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밀반입 26→292㎏ 폭증하는데… 檢배제되며 ‘수사 공백’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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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경 수사권 조정 이후 ‘범죄대응 역량’ 비상

동남아·中 조직, 韓 타깃삼아
필로폰 밀반입 1029% 증가

檢직접수사서 ‘마약’ 제외돼
국제공조 노하우 잃게 될 판

檢·警 영역 넘어 시스템 절실
“마약수사청 신설 필요” 제기

“미국이나 일본으로 가는 중간 경유지 역할에 불과하던 한국이 이제는 마약 유통의 종착지가 되고 있다.”

중국에 이어 세계 2위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지역이라는 오명을 쓰고 있는 한국이 또 하나의 불명예에 근접해 있는 상황이다. 한때 ‘마약 청정국’으로 불리던 한국이 ‘마약 오염국’의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지난해 국회를 통과한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서 마약범죄가 검찰이 직접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 유형에서 제외되자 검경 사이의 역할분담 관계도 다소 미묘해지고 있다. 경찰이 당장 모든 마약 수사를 직접 맡겠다는 의지를 밝히면서 수사 주체가 뒤바뀌었다. 마약 수사 ‘컨트롤타워’가 없어지는 사이 국가의 마약대응 총역량이 단기적으로 약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국경 없는 마약거래, 한쪽 때려잡으면 다른 한쪽이 부풀어 = 대검찰청이 발행한 마약 백서에 따르면 2018년 국내 필로폰 밀반입량은 193㎏으로 전년 대비 1029% 증가했으며 압수량도 171㎏으로 921% 증가했다. 우리 사회의 투약 규모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동남아나 중국의 마약조직이 한국을 최종 종착지로 삼아 마약을 밀수출하는 경우도 폭증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해 6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두바이를 경유해 한국으로 와인 10병을 수입하려던 홍콩 국적의 사업가가 인천국제공항에서 긴급 체포된 뒤 검찰에 구속 기소되는 일이 벌어졌다. 검역 결과, 그가 들여오려던 와인에서 상당의 코카인이 희석된 채 검출됐다. 마약범죄가 이처럼 남미에서부터 중동까지 넘나들며 그야말로 전 세계를 무대로 벌어지는 데에는 모두 그만한 이유가 있다. 연간 무역액 1조 달러, 인천국제공항 이용객만 한 해 7000만 명이 넘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세관이 모든 여행객 및 화물에 대한 집중적인 마약 검사를 벌이기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수사 당국의 고민도 여기에서부터 출발한다. 불가피하게 주요 마약밀반입 루트로 꼽히는 국가 몇 곳을 정해 일일이 쫓아다니며 집중적인 감시를 벌일 수밖에 없어 ‘두더지 잡기’식 추적이 될 수밖에 없다. 한 마약범죄 전담 변호사는 마약범죄에 대한 처벌 수위가 높음에도 밀수입이 여전히 끊이지 않는 이유에 대해 “업자들이 어차피 감시가 ‘복불복’으로 이루어진다고 생각해 일단 밀수입하는 것이 확률적으로 이득이라는 치밀한 계산의 결과”라고 말했다.

이러다 보니 한쪽을 때려잡으면 다른 한쪽이 부풀어 오르는 것이 최근 국제 마약범죄의 양상이 됐다. 실제로 2년 전 대만계 마약조직인 ‘죽련방’(竹聯幇) 등이 시가 2080억 원, 208만 명이 동시에 투약할 수 있는 분량의 필로폰을 국내에 들여오려다 적발된 사건을 계기로 수사당국이 대만발(發) 항공편·화물에 대한 집중 단속을 벌이자 지난해를 기점으로 마약밀매조직의 주요 근거지도 말레이시아 등으로 빠르게 옮겨 가기 시작했다. 이미 재작년 말부터 말레이시아발 마약은 국내 필로폰 밀수입량의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검경 수사권 분리로 마약범죄 대응 역량 약화 = 국경을 초월해 벌어지는 범죄 규모 이외에도 암수범죄가 많은 마약범죄의 특성과 제각각 나뉜 수사기관이 범죄 대처를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마약 수사를 담당하는 검찰 관계자가 “마약류를 취급·유통·투약하지만, 수사기관에 인지되지 않거나 제대로 신원이 파악되지 않아 공식 통계로는 잡히지 않는 실제 범죄가 적발 건수의 최소 20배는 될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다. 단순히 마약 투약자를 많이 적발해낸다고 해서 마음 놓을 일이 아니라는 뼈아픈 지적이 나온다.

결국 수사의 관건은 ‘원점 타격’으로, 투약자보다는 유통경로를 지독하게 물고 늘어지는 것이 마약 수사의 정석이자 핵심이라는 게 현장에서의 결론이다. 국제공조가 중요한 마약범죄의 특성상 그동안 상대적으로 검찰은 국제적 마약 네트워크 차단에, 경찰은 마약 투약자들에 대한 체포에 집중하며 경우에 따라 세관과 국가정보원 등과도 적절한 협조가 이루어져 왔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에서 마약범죄가 검찰이 직접수사를 개시할 수 있는 범죄 유형에서 제외되자 검경 사이의 역할분담 관계가 꼬이고 있다. 일선 현장에서는 이럴 바에야 차라리 ‘한국형 마약단속국(DEA)’을 창설하는 것이 해답이 될 수 있다고 입을 모아 말한다. 최근 국내에서도 인기 드라마로 화제가 됐던 ‘나르코스’에 등장하는 미국 DEA와 같이 ‘마약 수사청’을 만들어 마약 생산에서 유통, 투약까지 단일 기관이 모두 맡아 대책을 세워야 한다는 것이다.

마약 수사 일선 관계자는 “마약범죄 대응 노하우가 많이 쌓여 있는 검찰에서마저 마약 밀수업자를 검거해도 생산 루트까지 추적하는 것은 엄두조차 낼 수 없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검경 모두 어떤 식으로든 단일한 마약범죄 대응 시스템을 세워야 한다는 입장에는 동의한다. 오랜 시간 마약 수사 현장에 몸담았던 경찰 관계자마저 ‘시간이 얼마 없다’고 말한다.

이희권·김온유 기자 leeheke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