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악질 경찰·무리한 설정… 이성민·유재명 ‘빛바랜 열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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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영화 ‘비스트’

올여름은 온통 디즈니 판이다.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 후 흥행 순항 중인 ‘기생충’을 제외하면 국내 영화계 최고 성수기로 통하는 여름에 한국영화를 찾아보기 어렵다. 더위가 시작된 6월부터 ‘알라딘’ ‘토이스토리4’ ‘엑스맨: 다크 피닉스’ ‘맨인블랙: 인터내셔널’ 등 ‘디즈니 패밀리’가 극장가를 싹쓸이하고 있다.

26일 개봉한 ‘비스트’(감독 이정호)는 그래서 무더위를 식히는 소나기처럼 반갑다. 디즈니의 총공세 속에서도 한국영화의 자리를 지키는 몇 안 되는 영화 중 하나다. 인천에서 실종된 여고생이 잔인하게 살해된 채 발견된다. 중앙경찰서 강력1팀장이자 에이스 형사인 정한수(이성민)는 후배 형사 종찬(최다니엘)과 함께 곧바로 용의자를 검거한다. 하지만 이 사건은 1팀과 라이벌 관계인 2팀 소관 사건이다. 형사과장으로 승진하고 싶은 2팀장 한민태(유재명)의 속이 좋을 리 없다. 민태는 한수가 잡은 용의자가 범인이 아님을 밝혀내고 풀어준다. 한수는 다시 자신의 정보원이던 마약 브로커 춘배(전혜진)와 손잡고, 춘배가 저지른 살인을 묵인해 주는 대가로 결정적 단서를 받아 범인 추적에 나선다. 그러나 민태가 이 사실을 눈치채면서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꼬여간다. 숨막히는 범죄 스릴러다.

그런데 기대가 너무 큰 걸까. 아쉬운 점이 여러 군데 보인다. 지난 겨울 감독, 배우, 스태프가 생고생하면서 찍었을 게 눈에 선한데 첫 설정부터가 영 불편하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이유가 고작 형사과장이 되기 위해서라고? 제발 경찰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오해하지 말기를. 지방 경찰서의 형사과장은 경찰 직급으로 치면 경정이다. 그 위로 경찰서장은 총경급이 맡는다. 더 위로는 경무관, 치안감 등이 있다. 군대로 치면 경무관부터가 ‘장군’에 해당한다. 따라서 형사과장은 경찰 조직의 허리에 있는 실무자라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면 이성민과 유재명이 경찰청장도 경찰서장도 아닌, 과장이 되기 위해 그 난리를 피운 셈이다.

경찰이 아무리 승진에 목맨 조직이라고 해도 설정이 좀 무리수다. 유재명은 그렇다 치고, 이성민은 그저 범인을 간절히 잡고 싶은 캐릭터라고 하지만 그가 승진욕이 없는 건 아니다. 범죄 은폐, 부당 거래, 살인도 모자라 자기 인생 전부를 거는 엄청난 행위의 동력이 이런 이유에 있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출발부터 이러하니 그 뒤로 벌어지는 사건이 비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이성민과 유재명이 그렇게까지 대립해야 하는지 의문이고, 이성민이 ‘정보원’ 오 마담을 싸고도는 이유도 충분하지 않다. 전혜진은 전에 없던 파격적인 스타일의 춘배로 변신했으나 분량이 아쉽다.

두 형사 이야기는 그동안 너무 많이 다뤄진 소재다. 정의의 경찰이 거대한 악에 맞서 고군분투하는 액션이 한창 유행하다가, 최근엔 경찰 스스로가 범죄자 뺨칠 정도로 악당이 되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끝까지 간다’(2014) ‘악질경찰’ ‘악인전’(이상 2019) 등이 그 예다. 결국 소재에 대한 기시감이 커지니 어쩔 수 없이 캐릭터를 자꾸 극한으로 몰아가다 자기 함정에 빠진 듯한 모습이다.

‘공작’ ‘목격자’(이상 2018) 등으로 믿고 보는 배우가 된 이성민, 스크린과 TV를 오가며 흥행 블루칩으로 떠오른 유재명 등의 에너지는 가히 폭발적이다. 그러나 캐릭터의 현실성이 떨어지면서 눈에 실핏줄이 터질 정도로 온 힘을 다했던 이성민의 연기는 허무해졌다. 지난해 544만 명의 눈을 사로잡은 영화 ‘안시성’을 내놓았던 배급사 뉴의 기획도 안타깝다. 원작인 프랑스 영화 ‘오르페브르 36번가’를 변형하는 과정이 그리 여의치 않았던 것 같다. 15세 이상 관람가.

김인구 기자 clark@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