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카페>제조업 침공한 ‘차이나 쇼크’… 美 저학력 백인 사망률 높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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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경수의 글로벌 경제 이야기 - (22) 美·中 무역전쟁은 ‘곪은 게 터진 격’

中의 싼 노동력·싼 위안화 탓
美 240만명 일자리 손실 추정
고용 양극화·소득 불평등 초래

전통적 제조업 종사자 직격탄
취업·건강 등 환경 열악해지고
마약남용·약물중독·자살 증가

1999∼2013년 중년 사망률
히스패닉·흑인 모두 줄었는데
저학력 백인만 5.4배로 급증

경제충격이 사회문제로 커지자
美자유민주주의 신념 약해지고
세계 상대로 ‘아메리카 퍼스트’

#1. 소비, 가난, 복지에 대한 기여로 2015년 노벨상을 수상한 앵거스 디턴과 프린스턴대 동료이자 아내인 앤 케이스는 같은 해 ‘21세기 높아지는 미국 비(非)히스패닉계 백인 중년의 질병률과 사망률’이라는 제목의 충격적인 연구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1999∼2013년 동안 45∼54세의 중년 사망률을 추정한 결과, 미국 내 다른 인종이나 다른 선진국의 패턴과 정반대로 비히스패닉계 백인 중년의 사망률이 높아진 것을 발견했다. 당초 주요 선진국 국민보다 낮고 줄어들었던 미국 백인의 사망률 추세는 1990년대 후반부터 역전돼 2010년대에 들어와서는 가장 높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공저자는 높아진 백인 중년 사망률은 마약 등 약물남용, 자살, 간질환이 그 배경이며, 중등교육 이하의 교육을 받은 남녀가 주도했다고 보고했다. <표>는 구체적인 사망률 통계를 보여준다. 전체 백인 중년의 경우 2013년 인구 10만 명당 415.4명이 사망했는데 이는 1999년보다 33.9명 늘어난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중등교육 이하의 교육을 받은 백인 중년의 사망률은 134.4명이 증가해 735.8명으로 수직 상승했다. 2013년 중등교육 이하의 교육을 받은 백인 중년 사망률은 히스패닉뿐 아니라 흑인보다 월등히 높다. 그 결과, 고등교육 경험이 있는 백인 중년의 사망률이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전체 백인 중년의 사망률은 상승한 것이다.

공저자는 자료를 2015년까지 업데이트한 후속 연구를 통해 기존에 주요 연구 결과를 다시 확인했다. 마약의 과다복용, 자살, 알코올과 연관된 간질환이 백인의 사망률을 높이고 있으나 백인은 교육 수준에 따라 사망률에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교육 수준과 관계없이 사망률이 떨어지는 추세를 보이는 흑인·히스패닉과 전혀 다른 패턴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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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들은 21세기에 들어 증가하는 저학력 백인 중년의 사망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대침체에 따른 저성장 및 소득의 정체로는 설명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대신 학교를 마친 후 제대로 된 직장을 얻을 기회가 지속적으로 악화돼 이후 취업, 결혼, 자녀 출산, 건강 등에 불리한 여건이 세대에 걸쳐 누적된 결과임을 데이터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소득재분배정책이나 노년복지정책이 이들의 사망률과 질병률을 낮출 수는 없으며 그보다는 당장 의료용 마약의 과다처방을 억제할 것을 주장했다.

실제로 미 국립약남용연구소(NIDA)는 2015년 약물중독으로 3만3000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만 명이 약물남용으로 고통받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합법화된 마약이 불법 마약보다 더 치명적일 수 있음을 경고했다. 연방 약물남용과 정신건강 서비스국(SAMHSA)에 따르면 2008년 의료용 마약처방을 남용한 사례가 10년 전보다 400% 증가했다. 경제학자들은 약물남용을 21세기에 들어와 미국의 경제활동참가율(생산가능인구에서 차지하는 취업인구 및 구직을 단념하지 않은 실업인구의 비율)을 하락시키는 중요한 요인의 하나로 지목하고 있으며 미 대통령 경제자문위원회(CEA)는 2015년 약물중독의 경제적 비용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2.8%로 추정한 바 있다.

