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가사와 육아는 으레 여성의 감정노동으로 돌려진다. 전업주부든, 워킹맘이든 상관이 없다. 남편과의 집안일 분담이 감정노동으로 인한 여성의 번아웃을 막을 수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 / 제마 하틀리 지음, 노지양 옮김 ／어크로스
임신·출산·가사 등 둘러싸고
안 시키면 꿈쩍않는 남편탓에
주부만 책임지는 현상 풀어내
‘모든일 다 할 의무 벗어나라
집안 관리 목록을 만들어라’
남편과 분담 실천할 팁 제시
방바닥과 일심동체가 될 때가 많지만, 토요일이면 종종 청소기를 돌린다. 물론 자발적이지 않을 때가 많다. 아내가 청소기 전원을 콘센트에 꽂으면 그제사 “나한테 시키지 그랬어”하며 청소기를 건네받는다. 그럼 아내도 한마디 한다. “좀 알아서 하면 안 돼? 시키는 것도 일이라고!” 거실 머리카락은 여자들에게만 보일 리도 만무한데 남자들은 요지부동, 아내가 시키기 전까지는 미동도 하지 않는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제마 하틀리의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는 여자들 눈에만 보이는, 하여 누군가에게 뭔가를 시켜야 하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여자들의 지긋지긋한 감정노동에 대한 보고서다. 저자는 저널리스트 주디스 슐레비츠의 말을 인용해 여자를 “걱정하기로 지정된 사람”으로 정의한다. 모든 남편이 그렇지는 않겠지만, 어떤 남편은 자동차 열쇠를 어딘가에 던져두고는 아침마다 아내에게 “내 차 키 못 봤어?”라고 묻는다. 찔리는 남편이 많겠지만, 그 외에도 여자의 일은 끝이 없다. “치약이 다 떨어져 가는 걸 알아채는 사람도 당신이고, 다 쓴 화장실 휴지를 새로 걸어놓는 사람도 당신이다.” 여자들은 집안 대소사를 챙기느라 하루가 어떻게 가는지 모른다.
출산과 육아 과정에서도 여성의 감정노동은 멈추지 않는다. 임신과 출산, 육아로 이어지는 모든 길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 걸어가야 하는데, 남편은 대개 “공부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한다. 저자는 자신의 경험담을 바탕으로 “우리 두 사람을 대신해 나 혼자 공부해야 했다”고 썼다. 남편은 “돕는 사람”일 뿐, “책임지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세간의 인심도 그렇다. 남편이 아이를 돌보는 날은 어쩌다 한 번 있을까 말까 한데, 사람들은 “너희 남편 너무 착하다”라고 말한다. 자기 아이들을 돌보는 일인데 아내는 왜 고마워해야 하며, 또 남편은 왜 착하다고 하는 것일까.
집 밖으로 나선다고 감정노동에서 자유로운 건 아니다. 친구들과 만나 잠깐의 수다를 떨며 마음을 치유하고 싶어도, 전화기가 울리는지 늘 주목하고 있어야 한다. 아이가 뭘 먹는지, 장난감과 인형은 어디 있는지, 수시로 문자를 주고받기 때문이다. 문자가 한 통도 오지 않는 날은 없다. 그러니 “외출 중에도 집안의 매니저 역할을 할 준비”를 늘 하고 있어야 한다. 워킹맘이 돼도 감정노동은 별반 줄지 않는다. 저자도 애초에는 집안일과 관련한 감정노동이 전업주부이기 때문에 발생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실직한 남편이 종일 집에 있고, 자신이 돈을 벌어오는 실질적인 집안의 가장 역할을 했지만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집안일은 여전히 저자의 몫이었다. 여성의 감정노동은 “시간과 버는 돈이 해결해 줄 수 없는 깊은 분리가 존재”하는 영역인 셈이다.
저자가 단지 자신의 감정노동 사례와 인터뷰한 여성들의 푸념 같은 말만을 읊조렸다면, 이 책은 미덕이 없는 그렇고 그런 책이 됐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여성의 감정노동을 사회적 차원으로 끌어올리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함께 극복해야 할 과제로 상정한다. 저자의 어머니는 30년 동안 보육교사로 일하며 보람도 있었지만, 수많은 감정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문제는 돌봄노동자로서 “굉장히 수준 높고 다양”한 전문적 기술을 쏟아부었음에도 늘 박봉이었다. 저자는 묻는다. “감정노동에 관련된 노동이 경제 발전에 필수불가결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왜 그렇게 낮은 값을 매길까.” 이유는 간단하다. “돌봄노동이 여성의 일이고 언제나 그래 왔으며 역사적으로 여성의 기여는 높이 평가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남성의 기술과 특성을 여성의 기술과 특성보다 항상 존중”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항상 유리천장을 경험할 수밖에 없다. 여성이 “너무 감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회에서 여성은 리더로 설 자리가 사실상 거의 없다.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여성에게 “다 해야 할 의무는 없다”는 말을 상기하라고 말한다. “왜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 알아채는 사람이” 언제나 여성일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없다. 나로부터 시작된 변화는 “우리의 자녀, 파트너”도 변화시킬 것이다. 저자는 ‘집안 관리 목록’을 만들어 남편을 대화 테이블로 불러냈다. 처음에는 불편해했지만, 남편은 하나둘 적응해가면서 돕는 게 아니라 “집안의 모든 것이 자기 책임”이라고 느끼기 시작했다. 이 외에도 몇몇 실천적 팁은 유용하게 쓰일 만하다. ‘남자들은 항상 나를 잔소리하게 만든다’는 가부장적 질서가 여전히 살아 있는 한국 사회에, 아니 남성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한다. 그런 점에서 남자들이 먼저 이 책을 읽어야 할 것 같다. 언제 이 다짐이 깨질지는 물론 알 수 없지만, 이제 토요일 청소는 아내가 청소기 콘센트에 전원을 꽂기 전에 스스로 시작해야겠다고 마음먹는다. 384쪽, 1만5000원.
장동석 ‘뉴필로소퍼’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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