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식주의자의 미식여행>고단한 광부의 몸 달래준 ‘물닭갈비’… 이젠 입맛 달래는 ‘명물’

  • 문화일보
  • 입력 2020-05-01 10: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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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태백의 광부들이 보양식으로 먹은 물닭갈비. 저렴한 가격에 닭갈비를 즐기면서 얼큰한 육수와 사리면까지 푸짐하게 먹을 수 있다.


■ 황지시장서 만난 태백의 맛

- 고소한 ‘들깨옹심이’
냉이 향기 머금은 국물 일품
찰진 감자부침개와 찰떡궁합

- 30년 전통 ‘쫄면’
쫀득하고 굵은 면발로 유명세
투박하지만 매콤 양념장 상쾌

- 꼬들꼬들 ‘코다리찜’
담백한 찬 어울린 비범한 맛
짭조름한 무조림은 ‘밥 도둑’


언제나 봄은 늦게, 겨울은 일찍 오는 곳이 강원 태백시다. 전통시장에는 봄나물이 가득했고 음식점마다 싱그러운 봄의 기운을 담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도착 다음 날 새하얀 눈꽃축제가 펼쳐지며 겨울은 아직 다가온 봄을 시샘하며 떠나지 않고 있었다. 봄에도 눈이 내리며 봄과 겨울이 공존했던 태백을 다녀왔다. 태백시가 가까워질수록 고도가 높아지며 달팽이관에 통증이 시작되더니 곧 익숙해졌다. 수확 시기 때면 차량은 절대 진입할 수 없다는 ‘고랭지 배추밭’을 방문해 보니 저 멀리 태백산맥의 산자락들이 내려다보였다. 얼마나 높은 지역에 위치해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봄나물 구경하러 ‘황지자유시장’을 방문했다. 시장 가득 초록 빛깔을 뽐내고 있는 갖가지 나물도 많았지만 봄 나물의 여왕 ‘두릅’은 아직 태백에는 이른 시기였다. ‘어수리’라는 태백 고유의 산형과 나물이 제철이었는데 향도 맛도 달콤하고 쌉싸래하니 나물 무쳐먹기 좋아 보였다. 태백 방문 기념으로 어수리 나물을 구매한 후, 물 맑기로 유명한 황지연못 인근의 ‘옹심이’가 유명한 ‘웰빙 옹심이·콩나물밥’ 집으로 이동했다.

들깨 옹심이와 감자 부침개를 주문했다. 들깨 옹심이의 들깨 농도와 육수의 맛이 매우 진하고 고소했는데, 특히 봄나물 냉이 몇 가닥 넣어 맛을 낸 봄 향기 가득한 들깨 국물이 참 좋았다. 감자 부침개는 이곳에서는 ‘감자 부치기’라는 메뉴로 판매되고 있었다. 감자를 직접 손으로 강판에 갈아내 호박채와 섞어 두툼하게 지져낸 감자 부침개의 질감은 폭신하면서도 바삭했다. 들깨 옹심이의 찬으로 나온 것은 무김치와 겉절이었는데 특히 겉절이는 노지에서 딴 봄동으로 버무려 만들었다. 봄동의 질감은 신선하고 상큼하니 씹히는 맛이 다디달았고, 굵은 고춧가루를 살짝 넣고 깨소금으로 마무리해 산뜻했다. 걸쭉하고 진한 맛의 들깨 옹심이와 번갈아 먹기에 잘 어울렸다.

식당의 신인숙 대표는 이제 오랫동안 장사하면서 얻게 된 허리 병 때문에 음식 만드는 직원을 따로 두었지만 직원 근처에서 계속 만드는 방법을 일러주며 음식을 관리하고 있었다. 담아놓은 무김치도 맛보겠냐며 물어보곤 새로 떠 준다면서 식당 안에서 유일하게 밥 먹고 있던 남자 손님에게 허물없이 ‘뚜껑 좀 열어달라’고 부탁하는 모습이 참 정겹게 보였다. “저도 허리 아파요”라며 여유 있게 말 받아치는 손님의 센스도 식당 가득 웃음바다로 만들었다. 하지만 음식이 제공되는 시간은 오래 걸렸다. 서비스의 속도는 좀 느렸지만 이에 개의치 않는다면 즐겁게, 맛있게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곳이다. 참 평범한 음식들인 듯한데 안 먹어 보았으면 후회했을 정도로 비범함이 묻어있는 음식들이었다. 다음에 방문하면 다른 메뉴들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photo 왼쪽 사진부터 시계방향으로 태백의 대표 음식들인 코다리찜, 감자 부침개, 30년 전통의 명품 쫄면.


