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기밀 공개하는 정부… 中에 노하우 유출하는 꼴

- 고용부 작업환경 보고서 논란

최첨단 3D 낸드 공정 정보 담겨
삼성 “공개 막아달라” 행정소송
직업병 피해자 변론한 변호사가
고용부측 실무… 공정성 논란도

반도체 공장 산업 재해를 둘러싼 논란이 합당한 수준의 정보 공개 범위를 넘어 기업의 생존을 좌우하는 영업비밀까지 위협하는 사태로 확산되고 있다. 정부가 산재 피해를 입증한다는 명분으로 직접 연관되지 않은 삼성의 반도체와 디스플레이의 핵심 공정 자료를 외부에 공개하면서 생산 기술 노하우가 통째로 노출될 우려가 커지고 있다.

5일 전자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2일 반도체 전(前) 공정을 담당하는 경기 기흥·화성·평택 반도체 공장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 공개를 막기 위해 국민권익위원회 산하 중앙행정심판위원회에 행정심판을 청구했다. 이와 함께 수원지방법원에도 행정소송을 냈다. 이는 최근 고용노동부가 충남 아산시 삼성디스플레이 공장에 이어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 3곳의 작업환경 측정보고서를 공개하기로 결정한 데 따른 것이다.

삼성전자가 고육지책으로 행정소송을 택한 것은 보고서에 포함된 정보 범위 때문이다. 측정보고서에는 공장 구조와 공정 순서, 개별장비 배치도 등이 모두 담겨 있다. 최첨단 설비인 평택 3D 낸드플래시 공정 정보도 들어있다. 반도체 업체가 기밀로 분류하는 ‘레시피(공정작업 내용)’도 일부분 포함됐다. 화학제품 종류와 사용량이 기재돼 각 공정에 사용되는 화학물질 배합과 생산량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 반도체 공정에서는 어떤 화학물질을 얼마나 쓰느냐에 따라 공정의 성공 여부와 제품 품질이 결정된다. 이는 수 십 년 동안 삼성전자가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찾아낸 노하우이자, 자산이다.

그동안 산재 소송이 진행되면서 반도체 사업장 정보를 공개하라는 요구는 끊이지 않았다. 앞서 삼성전자와 삼성디스플레이는 작업장 내 대기질 등 환경분석 내용, 화학물질 종류, 근무현황 등 산재를 증명할 수 있는 정보를 모두 제공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다만 경쟁업체로 넘어갔을 때 치명적인 경영·영업상 기밀만 제외해 달라고 요구해왔다.

공정성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삼성전자 사업장에서 발생한 직업병 관련 소송에서 피해자 측을 변론한 변호사가 고용노동부에서 기업 정보 공개 여부를 다루는 실무 책임을 맡고 있다. 이에 정보 공개의 타당성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하는 정부가 공정성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는 이 같은 정부의 기조가 반도체 외에 다른 첨단 산업으로 번질 것을 우려하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업체의 추격이 거센 와중에 수십년 간 어렵게 쌓아온 노하우가 유출될 경우 기술 경쟁력이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타격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권도경 기자 kw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