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法 대등재판부’ 늘렸지만… 1심서 차출 2심 채우는 ‘아랫돌 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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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연구원 확보 안해 졸속

합의부 수직적 관계 개선 도입
올해 전국 고법에 11곳 증설
재판연구원 총 22명 신규 필요
법원조직법에 묶여 증원 불가
인력 부족 하급심 충실화 역행

대법원이 사법 개혁의 일환으로 ‘고등법원 대등재판부’를 늘리고 있지만, 이곳에 배치될 재판연구원(로클럭)이 모자라 하급심 인력까지 차출해야 하는 상황에 놓인 것으로 드러났다. 재판부 업무를 도와주는 로클럭이 부족해 결국 국민을 위한 사법 개혁의 취지가 무색해진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랫돌을 빼내 윗돌을 괴는 식이라는 점에서다.

대등부란 고법 부장판사와 연차 차이가 작은 지방법원 부장판사급 ‘고법 판사’로 구성된 재판부다. 기존 합의재판부가 연차 차이가 큰 고법 부장판사와 배석판사로 이뤄져 말만 합의부지 실제로는 수직적 관계가 되기 쉬웠던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도입했다.

27일 법원에 따르면 최근 2월 정기 법관 인사 이후 전국의 각급 법원들이 사무 분담을 끝낸 결과, 서울·대전·대구·광주·부산고법 본원의 대등부가 지난해 대비 11개 늘어 총 63개로 집계됐다. 2011년부터 매년 15명 안팎으로 선발했던 고법 판사를 올해 처음 30명으로 대폭 늘리면서 대등부도 덩달아 늘어났다. 문제는 대등부의 증가세에 비해 이를 뒷받침할 로클럭은 부족하다는 점이다. 법원은 통상 대등부에는 2명씩, 비(非)대등재판부에는 1명씩 로클럭을 배치해주고 있다. 이번에 11개 대등부가 신설되면서 로클럭 22명이 신규로 필요해졌으나, 제한된 로클럭 정원 때문에 1심 재판부에 배치돼 있는 로클럭들을 끌어 올려야 하는 상황이 됐다. 법원 관계자는 “이번에 대등부가 대폭 늘어나면서 로클럭을 재배치하는 것은 불가피하다”고 밝혔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국민의 재판받을 권리를 더욱 충실히 보장하겠다는 사법 개혁의 취지에 반한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로클럭들이 자료 리서치·검토 등으로 재판부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다”면서 “로클럭을 전부 2심으로 데려오게 되면 하급심 재판부들의 업무에 큰 어려움이 따를 것이고, 결국 하급심 충실화 기조에 역행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는 근본적으로 관련 법률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해 로클럭의 정원·임기가 제자리걸음인 현실 때문이라는 비판도 나온다. 현재 국회에는 현행 2년인 로클럭의 임기를 3년으로 늘리고 정원을 200명으로 제한하는 조항을 삭제하는 등 법원조직법 일부 개정안이 상정돼 있지만, 법무부와 변호사업계가 “법관 순혈주의가 확대될 수 있다”며 반발해 1년 넘게 계류 중이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