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투’ 확산>침묵하는 고은… 곤혹스러운 작가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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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문화계 조사·재발방지委 필요”

崔 시인·임경선 작가 등
여성·법조계 참여 촉구

고은, 입장표명 일절 없어
수원시 광교산 떠나기로

새 집행부 꾸린 작가회의
“4월 이사회서 논의” 밝혀

민족 시인으로 추앙받던 고은 시인의 성추행과 관련해 시인의 공식적인 입장 표명이 없는 가운데 범 문화예술계 성폭력 조사 및 재발방지 공식 기구가 구성돼야 한다는 요구가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고은 시인이 상임고문을 맡고 있는 한국작가회의는 아직 새 집행부가 인수인계도 받지 않았다며 4월 이사회에서 이 문제를 논의하겠다고 밝힌 상황이다.

‘괴물’이라는 시를 통해 ‘En선생’이라는 이니셜로 고은 시인의 성폭력을 고발한 최영미 시인은 17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저뿐 아니라 그로 인해 괴롭힘을 당한 수많은 여성들에게 괴물의 제대로 된 사과, 공식적인 사과와 반성을 원한다”고 밝혔다. 최 시인은 “언젠가 때가 되면 ‘괴물’의 모델이 된 원로시인의 실명을 확인해주고, 그가 인사동의 어느 술집에서 저를 성추행했을 때의 실제 상황, 그리고 1993∼1995년 사이의 어느 날 창작과비평사의 송년회에서 제가 목격한 괴물의 (유부녀 편집자를 괴롭히던) 성폭력에 대해 말할 생각”이라고 했다. 이어 그는 문단 내 성폭력이 구시대의 유물로 남기를 바라며, 문단 내 성폭력을 조사하는 공식적인 기구가, 작가회의만이 아니라 문화체육관광부, 여성단체, 법조계가 참여하는 문화예술계 성폭력 조사 및 재발방지위원회가 출범하기를 요청했다. 임경선 작가 등도 이 같은 내용을 리트위트하며 범 문화계 위원회 출범을 촉구했다.

최 시인은 “권력을 쥔 남성 문인들의 이러저러한 요구를 (노골적으로 요구하지 않더라도 결국 성적인 함의를 포함한 메시지를) 거절했을 때, 여성 작가가 당하는 보복은 당장 눈에 보이지 않는다. 오랜 시간에 걸쳐 ‘제외되는’ 식으로 문단의 주변부로 밀려난다. 그들에게 희롱당하고 싶지 않아 문단 모임을 멀리하고 술자리에 나가지 않으면, 더 큰 불이익을 당한다”며 “문단 카르텔 속에서 여성 문인이 당하는 피해를 쉽게 설명하려 한 예를 들었을 뿐, 제가 방송 인터뷰에서 문단 내 성폭력과 보복이 진행되는 과정 전체를 일반화한 건 아니다”고 설명했다.

성추행과 관련, 한 언론을 통해 “후배 문인을 격려하는 취지였다”고 밝힌 뒤, 입장 표명을 일절 하지 않고 있는 고은 시인은 18일 고은 재단을 통해 올해 안에 현재 거주하고 있는 경기 수원시를 떠나겠다고 밝혔다. 시에 따르면 재단 측은 “시인이 지난해 5월 광교산 주민들의 퇴거 요구를 겪으면서 수원시가 제공한 창작공간에 거주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고, 이주를 준비해 왔다”며 “자연인으로 살 수 있는 곳에 새로운 거처를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수원시는 고은 시인의 뜻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en시인과 함께 방송을 진행하며 그의 여러 우스운 만행들을 접했고, ‘en 주니어’들이 넘쳐나는 한국 문단에서 오래 성희롱을 겪어왔다”는 이혜미 시인의 고발 등이 이어지고 있지만, 문단 내에서는 이에 대한 책임 있는 반성과 성폭력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은 보이지 않고 있다. 또 고 시인이 지난해 한 방송에 출연해 문단 내 성폭력과 관련해 “문인들도 사회적·윤리적인 책임을 강하게 의식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한 사실이 재조명받으며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일단 한국작가회의 측은 등단을 미끼로, 지위를 이용한 성추행, 성희롱, 성폭행에 대해 단호히 반대한다는 입장만 밝힌 상태이다. 작가회의 사무국은 최근 새 이사장과 사무총장이 선출돼 인수인계도 받지 못한 상태라며 집행부가 꾸려지고 난 뒤에야 구체적인 논의가 가능하다고 밝혔다.

한편 과거 성추행 전력으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감태준 신임 한국시인협회 회장은 곧 기자회견을 열어 억울함을 호소하겠다고 밝힌 상태로, 귀추가 주목된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