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눈앞에 다가온 ‘호모 헌드레드’ 시대… 치유농업으로 대비해야”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농촌진흥청 기능성 원료 연구 앞장
-김경규 농촌진흥청장

우리나라 치매 환자는 2018년 기준 75만 명에 달한다. 국내 65세 이상 고령자(738만 명)의 10% 정도다. 노인 인구가 늘고 현 추세가 이어진다면 2024년에는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치매 환자 10명 가운데 7명 이상은 알츠하이머 치매 환자다. 알츠하이머 치매는 나이가 들면서 뇌 신경세포 사이 연결 부위인 시냅스가 줄어 뇌에 베타-아밀로이드(치매 단백질)가 쌓이면서 발병한다. 알츠하이머 치매가 진행되면 환자의 기억력과 사회성이 현저하게 낮아지는 증상을 보인다.

치매 환자의 인지 기능이 악화될수록 건강수명은 줄어든다. 이웃과 가족이 짊어져야 할 사회·경제적 부담도 커진다. 2018년 집계된 치매 환자 1인당 관리비용은 2095만 원으로 적지 않다. 안타깝지만 현재로서는 치매를 효과적으로 예방하거나 치료할 방법이 거의 없는 실정이다. 치매 증상을 지연시킬 목적으로 치료제가 일부 시판되고는 있지만, 효과는 낮은 수준이다. 그마저 여러 가지 부작용이 나타난다는 보고가 있다. 부작용을 최소화하면서 치매를 예방하고 치료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과 물질 개발이 절실하다.

최근 농촌진흥청은 그간의 연구내용을 집약해 치매 관련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첫 번째, 제주대와 함께 인간치매유발 유전자 세 개가 동시에 발현되는 치매복제돼지 생산 기술을 개발했다. 돼지는 장기 구조나 생리적 특성이 사람과 비슷해 질환 연구 모델로 유용한 동물이다. 순수 국내 연구진이 세계 최초로 일궈낸 연구 성과여서 더욱 뜻깊다. 또한, 국가 전략 산업의 기술 경쟁력 확보와 소재 국산화 차원에서도 중요한 의의를 갖는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치매 발병 원인을 규명하고 신약을 개발하는 토대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이 연구결과는 2017년 국내 특허 등록에 이어 올해 미국 특허 등록도 마쳤다.

두 번째 성과는 홍잠(弘蠶)이다. 농진청이 2015년부터 올해까지 한림대학교 일송생명과학연구소와 공동으로 연구한 결과, 홍잠이 알츠하이머 치매 예방에 효과가 있음을 확인했다. 홍잠은 누에가 완전히 자라 고치를 짓기 직전의 ‘익은 누에’(숙잠)를 수증기로 쪄서 동결 건조한 것이다. 단백질과 아미노산, 오메가3 지방산을 비롯해 플라보노이드, 폴리페놀 등 다양한 기능 성분이 함유돼 있다. 알츠하이머 치매 유전자를 가진 시험 쥐에게 홍잠을 50주 동안 먹이고 베타-아밀로이드의 뇌 축적량을 확인했더니 정상 쥐와 마찬가지로 전혀 축적되지 않았다. 새로운 환경에도 왕성한 호기심을 보였고 공간 기억력도 높았다. 불편한 조건에서의 자세조절능력도 우수했다. 이를 통해 홍잠을 섭취하면 치매로 인한 신경세포 손상을 최소화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이 연구 결과는 지난해와 올해 국내외 특허출원을 마쳤다.

농진청은 농업·농촌이 지닌 치유의 힘에도 주목하고 있다. 생애주기별 맞춤형 치유농업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현장에 적용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실버 대상 치유프로그램에 참여한 노인들의 경우 최고 혈압이 감소했고 매우 만족해했다. 농업활동이 고령 세대의 치료나 재활, 사회교육에 긍정적으로 작용하는 이유를 ‘농업 DNA’에서 찾기도 한다. 젊은 시절, 농사를 지어본 경험을 가진 고령 세대는 물론 농본국가인 우리나라 국민의 정서 깊숙이 형성된 농업 유전자가 치유효과를 크게 하는 해답일 수 있다. 농업선진국 네덜란드는 1100여 개 치유농장을 건강보험과 연계해 국민건강 증진을 위한 장으로 활용하는 등 농업의 치유기능을 이미 산업화했다.

유엔은 미래를 ‘호모 헌드레드(Homo Hundred)’ 시대로 정의했다. 9월 21일은 국제 알츠하이머협회에서 지정한 ‘세계 알츠하이머의 날’이다. 100세 시대, 고령화에 대비하는 가장 질적인 대안은 신체적 건강유지와 함께 심리적, 사회적, 인지적 건강도 담보해내는 것이다. 미래를 준비하는 앞선 농업연구개발이 국민 삶의 질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