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생각하며>음악은 들려주고 싶은 간절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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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진 피아니스트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장

무수한 사람들과 스쳐 지나가는 일상, 각기 다른 사고방식들에 부대껴 마음이 위축된 어느 날. 문득 알 수 없는 감정에 가슴이 먹먹할 때가 있다. 외롭고 쓸쓸한 순간이나, 행복에 벅찬 순간, 또 가슴 답답한 순간, 누군가와 간절히 이야기 나누고 싶은 때가 있다. 그럴 때마다 음악은 내게 말을 건네 온다. 어려운 선율들이 어느새 내 마음에 들어와 내 안의 나와 대화를 나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음악을 통해 복잡하던 마음을 순식간에 변화시키고, 행복한 마음을 더 크게 만들고, 우울한 마음을 위로받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음악은 누군가가 우리에게 말하고 싶었던 간절한 언어이니까. 단지 언어를 구성하는 단어가 음표로 바뀐 것뿐이다. 작곡가는 오선지 위에 마음을 담고, 연주자는 그 마음을 악기로 연주하고, 성악가는 살아 있는 목소리로 사람들에게 음악의 언어를 전달한다. 음악이라는 언어를 이해할 때, 그리고 그 말이 우리 가슴에 아름답게 와 닿을 때 사람들은 감동을 느낀다. 진심이 담긴 말을 듣고 눈물을 흘리듯, 우리는 아름다운 음악을 듣고 눈물을 흘린다. 이렇게 음악은 난해하고 막연하기만 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 곁에 있는 하나의 언어이자 위안이다.

음악을 전공했든, 전공하지 않았든 음악을 듣고 느끼는 감동에는 큰 차이가 없다. 물론, 어떤 악기를 얼마만큼 잘 연주할 수 있는지, 어떤 음악 교육을 받았는지에 따라 음악을 분석하고 접근하는 방식은 다를 수 있다. 하지만 넓은 눈으로 바라보면 음악을 배우고 감동 받는 것은 전공자와 비전공자라는 구분이 딱히 필요하지 않다. 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세상 모든 사람에게 똑같은 목소리로 진심 어린 말을 걸어오니까.

음악은 때로 소통의 도구가 되기도 한다. 다른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우선, 언어를 통해 대화를 나눈다. 휴대전화가 눈과 귀처럼 신체의 일부가 된 것 같은 오늘에는 전화나 문자나 메일(또는 편지)로 마음을 전하기도 하고, 표정이나 몸짓으로 자신의 감정을 다른 누군가에게 표현하기도 한다. 음악도 마찬가지다. 음악은 음표와 음들로 다양한 표현을 한다. 누군가는 음악을 악기로 연주한다. 또 누군가는 그 음악을 듣고 감동을 받는다, 언어·문자·음성이 음악이라는 커다란 도구 안에 유기적으로 어우러져 서로의 마음을 열어준다. 그래서 음악은 일방적인 표현 방법이 아니라, 서로 교감하는 감정의 소통 수단이다.

음악을 통해 간절한 언어를 느끼는 것은 듣는 사람만이 아니다. 음악가들 또한 음악이라는 언어를 직접 느낀다. 나는 무대에서 연주할 때 청중이 무언가를 느끼고, 반응하는 것을 느낀다. 심지어 지휘할 때는 청중이 보이지 않는데도, 청중이 음악을 듣고 어떤 표정을 짓는지 볼 수는 없지만, ‘아, 음악을 듣는 이들의 마음이 들뜨고 즐겁구나’ ‘감정이 차분해지고 분위기가 정리되는구나’ 하고 느낀다. 외국에서 언어가 서로 달라 의사소통을 하기는 힘들지만, 음악 하나로 무대와 객석이 특별한 교감을 이룰 수 있다. 사실 청중의 입장에서 보면 연주자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연주를 통해 무엇을 전하고 싶어 하는지 정확하게 알지 못할 수도 있다. 아니, 모르는 게 당연하다. 연주자의 입장에서 봐도 청중의 반응이 지금 자신의 음악을 이해하고 있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는 건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청중의 느낌이 같은 건지 다른 건지 전혀 모를 수도 있다. 어떻게 보면 서로가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불확실한 상태인데도 어떤 소통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음악을 느끼고, 즐기고, 감정을 나누고 있다는 공감대 말이다. 생각할수록 신기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이 바로 음악의 힘이고, 예술이 가진 특별한 아름다움이다.

처음 만난 낯선 사람과 식사를 함께한다고 생각해 보라. 얼마나 어색할까. 하지만 낯선 사람과 함께 연주를 듣는다고 상상해 보라. 음악이 흐를수록 그 음악에 집중하면서 서서히 아름다움을 함께 느끼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하게 될 것이다. 서로 음악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불편하고 신경 쓰이는 감정들이 음악을 듣는 동안 자연스럽게 바뀌어 어느덧 두 사람의 관계까지 자연스러운 사이가 돼 있을 것이다. 문화와 환경이 전혀 다른 외국인들과도 음악을 함께 들으면 금방 친해질 수 있다. 음악은 동서고금에 통하는 공통의 언어이니까. 음악은 두 사람뿐만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음악을 듣고 있는 모든 사람을 순식간에 하나로 묶어주는 매개체가 돼 준다. 흔히, 음악회를 함께 다니다 보면 금방 친해진다고들 하는데, 그 역시 음악이 서로의 감정을 이어주는 중요한 소통의 도구라는 의미 아니겠는가.

나는 음악인이라는 직업적 특성상 오히려 음악에 엄격한 편이다. ‘연주’를 듣고 순수하게 감동을 받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때로는 순순한 마음으로 음악을 듣는 관객이 부러운 때가 많다. 연주자의 기술과 감정을 알아내기보다는 음악 자체에 자연스럽게 빠져드는 관객들의 모습은 그 자체가 아름다운 한 폭의 그림으로 내게 다가온다. 그러나 나 역시 정말 좋은 음악은 가슴으로 느낀다. 특히, 작곡가의 마음이 느껴질 때는 그 감동이 마음속 깊이 울림으로 남는다. 좋은 연주를 들으면 연주자가 보이고, 정말 좋은 연주를 들으면 음악이 들리는 법이니까.

요즘 우리가 겪는 어려운 상황과 여러 가지 모순과 부조화로 인해 마음이 아프지만, 그래도 나는 음악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아름다운 사회’를 꿈꾸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