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에 도전한 ‘예능참고서’ 무한도전이 바꾼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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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종영

콩트·토크쇼 등 실내예능 벗고
야외서 ‘리얼 버라이어티’ 개척

PD, 자막으로 프로그램 개입
이젠 자막없는 예능 상상못해

가요제부터 달력제작 등 소통
팬덤 형성한 유일한 프로그램
김태호·유재석 향후행보 관심

박수칠 때 떠나지 못하는 것은 모든 예능 프로그램의 비애다. 회차가 정해진 드라마는 통상 마지막회에서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두는 반면, 아무리 인기 높은 장수 예능 프로그램도 ‘이제 좀 그만하라’고 할 때 초라하게 막을 내린다. 하지만 MBC ‘무한도전’(연출 김태호)은 다르다. 2005년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해 2006년 ‘무한도전’으로 간판을 바꿔 단 이후 12년간 명맥을 유지한 이 프로그램을 향해 시청자들은 “가지 말라” 외친다. 하지만 이미 종착역은 정해졌다. 오는 31일 지난 12년간 시청자들을 울리고 웃긴 ‘무한도전’은 마침표를 찍는다.

◇대한민국 예능 판도를 바꾸다 = 한국의 예능은 ‘무한도전’ 전과 후로 나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무한도전’ 전에는 대본을 바탕으로 한 콩트, 토크쇼 등 실내 예능이 대세였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스튜디오에서 과감히 벗어났다. 여기에 ‘리얼’을 덧붙였다. 대본이 있지만 틀일 뿐, 속살은 현장에서 멤버들이 좌충우돌하며 메웠다.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의 개막이다. 이후 ‘1박2일’ ‘패밀리가 떴다’ 등 유사 프로그램이 등장했고, 현재도 ‘1박2일’을 비롯해 SBS ‘런닝맨’ 등이 그 명맥을 잇고 있다.

◇‘국민 MC’의 탄생 = 대한민국 평균 이하임을 자처하는 남자들이 매주 새로운 상황 속에서 펼치는 좌충우돌 도전기. ‘무한도전’의 공식 소개글이다. 2006년 당시만 해도 리더 유재석을 비롯해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하하, 노홍철 등은 ‘1등 방송인’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무한도전’의 12년 역사는 그들의 성장기이기도 하다. 노홍철을 제외한 모든 멤버가 ‘무한도전’에 출연하며 결혼을 했고, 아빠가 됐다. 유재석은 ‘무한도전’ 출연 이후 총 14차례 연예대상(MBC 개인 5회·팀 1회, SBS 5회, KBS 2회, 백상예술대상 1회)을 거머쥐었고, 다른 멤버들도 타 프로그램의 메인 MC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그들은 ‘무한도전’의 녹화일인 목요일은 항상 비워뒀다. ‘무한도전’이 이쯤에서 멈추는 것은 그들이 나이 먹어서가 아니라, 더 이상 ‘대한민국 평균 이하’가 아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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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전성시대의 개막 = ‘무한도전’ 이전, 시청자들은 카메라 렌즈 앞만 봤다. 그 뒤에 있는 수많은 스태프는 볼 수 없었다. 하지만 ‘무한도전’의 12년을 책임진 김태호 PD는 사실상 ‘제7의 멤버’였다. 그는 적극적으로 프로그램에 개입했다. 자막을 통해서다. 하나의 상황에 다양한 의미를 부여하는 ‘무한도전’식 자막쓰기는 이후 예능의 바이블이 됐다.

순환 근무를 하는 방송사 특성상 한 PD가 프로그램을 끝까지 책임지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예외였다. 일정한 틀이 없어 사실상 매회 특집이나 다름없던 ‘무한도전’을 이끌어갈 수 있는 이는 김 PD밖에 없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MBC 예능국 관계자는 “김태호 PD는 크리에이터로서 전체 PD의 위상을 높였다”며 “최근 예능 PD들이 다양한 분야로 스카우트 되는 것은 김 PD가 크리에이터의 중요성을 증명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팬들과 소통하다 = ‘무한도전’은 팬덤을 형성한 유일무이한 예능이다. 소위 ‘무도빠’라 불리는 이들의 열렬한 지지 속에 ‘무한도전’은 성장을 거듭했다. 그 배경에는 적극적인 소통이 있었다. 다양한 가요제를 통해 팬들을 현장에 불러모았고, HOT와 젝스키스 등 팬들이 그리워하는 스타들을 다시 수면 위로 끌어올리며 복고 열풍을 주도했다. 팬들의 사연을 받은 후 그들의 결혼식 축가를 불러주고(웨딩싱어스) 해외에 있는 동포에게 고국에 계신 어머니가 만든 음식도 전달하는 등 소외된 이웃을 돌아보고, 사회적 메시지를 담은 특집(배달의 무도)으로 깊은 울림도 전했다. 달력을 만들어 판 수익, 각종 가요제 음원 수익 등으로 조성해 사회 각계각층에 전달한 누적 장학금만 63억 원이 넘는다.

◇‘무한도전’ 이후, 예능 판도 어떻게 될까 = ‘무한도전’의 시즌제 전환이 검토되고 있지만, “김 PD와 유재석이 없는 ‘무한도전’은 의미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래서 후속 프로그램 역시 새 이름, 새 형식으로 준비 중이다.

거꾸로, ‘무한도전’을 마친 김 PD와 유재석 등의 행보도 관심사다. 김 PD가 또 다시 예능의 판도를 바꿀 프로그램을 내놓을 수 있을지, 유재석이 ‘무한도전’ 없이도 국민 MC의 면모를 이어갈지 시청자들은 궁금하다. 10여 년간 이어진 리얼 버라이어티 시대는 ‘무한도전’과 함께 저물 가능성이 크다. 이미 먹방을 비롯해 육아, 관찰 예능 등이 변덕 심한 시청자들의 이목을 사로잡고 있다. 본디 샘물을 퍼내면, 새 물이 샘솟는 법이다.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