내국인들이 출입 가능한 카지노를 이웃에 둔 태백시는 과거 탄광업과 유흥업이 활발했었다. 낮의 태백과 밤의 태백은 다르다고 했던가. 도시는 달리다 보면 가로수 있는 거리를 찾아보기 힘들었고 눈에 확 들어오거나 눈에 뜨이는 건물도 예쁜 풍경도 없었지만 어디서나 눈앞에 태산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 살았던 광부들은 항상 탄광의 분진과 함께 살아야 했는데, 쇠고기는 비쌌고 고된 일을 감당해 내려면 영양보충이 필요했다. 그래서 발달된 음식이 ‘물닭갈비’였다. 누군가는 태백사람들에게 물닭갈비는 ‘보통사람들의 떡볶이’ 같은 음식이라고 말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닭갈비도 즐기면서 얼큰한 육수와 사리면을 넣어 푸짐하게 자주 즐겼던 음식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태백사람들이 즐겨 먹는다는 물닭갈비가 유명한 ‘대명닭갈비’를 방문하기 위해 태백로로 향했다.

식당 입구에 들어서니 직원들이 부추와 쑥갓을 열심히 다듬고 있었다. 기본 재료인 듯했다. 기본 찬에 무생채, 동치미, 노란무가 나왔는데 무생채는 매콤하게 무쳐 빨간색으로, 노란무는 당근과 무채 그리고 식초 물을 더해 새콤하게 노란색으로, 동치미는 무와 오이를 사각 편으로 잘라 흰색으로 내었다. 이렇듯 평범해 보이는 찬에도 한 번 더 손길을 더해 성의 있게 제공하는 것을 보니 보기에 참 좋았다.

부추, 쑥갓, 파 그리고 이곳 역시 봄의 나물 냉이를 살짝 넣어 매콤한 육수에 봄의 향을 더했다. 그리고 약간의 카레 향도 더해 진한 감칠맛을 냈다. 조각낸 생닭과 얼큰한 육수에 사리면을 함께 끓여내 즐기거나 볶음밥을 만들어 먹기도 한다. 국물의 맛은 매콤하며 자극적이었다. 진하고 강렬했다. 반면 닭고기는 담백하니 신선했다. 광부들의 고단한 몸은, 이렇게 자극적인 국물에 곁들이는 한 잔의 소주로 위안을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현재의 물닭갈비는 광부의 늦은 저녁 술자리 안주가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들과 함께 즐기는 태백의 대표 별미가 되었다.

태백에서 30년 전통의 명품 쫄면으로 이름난 ‘맛나분식’을 방문하기 위해 번영로로 향했다. 이곳의 쫄면은 면발로 유명하다. 칼국수면 같으면서 굵고 매우 찰기가 넘쳤다. 일반 쫄면의 면발과는 전혀 다르다. 쫄면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공감할 것이다. 면발의 쫄깃함이 쫄면의 맛을 얼마나 좌우하는지. 상큼한 양념장은 매콤하지만 투박하니 넘치게 달지 않았고 신선한 양배추 채의 아삭함은 탄탄한 면발을 씹는 내내 상쾌하게 보조했으니 ‘인생 최고의 쫄면’이라 부를 수 있겠다.

함께 주문했던 비빔만두는 튀김만두에 양념장을 얹어 즐기는 만두인데 위에 얹는 양념은 쫄면의 양념과는 좀 다르다. 양념을 얹었는데도 만두의 바삭함이 오래갔다. 함께 즐기기에 좋은 메뉴였지만, 만두는 쫄면만큼의 만족감을 주지는 않았다. 다음에 다시 방문한다면 이 식당의 비빔국수와 쫄면의 면발을 비교해 보고 싶다. 물론 나는 쫄면을 더 좋아하겠지만 말이다. 이 분식집 입구에 세워져 있는 식당 상호명이 붙어있는 배달전용 소형자동차를 보니 지역에서 누리고 있는 인기를 실감할 수 있었다.

photo 강태안 미식여행가

태백시에 도착하자마자 방문했던 황지자유시장에서 보았던 ‘코다리’가 어찌나 신선하고 깨끗해 보이던지, 차가운 겨울바람과 하얀 눈을 맞으며 녹다 얼다를 반복하며 꼬들꼬들하게 만들어진 코다리 찜을 맛보기 위해 음식 솜씨 좋기로 유명한 지순이 야식식당이 위치한 먹거리 길로 향했다. 식당이름과 같이 이곳은 오후 5시에 문을 열어 새벽까지 방문하는 손님에게 식사와 술을 제공하고 야식배달도 하는 식당이다. 과거 태백의 유흥가는 어딜 가나 현금이 흔한 불야성 도시였다고 한다. 지금은 이름만 유지하고 있지만 아직도 이 골목에는 술 손님 많고 비싼 식당들이 몰려있다.

