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의 TV세상>노동에 대한 경외심을 일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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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극한직업

EBS ‘극한직업’은 힘든 노동의 현장을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트렌드에 맞춰 그와 관련된 산물의 제작현장을 소개한다. 최근엔 볼링장 시공 현장이 등장했다. 복고 트렌드로 볼링장이 부흥하는데, 다른 프로그램이라면 볼링장의 매력 같은 것을 전할 테지만 여기선 볼링장을 만드는 과정을 소개했다. 또, 물놀이 계절을 맞아 카약과 놀이용 보트 제작과정을 소개하기도 했다.

제작과정이 정말 놀랍다. 볼링장의 경우 건물 10층의 텅 빈 공간에 볼링장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사다리차 하나로 볼링장을 구성하는 전체 물품을 10층으로 올리고, 그 모든 자재와 기계류를 사람들이 직접 하나하나 설치했다. 바닥에 필름을 깔고, 그 위에 방진 매트를 촘촘히 깐다. 다시 그 위에 방진 차음 시트를 한 장 한 장 붙여준다. 그 위에 방음 매트를 덮는다. 그 위에 또 비닐을 덮고 합판까지 덮는다. 그 위에 또 비닐을 깔고 합판을 또 덮는다. 그 위에 핀을 쓰러뜨린 볼링공이 다시 밖으로 되돌아나가는 길과 마룻바닥 기초 구조물을 만들고, 그 위에 볼링 경기가 펼쳐지는 마룻바닥을 만든다. 그리고 볼링공을 던질 때 기준점이 되는 포인트를 정확히 찍고, 핀을 세우는 기계를 설치한다. 볼링장 바닥과 기계들을 시공할 땐 대단히 정밀하게 수평을 맞춰야 한다. 이 모든 과정이 사람의 손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 과정을 하나하나 보여주는데도 텅 빈 공간이 볼링장으로 변한 결과물을 보면 마치 마법 같다.

카약과 보트를 만드는 과정도 그렇다. 카약은 몸체가 플라스틱이어서 언뜻 보면 기계로 찍어내 대량생산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플라스틱 몸체를 만드는 과정도 일일이 사람의 손이 가야 하는 것이었다. 보트 몸체도 한 번에 찍어낸 플라스틱 같지만 사람이 필름을 한 장 한 장 겹쳐 쌓아 굳힌 것이었다. 필름과 필름 사이의 공기를 없애는 것도 모두 사람의 손길이 가야 한다. 그렇게 만들어진 몸체에 갖가지 기구와 엔진 등을 부착하는 일도 사람이 직접 한다. ‘극한직업’을 통해 그릇이나 야구방망이 등 기계로 찍은 것처럼 보이는 물품들에도 의외로 사람의 노동이 투입됐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을 보면 인간의 노동에 대한 경외심이 새삼 우러난다. 웬만한 물품들은 손쉽게 대량생산하는 줄 알았는데 대부분이 사람의 구슬땀으로 만든 것이었다. 정밀한 물품 제작부터 거대한 구조물의 시공까지, 모두 해내는 모습을 보면 사람의 한계가 어디까지인지 자문하며 감탄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누리는 물질문명의 바탕에 수많은 사람의 노동이 있다는 점도 깨닫는다. 보통은 유명 직종, 고소득 직종에만 주목하지만 우리 사회엔 정말 상상도 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양한 영역에서 자기 역할에 매진하는 직업군이 있었다. 그런데 이런 직업을 흔히 3D 직종이라며 기피하는 경향이 있다. 서양에선 이런 직종에서도 성실히 일하기만 하면 중산층으로 살 수 있는데, 우리나라에선 아무리 비지땀을 흘리며 일해도 중산층으로 올라서기가 힘들다. 우리가 누리는 세상을 두 손으로 만들어낸 사람들이 그림자에 가려져 그 공헌을 인정받지 못하고, 경제적 보상도 미약하게 받는 사회. ‘극한직업’은 이들의 소중하고 위대한 노동이 단순히 힘들기만 한 극한직업 정도로 인식되는 현실에 의문을 갖게 한다.

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