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刑事사건도 처벌보다 ‘합의’ 모색해야”

대법 양형연구회 심포지엄

現 처벌위주 시스템 벗어나
民事처럼 피해 회복에 초점
‘회복적 합의’양형기준 반영
가해자의 사회 복귀도 염두
살인 등 중범죄엔 적용한계

“살인·성폭력 등 강력범죄에서도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정한 합의가 가능할까. 가능하다면 이를 형벌에 어느 정도로 참작할 수 있을까.”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16일 양형연구회 창립 기념 심포지엄 ‘형사재판 양형을 통한 회복적 사법 이념 구현과 양형 인자로서의 합의’를 개최하면서, 이같이 어려운 질문을 던졌다. 민사에서 중재·조정 등 대체적 분쟁해결제도(ADR)가 중요 이슈로 떠오른 가운데, 형사 분야에서도 합의라는 ‘회복적 사법’ 이념을 본격적으로 연구하려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회복적 사법이란 인과응보적인 처벌 시스템에서 벗어나, 피해자의 물질적·정신적 피해를 회복하면서 가해자의 올바른 사회 복귀도 도울 수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자는 이념이라 할 수 있다.

이날 첫 발제자로 나선 김성돈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교수는 회복적 사법 이념을 양형(量刑·법원이 유죄판결을 받은 피고인의 형벌의 양을 결정하는 일) 단계에서 실현하기 위해서는 “우선 형사재판과 연계된 회복적 프로그램에 회부한 후 거기서 나오는 회복적 합의 내용을 양형에 반영하는 방안이 있고, 다른 한 가지는 피해 회복을 지향한 회복적 제재의 부과를 통해 실현하는 방안이 있다”고 소개했다. 회복적 제재란 피해의 원상 회복을 위한 배상이나 벌금, 사회봉사·치료 명령 등을 일컫는다.

김 교수는 또 “피해 회복이라는 결과를 양형에 반영하는 것은 일찍부터 실무 관행상 형사합의라는 이름으로 정착돼 있지만, 현재의 양형 기준표 상에는 ‘합의’가 명시적인 양형인자로 규정돼 있지는 않다”면서 “단순 합의 이상의 합의로 평가될 수 있는 회복적 합의에 대해 의미를 분명히 한 뒤 양형 기준에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다만 김 교수는 법제화 이전에도 얼마든지 회복적 형사사법 시스템을 실천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엇보다 개별 법관들이 형사재판을 주재하면서 ‘위반된 규범보다는 범죄의 피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지’ ‘피해자와 가해자 사이에 직간접적인 대화의 기회를 적절히 제공하고 있는가’ 등 회복적 사법의 이정표들을 유념해주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어 김혜정 영남대 교수는 두 번째 발제자로 나서 ‘양형 기준에서의 합의’에 대해 발표했다. 김 교수는 “기존에 실무상 형사합의를 바탕으로 한 ‘처벌불원’이라는 특별감경인자가 ‘피해 회복을 위한 노력’이라는 피고인의 행위·관점으로만 판단됨으로써 형사합의의 성격을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면서 “이제는 ‘피해 회복 정도’라는 피해자의 관점에 따라 판단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피해 회복 관련 양형인자는 그 침해 법익에 따라 체계화해야 한다”면서 “절도·사기 등 재산적 법익을 침해하는 경우와 달리 살인·성범죄 등 인격적 법익이 손상되는 경우에는 금전적 보상 그 자체를 감경사유로 보기 힘들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김 교수는 또 진정한 화해 의사를 확인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형사합의 과정에서 가장 문제가 된 것은 가해자가 합의를 위해 피해자의 연락처 등을 집요하게 요청하는 부작용이 발생한 점”이라면서 “피해자변호인제도를 확대해 피해자가 변호인의 조력을 받아 재판에 출석, 진정한 처벌불원 의사를 진술하도록 지원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김리안 기자 knra@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