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위협 받는 반도체 超격차와 정부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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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근 연세대 경영대학 교수

중국 화웨이에 대한 미국의 강력한 제재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당장은 반도체 수출 감소라는 피해를 보겠지만, 궁극적으로 한국 경제에 유리할 수 있다는 분석이 많다. 반도체 사태로 화웨이가 스마트폰과 5G 네트워크 장비 시장에서 고전하면 한국 기업에 득이 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과연 화웨이 사태가 장기적으로 한국 경제에 유리할까?

최근 글로벌 컨설팅 그룹인 BCG가, 반도체를 두고 노골화하는 미·중 간의 갈등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에 대한 시나리오 분석 결과를 내놨다. 첫 번째 시나리오는 중국이 2015년에 마련한 ‘제조 2025’ 계획에 따라 반도체 굴기에 성공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미국 압박에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 중국이 대안 없이 계속 끌려다닌다는 시나리오다. 세 번째는 중국에 반도체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미국의 견제로 미·중 간 테크놀로지 디커플링(분리)이 일어난다는 것이다.

흥미 있는 결과는, 어떠한 시나리오가 현실화하더라도 미국의 반도체 시장 지배력에 심각한 타격이 예상된다는 것이다.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이 본격화하기 전이던 2018년 미국의 반도체 시장 점유율은 48%였다. 현재 상황과 근접해 보이는 세 번째 시나리오(기술 디커플링)에서 미국 점유율은 30%까지 추락한다. 미국의 반도체 기술 우위는 연구·개발(R&D) 투자에 기반을 두고 있는데, 정부 제재로 인한 매출 감소로 미 기업의 R&D 투자가 최대 60%까지 줄어들면 반도체 선도 국가의 입지를 상실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반면, 중장기적으로 미국과의 기술 디커플링을 극복한 중국이 내수 시장을 발판으로 점차 글로벌 반도체 시장을 주도할 가능성이 있다고 BCG는 전망한다.

‘세력 전이론(轉移論)’은 특정 국가가 산업화를 통해 국력이 신장되면 패권국에 대한 도전 세력으로 등장해 기존 체제에 위기가 시작된다는 국제정치학 이론이다. 도전 국가의 국력이 패권국 수준에 근접하는 ‘세력 전이’ 때문에 국가 간 갈등이 고조된다는 학설이다. 중국은 전 세계 국내총생산(GDP)의 16%를 차지하며 미국(24%)을 바짝 뒤쫓는 신흥 강대국으로 부상했다. 미·중이 마찰을 겪고 있는 반도체, 5G, 인공지능(AI)은 경제뿐 아니라 최첨단 군사장비의 핵심 부품이거나 미래 국가안보와 직접 연관돼 있다. 게다가 이들 분야는 4차 산업혁명이라는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의 주춧돌과 같은 기술이다.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세계 질서를 재편하려는 중국과 기득권을 지키려는 미국 사이의 패권 투쟁 관점에서 보면, 화웨이 사태는 한국경제에 어부지리가 아니라 경전하사(鯨戰蝦死·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 격이 될 수도 있다.

경제성장을 견인해 온 자동차·철강·조선과 같은 제조업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고 반도체만 중국과의 격차를 유지하고 있는 것이 한국 경제의 현주소다. 반도체는 미국과의 글로벌 패권 전쟁을 위해 중국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핵심 분야다. 사면초가에 몰린 중국이 사생결단식으로 반도체에 ‘올인’하면 한국과의 반도체 기술 격차는 빠르게 줄어들 수 있다. 미국의 전방위 압박에 중국은 올해 상반기에만 지난해 투자액의 2배가 넘는 24조8000억 원을 투자하며 반도체 국산화와 기술 선진화에 진력하고 있다. 반도체마저 무너지면 한국 경제는 정말 어려워진다. 화웨이 사태로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이 더 커졌다는 전제 아래 반도체 기술 우위를 지속할 수 있는 방안을 정부가 산업계와 함께 시급히 마련해야 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