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판사 출신 靑비서관과 사법의 정치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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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겸 동국대 교수·헌법학

대한민국 헌법은 권력분립 원칙에 따라 사법권을 법원에 위임하고 있다. 아울러 헌법은 법관에게 헌법과 법률 및 법적 양심으로 독립해 재판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를 우리는 법관의 독립이라면서, 헌법이 법원의 독립, 나아가 사법의 독립을 보장하는 내용이라고 한다. 재판을 담당하는 사법부가 독립성을 보장받아야 공정하고 신속한 재판을 할 수 있고 국민의 재판청구권을 보장하게 된다.

사법개혁을 강조하는 것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 생명과 재산 등을 공정한 재판을 통해 보장해야 할 사법부가 내외의 간섭이나 압력으로부터 자유로워야 하기 때문이다. 현 정부는 지난 정부의 사법행정권 남용을 문제 삼으면서 사법개혁을 강력히 추진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른바 사법농단 사건은 사법의 정치화가 빚은 것으로, 사법부가 사법의 독립을 스스로 훼손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이번 정부는 사법개혁을 강력하게 추진할 것이라고 했다. 사법개혁의 핵심적인 대상은 무전유죄 유전무죄라 불리는 불공정한 재판, 사법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는 사법의 정치화다. 그런데 사법 현실은 전혀 달라지는 것 같지 않아 우려스럽다. 사람이 바뀌고 제도가 개선돼도 현실은 전혀 개선되지 않고, 법원과 법관에 대한 외부의 압력, 내부의 정치화 등 오히려 사법개혁에 역행하는 모습도 보이는 것 같다. 이는 정부가 그동안 주장했던 정의로운 사법과 사법의 정치적 중립의 확립 등에 전혀 부합하지 않는다.

이런 사법의 실상에는 정부의 인사도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최근 청와대가 비서관 인사를 단행했는데, 그중에서 법무비서관에 부장판사 출신 김영식 변호사가 임명됐다. 법무비서관은 법무와 관련된 직무를 주로 수행할 것이므로 법조인 출신이 맡는 것 자체는 문제가 될 수 없다. 그런데 법무비서관은 행정부에 소속된 공무원이고 사법부에 소속된 판사가 사표를 내고 맡는 자리는 아니다. 전임 법무비서관도 거의 유사하게 임명됐었다.

권력분립 원칙은 각 권력에 속한 공무원이 서로 다른 권력에 속하지 않는 것도 포함한다. 현대 권력분립 원칙이 비록 기능적 권력분립을 지향한다고 해도, 어제의 사법부 공무원이 오늘 입법부와 행정부의 공무원이 되는 것은 권력분립 원칙의 정신을 훼손하는 것이다. 물론 전직을 완전히 청산하고 옮기는 것을 문제 삼긴 어렵다. 그렇지만 향후 법무비서관으로 가기 위해 미리 판사를 사직하고 잠시 변호사로 있다가 청와대로 옮기는 것은 누가 봐도 편법이고 의도적이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당사자가 처음에는 극구 부인했다가 나중에 죄송하다는 말로 넘어갔다고 한다. 현 정부는, 지난 정부의 이런 형태의 인사가 사법의 정치적 중립을 훼손하고 사법을 정치화하는 것이라고 강력히 비판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다. 사법개혁을 어느 정부보다도 강하게 부르짖던 현 정부이기에 안타깝고 우려를 금할 수 없다.

헌법이 법원과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은, 사법부가 재판을 통해 국민의 자유와 권리,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최후의 보루로서 무엇보다도 재판의 공정성 때문이다. 외압으로부터 사법부의 독립을 지키려면, 정치적 영향력을 배제하고 정치적 중립을 준수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난 정부의 사법의 정치화를 강력하게 비판하던 현 정부가, 판사를 그만둔 지 몇 달도 안 된 내정설 의혹을 받은 변호사를 법무비서관으로 임명하는 것은 스스로 사법개혁을 부정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