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희의 맛있는 술 이야기>러시아 ‘국영술집’은 차르의 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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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 루스(Rus)라고 불리는 민족이 있었다.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그들이 키예프 공국을 세우면서 동유럽에 슬라브 계열의 민족들이 국가를 형성할 수 있는 기초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지금의 러시아(Russia)나 벨라루스(Belarus)와 같은 국가 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아직도 ‘루스의 후예’들이 국제사회에 끼치는 영향력은 여전하다.

러시아의 어머니인 키예프 공국에서 파생된 여러 공국 중 막내 격인 모스크바 공국은 지금의 동유럽과 시베리아를 지배하는 러시아로 성장한다. 모스크바는 지금과는 달리 열악한 환경의 볼품없는 땅이었다. 이러한 곳에서 갓 태어난 힘없는 소국인 모스크바 공국은 당시의 지배자였던 몽골제국과 원만한 관계를 이어가면서 힘을 키울 수 있었다. 특히 모스크바 공국은 여러 공국이 바치는 조세를 모아서 올리는 중간자 역할을 담당하면서 이득을 취했다. 더불어 많은 공물이 모스크바로 중간 집결하면서 문물을 따라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고 물자가 풍부해져 다른 공국에서 힘들게 살던 사람들이 새로운 기회를 찾아 모여들기 시작했다. 춥고 황량한 벌판에 있어 버림받았던 모스크바는 활력이 넘치는 도시로 거듭났다.

이렇게 쌓아 올린 모스크바 공국의 국력은 이반 3세 때 몽골로부터 독립을 쟁취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조상들로부터 안정된 모스크바를 물려받은 이반 3세는 다른 루스들이 세운 여러 공국을 차례차례 병합하며 영토를 넓혀 오늘날 러시아의 기반을 닦는다. 또 부강해진 모스크바 공국을 몽골로부터 독립시키고 자신을 ‘차르(tzar)’로 칭하며 새로운 시대가 왔음을 알렸다.

이반 4세 때부터 남방정책을 통해 남쪽에 있던 중앙아시아에 대한 정벌을 통해 몽골제국의 후예들인 여러 칸국을 복속했다. 예전과 비교하면 세력이 약해진 몽골의 후예인 타타르의 여러 도시는 이반 4세에게 차례차례 복속당하며 자신의 조상이 루스의 여러 공국에 했던 것처럼 가혹한 통치를 받아야 했다. 이 과정에서 카잔을 점령했던 이반 4세는 카박(kabak)이란 국영 술집을 운영하면서 술에 관한 통제와 더불어 독점적인 수익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을 봤다. 모스크바로 돌아온 이반 4세는 볼가강 남쪽의 여러 도시에 왕실에서 운영하는 국영 주점을 열었다. 이반 4세는 국영 주점에서만 술을 판매할 수 있도록 했고, 도시와 마을에 있던 국영 술집은 많은 수익을 내려고 사람들에게 술을 권했다. 외상 술과 더불어 돈을 미리 예치하면 조금씩 술을 더 주는 등 다양한 형태로 술을 많이 마시도록 만들었다. 이 술집 운영자들은 판매되는 포도주나 보드카 양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액수를 모스크바로 보내야 했다.

이렇게 많은 돈을 벌어들이는 국영 술집은 이반 4세 이후에도 차르의 마르지 않는 금고 역할을 하며 막대한 자금이 들어가는 군대 양성과 왕실을 유지하는 기반이 됐다. 이를 통해 역대 차르들은 정복전쟁을 계속할 수 있었고 표트르 대제(사진) 때에 이르러 러시아가 빛을 발하게 되는 계기를 만든다. 오랜 몽골의 지배로 서유럽과 비교하면 발전이 늦었던 러시아는 표트르 대제가 직접 서유럽을 돌아다니며 러시아에 필요한 선진 문물을 받아들였다. 이는 과학과 문화의 발전으로 이어져 수많은 과학자와 작가를 배출하며 러시아의 중흥을 끌어내게 된다.

국영 술집에서 주로 팔던 술은 포도주와 벌꿀로 만든 미드, 맥주 외에도 폴란드를 통해 전해진 것으로 알려진 보드카라는 증류주였다. 특히 알코올 도수가 높은 증류주는 추위를 견뎌야 하는 환경과 잘 어우러져 많은 사람이 마셨다. 권력자들의 이익을 위해 술을 마시도록 권하던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정착돼 러시아 사람들의 오늘날 음주문화로까지 이어졌다. 이반 4세의 업적이 4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져 후손에게 영향을 주고 있다.

술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