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혁적 왕세자 - 언론인 살해 독재자 ‘두얼굴의 빈 살만’

- 궁지 몰린 빈 살만, 국제행사선 애써 웃음

카슈끄지 피살 연관 없다는 듯
‘사막의 다보스’ 예상 밖 참석
‘셀카’ 요청에도 흔쾌히 응해

터키 정부 ‘계획 살인’ 규정 뒤
G7·EU “철저규명” 공동성명
러 “사우디 왕실 믿는다” 두둔

사우디아라비아 반체제 언론인 자말 카슈끄지(60)의 살해 배후로 지목되는 무함마드 빈 살만 사우디 왕세자가 미래투자이니셔티브(FII)에 웃는 얼굴로 나와 행사를 지켜봤다. 외신을 통해 시신 일부가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는 가운데 사우디 정부는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국제사회의 압박을 외면하는 모습이다. 빈 살만 왕세자가 계속 권좌를 지킬 수 있을지 국제사회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23일 AP통신 등에 따르면 빈 살만 왕세자는 리야드에서 열린 국제회의 FII에 참석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이날 일정이 거의 끝나갈 즈음인 오후 5시쯤 주행사장인 리츠칼튼 호텔 대연회홀에 나타나 웃음을 잃지 않은 표정으로 사람들을 만났다. 올해 FII에는 카슈끄지 사건의 여파로 초청된 글로벌 경제계 유명 인사 20여 명이 무더기로 불참해 ‘사막의 다보스포럼’이란 별칭이 무색해졌다. 빈 살만 왕세자는 “(행사가) 훌륭하다. (작년보다) 사람이 더 많고, 돈(투자 금액)도 더 많다”고 말했다. 카슈끄지 피살과 자신은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태도였다.

하지만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정부가 이번 사건을 조직적인 ‘계획 살인’이라고 규정하면서 국제사회의 분노는 커지고 있다. 그동안 적극적 비판에 나서지 않았던 미국도 국제사회의 제재에 합류하고 있다.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23일 워싱턴 국무부 청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카슈끄지 피살 사건에 책임이 있는 사우디 정부 관리 21명을 확인했으며 이들에 대한 비자를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미국이 사우디에 가한 첫 공식 제재다. 폼페이오 장관은 “이러한 처벌은 미국의 마지막 말(조치)이 아닐 것”이라며 추가 제재를 예고했다. 이어 “미국은 카슈끄지를 침묵시키려는 이런 종류의 무자비한 행동을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날 국무부는 비자가 취소된 사우디 정부 인사들의 면면은 공개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백악관 집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사우디 정부를 겨냥해 “그들은 작전을 잘못 세웠고, 작전이 제대로 수행되지 않았다”며 “그들은 역사상 최악의 은폐를 했다”고 비판했다. 마이크 펜스 부통령은 워싱턴포스트(WP)가 주최한 행사에서 “카슈끄지 피살은 자유롭고 독립적인 언론에 대한 폭력”이라며 “잔인한 살해에 대해 응당한 책임을 묻겠다”고 다짐했다. 미국을 비롯한 주요 7개국(G7) 외교장관과 유럽연합(EU) 대표는 공동 성명을 통해 “사우디의 카슈끄지 피살 인정은 첫걸음이 될 수 있지만 아직 규명돼야 할 일이 많다”며 “사우디는 철저한 규명과 재발 방지 약속을 하라”고 촉구했다.

반면 러시아는 23일 성명을 통해 “러시아는 왕실이 살해와 관련 없다는 사우디의 공식 발표를 인정한다”고 밝히며 사우디를 두둔했다. 불참자가 대거 발생한 FII에선 러시아 국부펀드 직접투자펀드(RDIF)의 키릴 드미트리예프 CEO가 개막식 후 토론자로 나섰고, 드미트리 코노프 시부르 홀딩스 회장, 세르게이 이바노프 알로사 CEO 등이 대표단을 구성해 리야드를 찾았다.

박준우 기자 jwrepubli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