코다리 찜을 주문했다. 기본 찬은 시금치, 콩나물, 가지볶음과 건새우 볶음 등 갖가지 나물과 건조생선 등이 함께 나왔다. 찬은 평범했지만 코다리 찜은 기본을 유지하되 평범하지 않은 맛이었다. 찜 양념은 짭짤하고 칼칼했다. 큰 접시 아래 깔려 있는 무의 맛도 적당히 익혀내 물컹하지 않고 양념도 적당히 배어 있었다. 속살 하얗게 진한 향 머금은 코다리 살은, 짭짤하고 매콤한 양념과 함께하니 밥도둑이 따로 없었다.

반주를 곁들이는 저녁식사 손님들이 대부분인 이곳에서 오후 5시가 되자마자 식당 문을 열고 들어와 반주 없이 밥만 먹는 내가 이상해 보였을까. “술 안 드시나?” 하는 질문을 계속 받았다. 마음이야 한잔 하고 싶었지만 “곧 운전하고 서울에 가야 한다”고 답하니 서울에 산다는 장성한 쌍둥이 아들 자랑을 하며 식당 주인 내외의 얼굴에 미소가 가득했다. 서울 사람을 ‘아들과 같은 동네 사람’쯤으로 쳐주는 건, 이들 부부의 자식 사랑 때문이리라.

이제 서울로 돌아가는 길, ‘전국 10대 닭강정 집’이라는 ‘태백닭강정’을 방문했다. 순한맛, 매운맛, 마늘맛 세 가지 맛이 있는데 가장 독특하고 기억에 남았던 건 역시 가장 인기 있는 메뉴라는 ‘마늘맛’이었다. 팔을 걷어붙이고 손수 만들기도 하고, 팔기도 하는 이곳의 이기태 대표는 일일이 손님들과 눈을 맞추며 맛보기도 제공하면서 영업을 잘한다. 주말에는 가끔 재료가 빨리 소진돼 문을 일찍 닫는 경우가 많다니 방문 전 전화통화는 필수다. 늘 받아주는 건 아니지만 미리 전화해 자리를 예약할 수도 있고, 방문 시간을 미리 알려주면 시간에 맞춰 메뉴 준비도 해 준다고 한다. 태백 방문을 기념하는 선물로 좋아 추천한다.

강태안 미식여행가


■ 미식가이드

봄나물을 구매할 수 있는 ‘황지자유시장’(033-552-2634)은 시장안3길 5-1에 위치해 있다. 태백에서 수확되는 노지나물과 고랭지채소 등이 판매된다. 봄나물 향기 가득한 옹심이를 즐길 수 있는 ‘웰빙 옹심이·콩나물밥’(033-552-2818)은 황지연못길 17에 위치해 있다. 들깨옹심이, 장옹심이, 감자옹심이 모두 8000원, 감자 부치기 8000원, 콩나물밥 7000원. 매콤한 물닭갈비를 즐길 수 있는 ‘대명닭갈비’(033-552-6515)는 태백로 1084에 있다. 닭갈비 7000원, 각종 사리 및 볶음밥 모두 2000원. 명품쫄면으로 유명한 30년 전통 ‘맛나분식’(033-552-2806)은 번영로 340에 있는데, 일요일 제외하고 배달도 가능하다. 명품쫄면 7000원, 비빔만두 5000원, 비빔국수 6000원, 떡만둣국 7000원. 야식으로 유명한 ‘지순이야식식당’(033-552-5933)은 황지동 먹거리길 102에 위치해 있다. 오후 5시부터 새벽까지 영업한다. 반드시 전화를 먼저 해보고 방문하길 바란다. 전국 10대 닭강정 집으로 유명한 ‘태백닭강정’(033-554-0231)은 태백로 398-9에 있다. 순한맛과 매콤한맛 닭강정과 마늘맛 닭강정 모두 1만9000원, 반반 닭강정 1만8000원. 재료 소진 시 일찍 문을 닫는다. 미리 전화해 예약 혹은 문 열었는지 확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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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에 소개하지 않았지만 아쉽게 이번 여행에 방문하지 못한 몇 곳을 덧붙인다. ‘부산감자옹심이’(033-552-4498)는 시장안1길 28에 있다. 현지인의 소개를 들어보면 옹심이 식감이 탁월하다고 한다. 재료 소진 시 문 닫으며 첫째, 셋째 수요일이 휴무다. 곤드레나물밥으로 유명한 ‘무쇠보리’(033-553-2941)는 천제단길 24-1에 위치해 있다. 주문이 들어가면 무쇠솥에 보리밥을 바로 지어주는 것으로 유명한데 곤드레나물도 많이 들어있다고 한다. 곤드레나물밥 8000원, 보리밥 6000원, 오징어 두루치기 1만5000원. 기찻길 옆에 위치한 ‘카페 건널목’(033-553-7722)은 감천로 21-1에 위치해 있다. 직접 구운 빵과 과자, 간단한 음료들이 제공된다. 크로강쿠키 6000원, 블루베리퐁당 5000원, 마늘스틱 6000원, 아메리카노 3500원, 달고나 플라페(사진) 5500원이다. 잠시 들러 쉬어가기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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