미 인구조사국에 따르면 2015년 25세 이상 비히스패닉계 백인 가운데 중등교육 이하의 교육을 받은 비율은 29.5%다. 25세 이상 전체 인구 가운데 비히스패닉계 백인의 비율이 66.3%임을 고려하면 25세 이상 전체 인구의 19.6%가 중등교육 이하의 교육을 받은 비히스패닉계 백인이다. 이들의 연구 결과는 21세기에 들어와 미국 사회의 한 축이 무너지고 있다는 메시지와 다름없다.



#3. 어떻게 이토록 짧은 기간에 비극적인 일이 일어나게 됐을까. 그 단편을 미 대선 레이스가 한창이던 2016년 8월 12일 자 노스캐롤라이나주 히커리시에 관한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사에서 엿볼 수 있다.

“1990년대 후반, 가구 제조의 허브였던 이 도시는 세계화의 폭력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였다. 테네시, 웨스트버지니아주 등지에서 해고된 철강 노동자들은 미국 가정에 침대, 테이블, 의자를 공급하는 새 일자리를 찾아 모여들었다. 실업률은 2% 아래로 떨어졌다. 그러나 요즘 히커리는 일련의 경제적 충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그 무엇보다도 중국으로부터 가장 큰 고통을 받고 있다. 수입가구의 침공은 공장 문을 닫고 수천 개의 일자리를 앗아가 2010년 실업률은 15%를 넘어섰다….”

이 기사는 엄청난 노동력, 낮은 임금, 정부 지원, 저평가된 화폐가치를 등에 업은 중국의 수입 공세로 짧은 시간에 광범위한 산업 분야에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미국 노동자들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지를 상세히 다루고 있다.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출범 후 미국 GDP에서 차지하는 멕시코의 대미 수출 비율이 두 배로 증가하는 데 12년이 소요됐다. 그러나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후 중국은 불과 4년이 걸렸다.

미국과 유럽의 7개 연구재단의 지원을 받아 미국과 유럽 대학의 연구자들을 중심으로 진행되는 ‘차이나 무역 쇼크’(The China Trade Shock) 프로젝트(http://chinashock.info/)는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미국 노동시장에 미친 파급 효과를 분석하고 있다. 근래에 들어와 신흥국도 예외는 아니나, 지난 수십 년에 걸쳐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제의 중심국에 소득 불평등과 고용 양극화가 심화됐는데 그 요인으로 기술 발전과 무역의 확대를 들고 있다. 특히 두 요인이 하나의 힘으로 노동시장에 그 파급 효과를 미치고 있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가진다.



#4. 그러나 ‘차이나 무역 쇼크’ 프로젝트는 무역과 기술 진보의 파급 효과에 명백한 차이가 있음을 보여준다. 기술의 영향은 미국 전 지역에 걸쳐 나타나지만, 중국 수입과 경쟁하는 노동집약적 제조업은 특정 지역에 집중된다. 이를 고려해 연구자들은 광범위한 지역 데이터를 구축해 기술과 무역이 노동시장에 어떻게 다른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줬다.

우선 1980∼2007년 사이에 중국 수입품과의 경쟁이 치열했던 지역에서는 제조업에 종사하는 저학력 노동자층에서 심각한 고용 감소가 일어났다. 반면 업무활동의 전산화와 같은 기술 발전은 비록 고용의 양극화가 일어나는 요인으로 작용했으나 고용 감소를 초래하지는 않았다. 2000년대에 들어와 중국으로부터 수입이 급증하면서 경합지역의 고용 사정은 더욱 악화됐다. 한편 기술 진보는 정보처리 업무의 전산화로 그 파급 효과가 제조업에서 전 산업으로 확대됐다.

