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랙리스트 논란 ‘세종도서’, 운영주체 싸고 출판계 갈등

출협 “출협 중심 민간운영” 주장
일각선 공정성 시비 우려 제기
문체부는 民·官 협치모델 지지

출판계 블랙리스트로 논란을 빚었던 세종도서 사업이 운영 주체를 둘러싼 출판계 안팎의 이견으로 잠정 중단 위기에 빠졌다.

세종도서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진흥원)이 국고를 지원받아 1년에 두 차례 우수 도서를 선정해, 공공도서관과 지방자치단체, 학교 등에 보급하는 사업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시절, 심사과정에서 정부가 개입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재발방지를 위한 제도 개선이 요구돼왔다. 문제는 올해 예산 87억 원인 세종도서를 누가 운영하느냐를 둘러싸고 ‘출판협회 주도의 민간 운영’과 ‘민관 협치 모델’이 첨예하게 대립하면서 사업 진행 자체가 올스톱됐다는 점이다. 이에 하반기 공고조차 못 내면서 피해는 출간 지원이 절실한 출판사, 책 보급을 기다리는 도서관, 책을 읽을 독자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게 됐다.

국내 출판사 690개사를 회원사로 둔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는 출협 중심의 민간 운영을 요구하고 있다. 블랙리스트로 문제를 빚은 문화체육관광부와 산하 진흥원은 운영에서 손을 떼고, 민간에 이양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곽미순 출협 상무는 “세종도서가 출판산업 지원 사업인 만큼 출판계 최대 단체인 출협이 운영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공정성 여부는 충분히 담보할 수 있다”며 “민간부문 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말했다. 출협은 최근 문체부에 출협 중심의 태스크포스(TF)팀 구성을 제안한 상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반대 의견도 만만찮다. 책을 출간하는 출판사 단체가 수십억 원에 달하는 예산 사업을 맡아 책을 선정하는 것 자체가 공정성 논란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회원사 요구나 업계 이기주의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냐는 우려다. 한편에서는 민간이양이라고 해도 세종도서가 출판산업지원과 함께 국민독서지원 사업이라는 점에서 출판사 단체뿐 아니라 도서관, 독서단체 등 범출판계 민간 부문이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민관 협치 모델은 진흥원이 운영을 맡고, 문제가 된 심사 등은 민간에 완전 위탁하는 안이다. 문체부는 민간부문이 감시·견제하면서도 운영을 안정적으로 할 수 있다며 이 안에 무게를 싣고 있다.

한 문체부 관계자는 “진흥원이 블랙리스트 문제에 연루됐지만 조직을 개편, 원장을 새로 임명하고 심사위원 선정 방식도 바꾸었다. 진흥원이 제 역할을 제대로 하도록 해야 한다”며 “하지만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세종도서개선 TF를 열어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문체부는 문체부, 진흥원, 출협과 또 다른 양대 출판단체인 한국출판인회의, 학술출판협회, 도서관협회 등으로 이뤄진 TF팀을 구성, 다음 주 첫 모임을 열 계획이다. 하지만 출협은 출협 중심의 민간 이양을 전제하지 않는 TF는 받아들일 수 없다며 참가를 거부하고 별도의 공청회를 열겠다고 밝히고 있다. 이렇게 의견이 엇갈리면서 세종도서 사업의 일정은 불투명해진 상태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는 “가장 중요한 것은 민간이냐, 민관이냐가 아니라 가장 공정하고 투명하게 운영해 좋은 책을 널리 보급하는 최선의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라며 “장기적으로 독서지원 사업이 어떻게 운영돼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도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출판 관계자도 “출판계 의견이 엇갈리는 만큼 출판과 관련된 여러 부문이 광범위하게 공감하고 다양한 의견이 합의된 모델을 도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최현미 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