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7주년 특집-석학에 듣는다>“文정부 포퓰리즘 위기…‘촛불 너머’ 공공성 성찰 이뤄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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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포퓰리즘 타락 쉬워
계파이익앞세우면 公共善 불가

文,공화주의 잘못봐 ‘靑정부론’
국정논의 중심은 국무회의로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 높은게
통치자의 국회 우회 이유 안돼

한국당, 보수를 재구성 하려면
냉전반공·천민자본주의버려야


北, 폭정국가지만 공존할 때
현재 섣부른 통일논의는 위험

‘한반도 2국체제’外 대안 없어
주권국으로 내정독립 인정해야

복지·분배, 시대 정신 맞지만
시민 먹고살수 있는 정책 우선

소득성장 폐기·경제팀 교체를
당장 야당과 경쟁적 협치해야

윤평중 한신대 교수가 말하는 공존의 철학은 곧 공화주의와 통한다. 자칫 포퓰리즘으로 빠질 수 있는 민주주의의 한계에 직면해 시작된 공화주의에 대한 진지한 모색 없이는 공존의 과제를 이룰 수 없다는 게 그의 확고한 생각이다. 촛불 정부임을 자임하는 문재인 정부도 공화주의를 보지 못하는 한 위기에 빠질 것이라고 그는 진단했다. 공화주의는 정치적으로는 대의제도(국회)를 ‘패싱’해서는 안 된다는 협치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 특정 정파의 이익이 아닌 공공성에 대한 존중이 중시돼야 하기 때문이다. 섣부른 통일론을 경계하고 서로를 인정하는 남북관계론도 공화주의의 연장선 위에 있다. 문재인 정부가 상위 10%만을 위한 경제정책을 쓰고 있다는 비판 역시 공존의 철학에서 나온 것이다. 공존의 관점에서 윤 교수는 ‘시장의 철학’과 ‘국가의 철학’을 펴냈다. 인터뷰는 지난달 24일 한신대 오산캠퍼스 그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 인터뷰 = 허민 정치부 선임기자

― 우리는 지금 제반 분야에서 공존을 요구받고 있다. 공존이 화두인 시기다. 정치철학을 전공한 학자로 공존의 토대는 뭐라고 보나.

“한마디로 공화주의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헌법 1조 1항은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라고 선언한다. 민주주의와 함께 공화주의를 말하고 있다. 지금 대한민국이 겪고 있는 위기는 공존의 결핍에서 온 것이다.”

― 철학은 가까이 있는 것이지만 늘 어려운 것이기도 하다. 민주주의와 공화주의가 어떻게 다른지 설명해 달라.

“민주주의가 다수결을 핵심 작동 원리로 하는 다수 인민의 지배체제라면 공화주의는 그것의 한계가 갖고 온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민주주의의 고향은 고대 아테네이고 공화정의 체계적 시행은 고대 로마 때다. 로마인들은 서양세계의 등불이나 고향 같았던 아테네의 흥성과 몰락에서 공화주의를 찾게 됐다. 직접 민주정의 심각한 내재적 결함을 본 것이다. 민주주의가 타락해 중우정치, 즉 포퓰리즘이 되고 폭민정치가 되면서 아테네의 몰락을 가져온 것을 로마인들이 지켜봤다. 즉 고대 로마의 공화정은 고대 아테네의 직접 민주주의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것이다.”

― 그럼 공화주의를 채우는 구체적 내용은 무엇인가.

“법치주의, 공공성에 대한 존중, 자유로운 시민의 성숙한 덕성, 그리고 헌정(憲政)적 애국주의다. 자유롭고 평등한 인민들은 자신들의 자유와 권리에 더해 국가라는 정치공동체에서 준법(법치주의)을 통해 비로소 자유로울 수 있고, 이는 곧 공화(republic)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핵심적인 본질로서의 공공선을 이룰 수 있다. 공동체의 이익보다 나와 계파의 이익만 앞세운다면 공공선을 이룰 수 없고, 대한민국의 공존도 없다. 법에 대한 충성, 헌정 질서에 대한 헌신, 이런 것들이 공화주의와 민주주의를 동의어로 만들지 않는다.”

