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테러지원국 北엔 강단 있는 外交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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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 前 駐유엔 대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일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지난 8월, 90일 내 지정 여부 결정을 요구했던 미국 의회에 대한 행정부의 약간 늦은 조치다. 미국은 애초 북한이 일본 적군파 비행기납치범을 비호하고, 아웅산 테러 및 KE858기 폭파 테러를 자행하자 1988년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이후 2008년 북한이 영변의 냉각탑을 폭파하면서, 미국은 임기 막바지 조지 W 부시 행정부 때의 업적으로 향후 있게 될 검증 조치에 대한 진전을 기대하며 반대급부로 20년간 유지해온 테러지원국을 해제했다.

그러나 그 후 북한이 검증 절차에 대한 협상을 거부하고 플루토늄과 고농축우라늄으로 핵 개발을 계속하면서 6자회담은 무용지물이 되고, 국제법과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하며 각종 도발과 테러를 자행함에 따라 미국 내에서 테러지원국 재지정 요구 여론이 비등하게 됐다. 의회에서는 지난 수년 동안 몇 차례 테러지원국 지정 법안이 제출되기도 했으나 버락 오바마 행정부의 소극적인 태도로 별 진전이 없었다. 이제 트럼프 대통령 취임 10개월 동안 김정남 암살, 오토 웜비어 억류 및 사망, 핵실험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말 폭탄 등이 이어지면서 워싱턴 조야에 팽배한 대북 혐오 분위기를 대변하는 의회의 요구에 따라 행정명령 성격으로 재지정하게 됐다.

북한은 미국으로부터 이미 무기 수출입, 무역, 금융, 대외 원조, 교역, 교류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폭넓은 제재를 받고 있다. 따라서 이번 조치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혐오와 불신의 정도를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굳이 효과를 찾는다면 북한 정권을 상대로 한 미국 시민의 소송 제기가 가능해지고, 북한의 IMF, ADB 등 국제 금융기구 가입이 원천적으로 봉쇄되는 등을 꼽을 수 있다.

북한은 국제사회로부터 더욱 단절·고립되고 있다. 유엔은 국제사회에 북한과의 외교관계 단축을 요청했다. 말레이시아는 북한대사관을 폐쇄했고, 북한의 전통적 우호국들인 우간다, 베트남, 수단 등은 외교관계를 축소했으며, 이탈리아, 쿠웨이트, UAE, 페루, 멕시코, 스페인, 포르투갈 등은 북한 대사를 내쫓았고, 필리핀과 싱가포르는 무역관계를 단절했다. 과거 남아공의 인종차별정책에 대한 국제사회의 제재에 버금가는 조치들이다. 이 모든 게 북한이 자초한 일이다.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의 표현대로 북한은 국제사회에서 ‘최악의 규범 파괴자(worst norm breaker)’라는 오명을 피할 수 없다.

우리 정부는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위해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이끄는 노력을 지속한다는 한·미 간 공동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객관적으로 볼 때 당분간 우리 정부가 희망하는 2018 평창동계올림픽의 북한 참여와 남북 간 대화 및 교류 가능성은 작아지고, 미·북 관계 악화, 북한의 핵 및 미사일 실험 같은 추가 도발 가능성은 커질 것이다. 정부로서는 곤혹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나 지금은 북한을 다룰 때 어떠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생각해야 할 때다. 외교에 있어 가끔 마주치는 딜레마 중의 하나는 장기전략적 목적과 단기적 조치가 때로는 모순되는 상황이 있다는 것이다. 이를 강단(剛斷)을 가지고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것이 고도의 외교술이다. 또한, 테러와 북한 인권 문제는 동전의 양면이다. 우리가 감싸 안고 구제해 나가야 할 대상은 북한 주민이지, 옥수수만 먹다가 탈출하는 병사에게 총질하는 폭압의 정권이 아님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