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관회의 의장이 ‘재판 거래’ 기정 사실화… 갈등 격화

법원행정처에 대고 “헌정 유린”
특조단 조사 결과와 다른 논리

일선판사 “재판 개입 없었는데
언론보도 인용하며 선동 우려”

대법원장은 현직판사 징계절차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과 관련, 법원 내부의 갈등이 수습하기 힘든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문제에 대해 김명수 대법원장이 “그런 부분까지 고려하겠다”고 하면서 불붙은 갈등은 31일 논쟁지점이 확대되고 참여층이 늘어나면서 심화하는 양상이다. 일선 판사들은 전국법관대표회의 의장인 최기상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가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전 법원행정처 판사 등에 대한 고발을 촉구하는 글을 법원 내부 게시판에 올리면서 갈등을 격화시키는 데 대해 우려하고 있다. 또 6월 11일 법관회의를 앞둔 상황에서 “최 의장의 글이 선동으로 오해받을 소지가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재판 거래’ 기정사실화는 문제 = 최 의장은 사법행정권 남용 논란에 대한 특별조사단의 조사 결과에 대해 “법원행정처가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해 성향과 동향을 파악하고 학술 활동의 자유를 침해한 것은 반헌법적 행위”라며 “김 대법원장에게 헌정 유린 행위 관련자들에 대해 그 책임에 상응하는 엄정한 조치를 할 것을 촉구한다”고 주장했다. 최 의장은 ‘재판 거래’를 기정사실화하면서 엄정한 조치가 필요하다고 봤다. 최 의장은 “법원행정처가 재판을 정치적 거래나 흥정의 대상으로 삼는 행위를 통해 주권자인 국민의 공정한 재판에 대한 기대와 사법권의 독립이라는 헌법적 가치를 부정함으로써 사법부 스스로가 그 존재의 근거를 붕괴시키는 참담한 결과에 이르렀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는 25일 특조단이 발표한 조사보고서와 차이가 있다. 특조단은 또 28일 기자 대상 간담회에서도 청와대와 법원행정처 사이에 재판 거래는 없었다고 밝혔다. 서울고법의 한 부장판사는 최 의장의 게시판 글과 관련해 “법원행정처가 부적절한 보고서를 작성한 것은 맞으나 재판에 개입하지 않은 것이 분명한데 헌법적 가치를 부정했다고 볼 순 없다”고 말했다. 해당 판사는 최 의장이 ‘언론에 따르면 KTX 승무원 사건의 원고 중 한 분은 패소 판결을 받은 후 절망감과 빚 부담으로 힘들어하다가 직접 생을 마감했다’고 언급한 데 대해서도 “재판에 패소해 자살하거나 잘못되면 안타까운 일이지만, 재판 자체가 잘못됐다거나 재판의 정당성을 부정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전국법관대표회의 대표성에 의문” = 법관회의의 대표성과 정치적 중립성에 대해서도 의문이 제기됐다. 서울고법의 또 다른 부장판사는 “형식적으로 전국 각급 법원에서 대표를 선출한 것이니 대표성은 있다고 보이지만, 한쪽 성향만 몰려 있다고 보는 판사도 많다”고 말했다. 최 의장은 우리법연구회 회장 출신이다. 최 의장은 지난해 3월 법원행정처의 판사 뒷조사 의혹, 즉 양 전 대법원장 때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를 공론화했다. 최 의장을 포함해 진보·개혁 성향 판사들이 법관회의 의장단에 다수 포진해 있다. 법관회의 부의장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최한돈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가 맡고 있다. 우리법연구회와 인권법연구회 모두 김 대법원장이 회장을 지낸 모임이다. 법관회의는 각 법원 대표로 뽑힌 판사들이 한자리에 모여 사법행정과 법관 독립에 관한 사항을 논의하고 대법원에 의견을 표명하거나 건의할 수 있는 기구다.

◇대법원장, 징계 절차 착수 = 특조단으로부터 30일 이번 사태 관련자들의 부적절 관여 행위 정도를 정리한 자료를 보고받은 김 대법원장은 현직 판사들에 대해 사실상 징계 절차를 시작했다. 현직 판사들에 더해 양 전 대법원장이나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 전직 간부의 책임도 물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전히 높아 파문은 쉽사리 진화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징계에서 한 발 더 나가 전임 사법부 수장을 검찰이 소환하고 기소하는 지경이 되면 법원 내부 갈등은 수습하기 힘든 지경이 될 것으로 일선 판사들은 우려했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대법원에서 고발하면 이는 곧 대법원장이 판결을 고발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하급심에선 양심에 따라 판단하겠지만, 최종판단은 대법원이 하는데, 대법원장의 고발 건에 대해 대법원이 어떻게 처리할지는 외부에서 보더라도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유진·김리안·김수민 기자 yooji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