― 민주주의는 어떨 때 타락하나. 민주주의의 위기는 언제 생기나.

“나만 살면 되지, 남은 모르겠다 하는 의식이 만연하고 국가에 대한 헌신이 뒷전으로 갈 때, 또 나라가 망가지든 말든 나와 내가 속한 파당만 이득을 얻으면 된다는 생각이 퍼져 있을 때 민주주의는 타락한다. 그 최악의 형태가 중우정치, 폭민정치다. 국권과 민권, 국권과 시민권을 변증법적 국가이성의 관점에서 보는 게 중요하다. 공화주의적 관점으로 보면 민주주의의 한계가 눈에 보인다. 문재인 정부 하에서도 그런 모습이 나타나고 있다.”

― 문재인 정부는 스스로 ‘촛불 정부’라고 한다. 도덕적이고 정의로워야 할 텐데 왜 문제가 되는 걸까.

“촛불 ‘너머’의 과제, 즉 공존의 정치철학인 공화주의를 보지 못해서 그렇다. 예컨대 ‘청와대 정부론’ 같은 거다. 촛불 정부라면 국정의 공공성을 제자리에 돌려놓고 국정 시스템을 정상화해야 한다. 헌정 질서에 대한 순응이라는 관점에서라도 국정의 최고 결정과 논의의 중심을 청와대가 아니라 국무회의에 둬야 한다. 지금 내각은 거의 식물화돼 있다. 국민은 장관 이름을 기억하지 못한다. 청와대 내 수석 이름은 알고 있어도 말이다. 그건 문재인 정부 출범 때의 정체성이나 대선 공약과도 배치된다. 공화정은 헌법기관을 비롯한 공적 시스템에 의해 운영돼야 하는데 대통령 통치의 편의를 위한 참모 조직이 국가 중추부가 돼 있다. 내부의 문제의식도 없는 것 같다. 박근혜 정부식 국정 운영의 문재인식 버전이다. 정상적이지 않고 공화주의적 원칙에서의 일탈이다.”

― 정권이 촛불을 자주 거론하는 게 민의에 직접 호소함으로써 대의제인 국회를 ‘패싱’하겠다는 생각을 드러내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있다.

“전폭적으로 동의한다. 고대 아테네의 직접민주주의가 근대에 바람직한 모델이 될 수 없다. 문 대통령이 직접민주주의가 대의제보다 우월하다는 식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들을 했는데 그건 정치적 실천 과정과 이론의 진화 과정을 반영하지 못한 주관적 인식이다. 직접민주주의가 갖는 내재적 위험성에 대한 성찰이 없는 것이다. 현대 공화정의 대표인 미국을 보라. 민중의 결정에 국정이 좌지우지되지 않게 하는 장치들이 있다. 이건 놀라운 발견이다. 국회에 대한 국민 불신이 통치자로 하여금 국회를 우회하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 없다. 그건 우리가 정치라고 부르는 기본적인 속성에 대한 무지와 편견의 소산이다.”

― 정치적 영역의 공존은 협치에 달렸다고 봐도 되나.

“정치 영역에서 협치는 공화주의의 기본이다. 통치자가 협치를 하지 않겠다는 것은 과거 운동권적 정치 사고의 산물이다. 한국 버전의 ‘진리 정치’인 셈이다. 북한과도 대화하는데 왜 야당이랑 대화하지 못하나. 왜 야당과 타협하지 못하나. 왜 야당 주장을 경청하지 않나. 우선 여당의 이해찬 대표는 야당인 자유한국당을 불구대천, 절멸시켜야 할 세력 등으로 말을 하는데 그래서는 협치가 되지 않는다. 마키아벨리가 말한 공화정의 본질적 특성은 정치세력이 서로 경합하고 경쟁하면서 길항(拮杭)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경쟁, 상호 보완, 갈등은 공화정의 필수적 구성 요소가 된다. 문재인 정부는 자기가 진리와 정의를 독점한다는 확신을 갖는다. 자기주장에 반대하면 거짓이고 불의고 적폐가 되는 것이다. 이 정부가 자신의 외교·안보 정책을 평화정책이라 프레임을 짜고 이에 이견을 내놓으면 ‘전쟁하자는 거냐’라고 치고 나오는 것도 공화주의 협치에 반하는 생각이다. 상식에 반한다. 제왕적 대통령제에서의 협치는 권력을 쥔 정부·여당, 특히 대통령이 솔선수범해야 한다. 야당 의원들을 만나고 설득하고 그런 걸 안 하면 책임을 방기하는 것이다.”

