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민주 기본질서’ 살렸지만… ‘유일 합법정부’는 빠졌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교육부가 ‘자유민주주의’에서 ‘자유’를 빼고 ‘민주주의’만 넣으려던 기존 방침을 철회하고 새 역사교과서에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와 ‘민주주의’를 두루 표현하도록 집필 기준 최종 심의안을 수정 발표했다. 사진은 교육부가 언론에 배포한 역사교과서. 김호웅 기자 diverkim@

- 교육부, 이달말 확정·고시

행정예고 때 608건 의견접수
591건이 개정안에 반대 피력

“헌법 위반”등 역사학계 반발
논란 일자 집필기준 막판변경

중·고교는 오는 2020년, 초교는 내년 3월부터 쓰일 새 역사교과서에 논란이 됐던 ‘민주주의’와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이 함께 쓰이게 됐다. 당초 교과서 집필 기준에 자유민주주의가 빠지면서 정체성 훼손, 이념 편향성,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 원리 부정 등을 낳는다는 학계의 거센 반발에 부딪힌 바 있다. 다만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표현은 집필 기준에서 빠지게 돼 논란은 계속될 전망이다.

교육 당국이 교과서 수록 용어가 보수 진영과 진보 진영의 첨예한 쟁점으로 부상한 상황에서 예상보다 민주주의 용어 사용에 대한 반대 의견이 몰리자, ‘절충식 봉합’이란 해법을 동원한 것으로 보이나 처음부터 마찰이 뻔한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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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는 이런 내용을 뼈대로 오는 27일 초등 사회과·중등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안에 대한 행정예고 결과를 공표하고 관련 교육과정을 개정 고시한다고 23일 밝혔다. 개정 고시안은 ‘민주주의’ 표현과 헌법에 등장하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라는 표현을 모두 쓸 수 있도록 했다. 교육과정의 성취기준 및 학습요소는 포괄적 의미인 민주주의를 유지하고 성취기준 해설은 헌법과 민주주의의 다양한 가치가 역사적 맥락에 의해 기술되도록 자유민주주의적 기본질서 등의 서술을 추가했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예컨대 고등학교 한국사 교육과정의 경우 행정예고안에는 ‘민주주의가 정착했음을’이란 표현을 넣었으나 수정안에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정착하고∼’로 바꿨으며, 초등학교 사회과 교육과정은 ‘민주주의의 발전 과정’을 ‘자유민주적 기본질서가 정착하는 과정∼’ 등으로 수정했다. 집필 기준은 여러 출판사가 검정교과서를 제작할 때 기준 역할을 하는 일종의 가이드라인이다. 처음에 교육부는 기존 교과서와 교육과정에서 섞여 쓰였던 ‘자유민주주의’와 ‘민주주의’ 표현을 ‘민주주의’로 바꾸기로 했었다. 이에 대해 학계에서는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훼손하는 것은 물론, 자유권이 결여된 인민민주주의가 근간인 북한식 정체 시스템도 수용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읽힐 수 있다고 우려해 왔다. 김영재 교육부 동북아교육대책팀장은 “헌법 정신을 존중하고 행정예고 기간에 국민이 낸 의견을 토대로 역사 인식의 다양성을 수용해 교과서 집필자의 자율성이 발휘되도록 일부 수정했다”고 말했다. 최종 결정은 교육부 차관이 위원장으로 교육과정과 집필 기준을 심의하는 교육과정평가심의회 운영위원회에서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지난 6월 22일부터 20일간 진행된 행정예고 기간에는 모두 608건의 의견이 접수됐으며 이 가운데 591건이 반대 의견이었다고 교육부는 설명했다. 반대 의견 유형은 개정안 전체에 대한 반대와 일부에 의한 반대로 구분할 수 있으나 주된 내용은 민주주의 등 용어 사용에 대한 반대가 많았다. 보수 성향의 한 단체의 경우 14만 명의 서명을 받은 반대 의견을 제출했으나 기재사항이 일부 빠지면서 유효한 의견으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상곤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역사과 교육과정 개정을 계기로 역사교육에서 용어를 둘러싼 논쟁이 마무리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 역사교과서에서 대한민국 정부가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라는 내용은 집필기준에서 제외됨에 따라 마치 북한도 합법정부라는 해석을 낳고 헌법 제3조 영토조항과 충돌하는 위헌적 해석 논란은 잔존하게 됐다.

절충안에 대해 박인현 대구교대 교수는 “교육부에서 생각보다 역사학계, 헌법학계의 반발이 심하자 이를 반영한 조치로 보인다”며 “정권이 바뀔 때마다 불필요한 논란이 반복되고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을 받아들여 이를 나름대로 절충한 조치”라고 해석했다.

강규형 명지대 교양학부 교수는 “역사교과서는 학생들의 역사관을 정립하고 국가 정체성을 확립하는 중요한 매개인 만큼 제대로 된 역사관을 서술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여전히 대한민국 정부 수립 등 표기를 두고 논란이 있는 만큼 향후 학계, 여론에서 논의를 거쳐 이를 반영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김기윤·이민종 기자 cesc3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