중국의 출현은 노동시장이 무역충격에 어떻게 적응하는지에 대한 기존 인식을 바꿔 놓았다. 무역 확대는 소비자 혜택과 더불어 구조적 실업과 같은 조정비용과 분배 등 부작용을 동반하지만, 학계는 이를 대수롭지 않게 보았다.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문제로 인식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이나 쇼크는 경쟁력을 잃어버린 산업이 집중된 지역에 장기적인 파급 효과를 미쳤다. 고용, 실질임금, 경제활동참가율은 계속 하락했고 실업은 늘어났다. 이 지역의 노동자는 잦은 이직과 항구적인 소득의 감소를 경험했다. 그뿐 아니라 국민경제 차원에서도 수입 경쟁에 밀린 산업에서 줄어든 고용이 다른 산업에서 늘어난 고용으로 상쇄되지 못했다.

연구자들은 차이나 쇼크가 미국 제조업, 나아가 미국 경제 전체의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으로 진단했다. 이들은 1999∼2011년 동안 중국에서 급증한 수입이 240만 명의 일자리 손실을 초래했다고 추정했다. 같은 기간에 제조업의 고용은 210만 명이 증가했을 뿐이다.

또한 차이나 쇼크는 실업률의 증가, 경제활동인구의 감소, 관련 제조업의 임금 삭감을 초래했다. 1980년대 일본산 자동차에 밀려 중서부와 오대호 연안에서 시작된 러스트 벨트는 21세기에 들어와 미 전역으로 확대됐고, 저학력 백인을 중심으로 일자리가 크게 감소하는 탈(脫)공업화가 진행됐다. 차이나 쇼크로 피해를 본 지역에서 실업, 장애, 퇴직 및 의료에 대한 공공부문의 지출이 급격히 증가했다. 특히 소득 감소는 노동시장에 처음 진입할 당시 임금이 낮을수록, 첫 직장에서 일한 기간이 짧을수록, 경제활동인구에 편입된 기간이 짧을수록 더 크게 일어났다. 저임금 노동자는 대부분 제조업 부문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무역충격에 반복적으로 시달렸다.



#5. 차이나 쇼크는 유권자들의 정치성향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앞의 WSJ 기사는 이렇게 이어진다.

“… 공화당 대통령 예비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는 가장 큰 영향을 받은 100개 카운티 중 89곳의 지지를 받았다… 버니 샌더스는 북부 및 중서부 주에서 가장 많이 노출된 100개 카운티 중 64곳에서 승리했다. 이 패턴은 힐러리 클린턴 지지층인 흑인 유권자들이 다수 거주하는 남부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연구자들은 지역 투표 결과와 무역데이터를 이용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실제보다 50%가 낮은 시나리오를 가정했을 때 미시간, 위스콘신, 펜실베이니아, 노스캐롤라이나주에서 민주당 후보가 선출되고 전체 선거인단에서도 과반수를 얻었을 것으로 예측했다. 이 연구 결과에 따르면 차이나 쇼크는 지난 대선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 것이다.

21세기에 들어와 일어난 미국 사회의 격변은 두 함의를 갖는다. 하나는 사회가 제대로 수용할 수 없을 정도로 급격하게 진행되는 경제적 충격은 단순히 빈부격차와 같은 경제문제만이 아닌 심각한 사회문제까지 초래한다는 것이다. 기술 진보가 신(新)노동과 구(舊)노동 간 불평등을 조성했다면 차이나 쇼크는 병든 사회를 만들었다.

다른 하나는 그 사회를 오랫동안 지탱해 왔던 가치에 대한 신뢰를 저버릴 수 있게 한다.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는 최근 3년간 미 외교협회(Council on Foreign Relations)가 격월로 발간하는 ‘포린 어페어스’에 실린 기고문의 핵심 주제다. 미국 사회에서 두 가치에 대한 믿음이 허물어지고 있다는 경고다. 이 잡지에 ‘빅 시프트’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정치학자 월터 미드는 역사를 돌이켜 볼 때 자유민주주의가 위협받는 것은 기존 제도가 사회 경제적 충격을 유연하게 수용할 수 있는 역량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우선주의는 이렇게 태어났다.

한국경제학회장 (성균관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