― 공존을 방해하는 데는 제도적인 문제도 크다고 생각된다. 듀오 폴리(양당 정치) 시스템이나 제왕적 권력제도가 여야 간에 생사를 건 투쟁을 만들고 있는 것 아닌가.

“전적으로 공감한다. 가장 중요한 건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 권력 집중의 폐해다. 지역주의에 기반한 양대 정당의 독과점이 심각하고 대통령 권한이 너무 막강하다는 제도적 문제가 있다. 지금도 대통령이 입법부나 사법부 우위에 서서 검증되지 않은 결정이 이뤄지고 대한민국이란 항공모함을 흔드는 모습을 보지 않나. 견제받지 않는 권력의 과대성이 심각한 상태다. 대통령의 권한을 좀 과감하게 삭제·축소할 수 있는 개헌이 이뤄져야 한다.”

― 공존의 관점에서 지금의 선거제도는 어떤가.

“제왕적 대통령을 만들어내는 제도에 대한 일대 성찰, 적대적 공생관계에 있는 양당제도에 대한 반성이 있어야 한다는 점에 동의한다면 가장 시급한 게 선거법 개정이다. 현재 지역구 254명, 비례대표 46명으로 돼 있는데 비례대표를 250명으로 늘려 전체가 500명쯤 되도록 해야 한다. 비례성 강화 선거제도 개혁으로 비례대표 의원 수를 대폭 늘리자는 게 내 제안이다. 대통령 권한을 줄이는 대신 국회의 권능을 대폭 확장해야 하니까. 다만 입법부에 대한 국민 불신이 심하기 때문에 의원 정수는 500명으로 늘리되 국회 예산 총량은 동결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 보수정당인 한국당에서도 공화주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한국당은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재생의 기회를 잡기 위해 공화주의를 오용하고 있다고 본다. 정치적 전략이 숨어 있다. 문재인 정부를 민주주의의 최악 형태인 중우정치로 몰아가면서 민주주의와 긴장 관계에 있는 공화주의를 강조하고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 한국당이 그런가. 공화주의에서 가장 중요한 게 공공성인데 한국당에 공공성이 살아 있나. 박근혜 정부는 국정을 사사화한 그 부분 때문에 탄핵받은 것 아닌가. 한국당은 보수의 재구성을 위해 먼저 버려야 할 게 냉전 반공주의와 천민자본주의다.”

― 국내에서뿐 아니라 남북관계에서도 공존은 필수적인 문제다. 그런 관점에서 우리는 북한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

“한반도에 거대한 패러다임 전환이 진행 중이다. 큰 틀에서는 남북 관계도 미·북 관계도 평화적으로 가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미·북 간 외교관계 수립 단계로 가는 것도 불가피하지 않나 생각한다. 문제는 국가이성의 충돌이다. 대한민국의 국가이성은 국권과 인권이 변증법적으로 작용하며 나아가는 단계로 왔는데, 북한의 국가이성에 인권은 없다. 인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고 수령의 목소리만 있다. 국제사회의 보편적 상식에 부합하지 않는 지극히 특수한 유일 지배 체제만 있다.”

― 그런데 북한은 스스로 ‘공화국’이라 부른다.

