구에서 자라는 목본식물)는 퇴적물의 자연적인 누적을 통해 지반이 상승하는 토대가 되고, 침식 현상이 일어나도 준비할 시간을 벌어준다. 저자는 네덜란드인들이 수행한 거의 1000년에 걸친 ‘바다와의 싸움’의 기억을 ‘지속적인 집단의 기억’으로, 나아가 문화의 일부로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59쪽, 1만5000원.
엄주엽 선임기자 ejyeob@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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