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정상회담 이면합의 진실과 北의 행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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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욱 고려대 통일외교학부 교수 前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2000년 3월 9일 독일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부 차원의 대북협력 등 4원칙을 발표했다. DJ의 베를린 선언은 최초의 남북정상회담 개최를 의미했다. 베를린 선언이 발표된 같은 시간 국가정보원 라인들은 북한 아태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이자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특사였던 송호경을 싱가포르에 등장시켰다. 남측 상대는 박지원 당시 문화관광부 장관이었다. 현금 지원을 둘러싸고 4차례의 밀당 끝에 양측은 4월 8일 중국 상하이에서 정상회담 합의문에 서명했다.

북측은 남측이 최초의 정상회담을 요구한 만큼 충분한 금전보상을 요구했다. 문제는 금전 보상의 범위였다. 현대가 4억5000만 달러를 국정원 계좌를 통해 불법 송금한 사실이 2003년 노무현 정부의 특검 결과 밝혀졌다. 후유증은 적지 않았다. 정몽헌 현대회장은 계동 사옥에서 타계했고 박 장관은 외환관리법 등 각종 법률 위반 혐의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박지원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국회 인사청문회를 계기로 그간 공개되지 않았던 20년 전 남북정상회담의 ‘이면 합의’ 문제가 공론의 무대로 소환됐다. 주호영 미래통합당 원내대표는 지난 27일 국회 정보위원회에서 열린 박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2000년 남북정상회담 직전에 비밀리에 작성됐다는 ‘경제협력에 관한 합의서’ 문건을 전격 공개했다. 북측에 3년간 25억 달러를 추가로 제공하기로 합의했다는 내용이다. 국민 혼란은 불문가지다.

박 후보자는 청문회에서 “모함하기 위한 위조”라면서 “서명한 사실이 있다면 국정원장 후보직 사퇴를 포함해 제 인생의 모든 걸 책임지겠다”고 했다. 문건이 사실이라면, 사상 첫 정상회담을 ‘매수’했다는 의미여서, 매우 심각한 국기 문란 범죄 행위다. 박 후보자 말대로 누군가 위조했다면 그 역시 심각한 범죄행위다. 하지만 북측에서 최종적으로 합의문을 확인해주지 않는 이상 실체적 진실 공방은 지속될 수밖에 없다. ‘돈 주고 정상회담을 구걸한 것’인지 재발 방지를 위해서도 진상 규명이 필요하다. 이면합의 논란은 여대야소 정국에서 쉽게 진실이 밝혀지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최소한 남북 대화·협상의 기승전결이 투명성을 획기적으로 높이는 계기는 돼야 한다. 남북대화는 그동안 정치권이 ‘물밑 접촉’을 독점하면서 국민 정서와 부합하지 않는 통치 이벤트를 독점해왔다. 남북관계도 다른 국제관계와 마찬가지로 글로벌 스탠더드와 국민 동의를 확보한 뒤에 추진돼야 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박 후보자를 야당의 반대에도 국정원장으로 임명했다. 매일 아침 비판에도 불구하고 대통령이 박 후보자를 국정원장에 임명한 것은 지난해 2월 하노이 회담의 노딜 이후 진전이 없는 남북 및 북·미 관계의 돌파구를 마련하라는 의미일 것이다. 특히 최초 남북정상회담의 설계자로 평양과 비밀협상을 수행한 추억을 연상시키는 창의적인(?) 해법 마련을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정글 같은 정치판에서 산전수전 및 공중전까지 경험하고 대북송금으로 곤욕을 치른 노회한 신임 국정원장이 청와대의 높은 기대에도 불구하고 정권 후반기에 무리수를 둘 것 같지는 않다. 작금의 부귀영화로도 충분한 만큼 향후 18개월 남짓한 임기 동안 실정법의 테두리 안에서 움직일 것으로 예상한다. 다만 평양에서 20년 전 스토리로 정보기관을 압박하지 않을까 우려된다. 특히 이제 평양에서 진실의 칼자루를 쥔 것은 아닌지 한여름이지만 등골이 서늘하다. 앞으로 북한과의 물밑 거래가 무엇일지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