“북한은 전혀 공화국이 아니다. 전 지구상에서 가장 반공화주의적 국가가 북한이다. 사회주의 헌법을 장식헌법이라 하는데, 북한 체제는 주체사상과 유일 지배 10대 원칙에 의해 시종일관 견인되는 체제다. 그야말로 처참한 지상의 지옥이다.”

― 그렇다면 남북 간 근본적인 공존은 불가능한 것 아닌가. 교수님이 저서 ‘국가의 철학’에서 밝혔듯이 남북 주권의 복수(複數)성이 충돌하는 상황에서는 ‘생사를 건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 논리만 관철되는 것 아닌가. 남북의 수렴이 가능한가.

“현재의 국가이성이 충돌하면, 특히 북이 핵을 가진 상황에서 핵전쟁이 따라온다면 또 다른 6·25전쟁이 재연될 가능성이 압도적으로 높다. 북한을 순망치한의 존재로 여기는 중국이 이런 상황을 만들 것이다. 이건 역설적으로 남북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남북 공존은 그런 객관적 구조에 의해 강제되는 것이다. 어떻게 공존하느냐. 원론적으로 북한의 운명은 북 인민이 결정해야 한다. 나는 ‘한반도 2국 체제’ 이외의 대안이 없다고 본다. 각각 주권국가임을 인정하고 대사급 관계를 맺고 주권국가로서 내정의 독립성을 인정해야 한다.”

― 그건 남북의 수렴 혹은 통일 가능성을 배제하는 논리로 들린다.

“그런 면에서 나는 최장집 교수의 말이 진보 통일 담론의 주류인 백낙청 교수보다 훨씬 설득력이 있다고 본다. 통일이라는 말을 우리가 절제할 필요가 있다. 남북 국가 각각의 본질을 감안하면 통일을 강조하면 할수록 그건 멀어지고 오히려 전쟁의 위험성이 증가하는 아이러니, 그런 패러독스가 생긴다. 지금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국가의 철학에 대한 전면적인 무지를 말해주는 것이고, 성급하며 굉장히 위험하다.”

― 저서 ‘시장의 철학’에서 경세제민과 시장의 동력을 역설했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때부터 평등, 공정, 정의를 통한 복지 확대, 분배 확장, 그리고 양극화 해소를 내걸었다. 지금 경제와 민생은 공존을 향해 가고 있나.

“복지 확대, 분배 확장이 시대정신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는 그걸 어떻게 구체적으로 담보할 것인가 하는 거다. 경제는 현실이다. 다수 민중과 시민, 중산층이 편하게 먹고살 수 있는 결과를 내는 정책을 집행해야 하는데 지금 전혀 그렇지 못하다. 검증되지 않고 경제학 족보에도 없는 몇몇 교수의 이야기를 듣고 정책을 집행하는 꼴이다. 국민의 고통, 삶이라는 것이 이상주의의 모르모트가 될 수 있나. 이 역시 자기들이 진리와 정의를 독점한다는 의식 때문에 생긴 일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근로시간 전격 단축,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 이상주의적 경제 정책은 한국경제의 입체적이고 복합적인 현실을 제대로 들여다보지 못한 결과다.”

― 이 정부가 공존의 경제를 어떻게 실현해야 할까.

“정권이 노조, 특히 조직화한 민주노총과 진보적 시민단체를 정치적 연대세력으로 보고 그들과의 이해관계에 공모하고 있는 게 문제다. 결과는 자기들이 내세웠던 목표와 정반대되는 부작용을 양산하고 있다. 과거 보수 정권 때에는 상위 1%만을 위한 경제사회 정책을 썼다면 문재인 정부는 상위 10%만을 위한 정책을 쓰고 있다. 조직되지 않은 근로자와 시민 대중은 배제돼 있다. 비난받아 마땅하다. 촛불 정부라면 다수를 위한 정책을 써야지. 국민 고통이 더 가중되기 전에 패러다임 스위치가 있어야 한다. 소득주도성장론을 폐기하고 장하성 등 경제 수장 모두 교체하고 당장 야당과 정책적인 협치를 가동해야 한다.” minski@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