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립습니다>6·25 참전용사였던 아버지, 햄을 그렇게 좋아 하실 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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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순제(1932~2012)

가끔 햄을 먹을 때 울컥 치솟는 아버지 생각에 눈물을 흘리곤 합니다. 우리 아버지 17세 때 6·25전쟁이 터져 논에서 일하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가족들과 이별의 인사조차 하지 못하고 옷 갈아입을 겨를도 없이 강제 입대를 하셨습니다. 막내였던 아버지는 유독 할머니를 너무 좋아해서 할머니 곁을 떠난 본 일이 한 번도 없었다고 했습니다. 겁도 많고 마음도 여리디여린 사람이 전쟁터란 지옥에서 얼마나 무섭고 악몽 같은 시간을 보냈을지요. 가늠할 수 없는 고통이었음에도 자식들은 살아생전 아버지 마음을 잘 헤아리지 못했습니다. 가끔씩 TV에서 전쟁 영화를 방영할 때면 ‘저게 무슨 전쟁하는 거냐’며 눈시울을 붉히실 때도 자식들은 그저 건성으로 흘려 듣기 일쑤였습니다.

어느 날 우리 아버지 75세쯤 됐을 때 선물 들어온 스팸을 하나 구워 밥상에 올려 드린 적이 있습니다. 입맛에 안 맞아 하실 줄 알았는데 햄을 보곤 이런 게 우리나라에도 있느냐고 하며 전쟁 때 미군 부대에 있을 때 이걸 먹었는데, 이름이 뭔지 몰라 여태 먹지 못했다며 꼭 한번 먹어보고 싶었노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러곤 담담하게 전쟁에서 겪었던 얘기를 하셨습니다. 옛날 분이라 햄을 좋아할 거라 생각도 하지 못하고 한 번도 해드린 적이 없는데 그렇게 좋아할 줄 알았으면 진작 해드릴 걸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리고 한낱 햄 하나에 아버지의 고통과 힘든 삶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가슴이 미어져 왔습니다.

학도병으로 전쟁에 참가한 아버지는 2년의 세월을 전쟁터에서 보내셨습니다. 낙동강 전투에서 압록강까지 옷이 다 해지고 두려움·배고픔과 싸우며 바위틈이나 언덕배기에서 쪽잠을 주무시며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겼다 하셨지요. 어느 날 강원도에서 부대가 전멸하는 바람에 혼자 겨우 살아남으신 아버지가 강원도에서 고향 경남 함안까지 가족들 품이 그리워 공포와 굶주림을 견디며 천리길을 걸어오셨다고 합니다. 반쯤 죽은 상태로 돌아와서 1년간 국군병원에 입원해 있으며 몸은 치료됐지만 이후에 움직이는 사람만 보면 총을 쏴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며 정신적으로 오랫동안 많이 고통스러웠다고 하셨습니다. 그 어린 나이에 얼마나 극심한 전쟁 트라우마에 시달리셨을지 지금 편안하게 살고 있는 우리는 감히 상상조차 하지 못하겠지요.

그렇게 목숨 걸고 나라를 지켰지만 6·25 참전용사라고 받은 건 월 8만 원의 위로금과 참전용사 배지 하나였습니다. 그래도 배지를 늘 옷깃에 달고 다니며 평생을 자랑스러워 하셨습니다. 그 험난한 시절을 겪고도 다섯 딸과 막내아들까지 모두 다 공부시키고 시집·장가 다 보내며 몸이 부서져라 성실하게 살아오신 아버지. 몸이 아파도 자식들에게 부담될까 봐 치료도 거부하시던 아버지. 좀 더 오래 사셔서 증손주도 보고 함께 해외여행도 가고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10년이 다 돼 가는데도 좋은 세상에서 잘 지내고 계시는지 그곳에선 편안하신지 너무나 그립습니다. 왜 꿈에도 한번 오시지 않는지요. 단 한 번만이라도 꼭 뵙고 싶습니다. 사랑합니다.

둘째 딸 조양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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