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말뿐인 공익신고자 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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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승배 사회부 차장

YG엔터테인먼트와 경찰과의 유착 의혹을 국민권익위원회에 익명으로 공익신고한 A 씨의 신상이 일부 언론의 과도한 경쟁 끝에 낱낱이 공개됐다. 지난 12일부터 온라인 매체들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경쟁하듯 YG 출신 래퍼 비아이의 과거 마약 범죄 의혹을 보도하면서 그와 카톡 대화를 나눈 상대방에 대한 단서를 찾아 제보자가 누구인지 밝혀냈다. 이후 일부 방송사는 아예 실명 보도를 하기 시작했고, 익명으로 제보자를 보호한다는 명목하에 제보자의 집으로 찾아갔다고 한다.

집으로 찾아간 방송사 취재진이 제보자에게 “우리 방송사로부터 보호받는 게 안전합니다. 어디에 있든 저희가 가겠습니다. 해외도 상관없어요”라고 문자를 전송했다고 한다. 제보자가 방송사 뉴스를 확인한 뒤 “저희 집 찾아간 거 그쪽이세요?”라고 답장하자 취재진은 “A 씨 집이 맞군요”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이번 사건의 공익신고 대리를 맡은 방정현 변호사에 따르면 언론 보도로 신분이 공개된 A 씨는 극심한 공포에 떨고 있다고 한다. 모르긴 해도 제보자 신원 보호에 성공한 공익신고 사건인 ‘버닝썬 사건’을 보면서 A 씨도 공익신고에 대한 용기를 냈을 것으로 짐작된다. 하지만 정반대 결과를 받아들고 A 씨는 지금 신고를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제보자는 수많은 악플과 사실이 아닌 루머 유포로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SNS상에는 “따지고 보면 양현석보다 니가 더 나빠 XX” “공익신고 하나도 안 멋있다. 다음부터 닥치고 있어라” “XXX야, 우리나라에서 사라져”라는 등의 악담이 공개됐다.

공익신고 접수된 이번 사건의 본질은 비아이의 마약 구매 및 투약 의혹, YG 전 대표 양현석의 개입 및 협박 의혹, YG와 경찰 사이의 유착 의혹 등이다. 그런데 일부 언론의 과도한 취재 경쟁이 제보자의 신원을 밝히는 엉뚱한 방향으로 튀었다. 권익위는 지난 14일 익명으로 공익신고한 당사자의 신분을 특정하거나 유추한 보도는 법률 위반의 소지가 있다는 의견을 각 관계기관과 언론에 전했다고 한다.

방 변호사도 유감을 표명하고, 언론사에 대한 고발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권익위와 대한변호사협회는 지난 5월 31일 변호사를 통한 비실명 대리신고 제도를 활성화하기 위한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 ‘비실명 대리신고 자문변호사단’을 구성하고 변호사 비용도 일부 지급하게 해 익명의 공익신고를 더욱 활성화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었다. A 씨의 신원 공개는 이 같은 공익신고자 활성화 노력에 찬물을 부은 사건이다. 정부는 현재 공익신고자로 인정받는 대상 범위를 확대할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공익신고자 보호에 대한 인식은 정부 내에서도 높지 않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별감찰반원(수사관)의 공익신고자 지위를 놓고도 박은정 권익위원장은 “김 전 수사관이 공익신고자가 맞는다”고 했지만, 청와대는 “사법부 판단이 내려지지 않아 공익신고자로 볼 수 없다”고 했다. 박상기 법무장관은 김 전 수사관에 대해 “그 행태가 매우 개탄스럽다”고까지 비판했다. 정부와 일부 언론의 이런 현실 인식을 감안하면 선진국 수준의 공익신고자 보호는 갈 길이 아주 멀어 보인다.

bs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