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외국인들의 ‘책 속에 담아낸 한국살이’
‘진짜’가 나타났다. 한국인보다 한국어를 더 ‘잘하는’ 외국인들이 ‘자기 말’ 아니, ‘자기 글’을 쓴다. 말 잘하는 외국인은 이제 너무 많다지만, 책 잘 쓰는 외국인은 드물다. 그동안 한국에 오래 산 학자들이 간간이 책을 내긴 했지만, 그것은 다소 전문적이고 특수했다. 정치나 사회제도를 분석하거나 이제는 좀 진부해진 ‘한국의 전통’에 집중하는 글들은 그것의 의의와 시사점에도 불구하고 새롭지는 않았다. 그런데 한국 영화가 좋아서, 한국과 일본의 ‘다른 점’을 발견할 때마다 너무 즐겁다면? ‘사람 이야기’가 흥미로운데, 사는 곳이 한국이라서 한국인들을 좇다 보니 보편적 삶의 진리가 보였다면? 기후변화와 환경위기에 대한 개인적 신념을 설파하고 한국인들의 동참을 끌어내고 싶다면? 이런 글들은 분명히 다를 것이다. 시대가 바뀌었고, 한국 거주 외국인도 다른 ‘세대’가 등장했다는 건 방송과 유튜브 채널에서 이미 감지된 현상인데, 이제 그 영향이 ‘책’에도 미치고 있다. 한번 읽어보자. ‘밀레니얼 세대의 외국인은 한국살이도 남다르네’ 할지도.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왼쪽부터 나리카와 아야, 타일러 라쉬(뉴시스 제공), 다니엘 브라이트 (한겨레출판 제공)
한국 영화에 꽂힌 日기자 출신 나리카와
한·일 문화·콘텐츠 등 소소한 차이 담아
◇‘어디에 있든 나는 나답게’ …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찾을 때마다 재미있어요”= 일본 아사히(朝日)신문 기자 출신으로, 한·일 양국의 문화를 비교하는 글을 써온 나리카와 아야 씨는 “재미있고 즐거우면 이해를 깊게 할 수 있는 계기가 된다”고 했다. 기자를 그만두고 한국 유학길에 올랐던 나리카와 씨에게 그것은 한국 영화였고, 자신의 말처럼 한국에 대한 이해가 깊어졌다. 애정 가득한 시선의 책은 바로 그 결과물이다.
차에 전화번호를 남기는 한국과 명함에도 개인 연락처가 없는 일본을 비교하며 서로 다른 문화 차이를 드러내는 두 나라를 조망하고, ‘겨울 연가’에서 ‘기생충’으로 옮겨 간 새로운 한류 붐에 대한 분석 등 높은 식견과 통찰도 보여준다. 저자는 한국과 일본, 어느 쪽에도 기울지 않는다. 글로벌한 시각에서, 일본의 느린 ‘미투(Me Too) 운동’을 아쉬워하고 한국인들의 지나친 ‘한글 부심’이나 스펙 사회를 우려하기도 한다. 그리고 윤동주와 재일코리안, 다양한 영화 등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에 열정을 바친다. 어느 쪽에서든 ‘나답게’ 사는 것만이 정답이라고 말하듯. “제 인생 목표는 ‘아 재미있는 인생이었다’고 웃으면서 죽고 싶다는 것입니다. 제 인생은 저만 살 수 있어요. 그래서 당당하게 즐기며 살아갈 겁니다.”
‘한국인보다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 타일러
‘친환경적 삶’강조하는 새로운 시각 담아내
◇‘두 번째 지구는 없다’ … “환경을 말하지 않고 누구도 살 수 없어요”= 방송인 타일러 라쉬. ‘한국인보다 한국어 잘하는 외국인.’ 이 말의 원조 격인 그는 유창한 한국어와 해박한 지식, 세계를 바라보는 보다 넓은 관점을 책을 통해 드러낸다. 환경 이슈를 다루는 ‘두 번째 지구는 없다’는 일종의 미래 리포트이기도 하다.
영어 관련 방송이나 비정상회담이라는 교양 예능 프로그램 등을 통해 그를 인지하고 있었다면 이 책이 뜬금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타일러는 이미 2016년부터 세계자연기금(WWF) 홍보대사로 활동하며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알려왔다.
책은 “인간이 만든 시스템을 단단하고 영구적인 것처럼 여기며, 인간이 자연의 일부이며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외면한다”고 지적, 인간에 대한 성찰과 자연을 보는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책은 엄격한 친환경 인증인 FSC 마크를 획득하고 친환경 콩기름 잉크로 인쇄했다. 외교학을 전공한 타일러가 환경 전문가는 아니다. 그러나 책은 꽤 탄탄하다. 기업형 축산업, 대규모 커피 농장, 배송 및 유통 등 커피 한 잔에 얼마나 연쇄적으로 환경 파괴적 산업구조가 작용하는지를 꼼꼼히 살펴본다.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이유로 방송 프로그램에서 자주 외면받는 환경 이야기. 타일러가 잘 드러내지 않았던 진정한 ‘자신’을 드러내는 책이다.
한국학 전공 · 한국인 아내의 영국인 브라이트
시장서 맛본 음식 등 소박한 현실의 삶 그려내
◇“저 마포구 사람인데요?” … “한국이 ‘로망’의 나라는 아니지만…”= 한국인 아내와 아들이 있지만 “한국에서 꼭 한번 살아보고 싶었던” 적은 없다. 영국 출신 다니엘 브라이트 씨는 런던에서 한국학을 전공하고, 한국 공기업에서 잠시 일한 적이 있다. 그러나 사실 ‘로망’이 있는 나라는 이탈리아라고. 그런 그에게 한국은 ‘현실의 삶’ 그 자체다. 책 역시 거대한 담론이 아니라 소박한 삶을 담았다. 제육볶음, 김치찌개 등 시장통에서 맛본 음식과 음식에 얽힌 사람들의 이야기, 서울사람들도 잘 모르는 마포구의 구석구석에 깃든 ‘스토리’를 푼다. ‘한국적 일상’ 그 자체다. 문장은 놀라울 정도로 수려해 책 표지를 다시 보게 된다. 번역은 없다. 브라이트 씨의 오랜 꿈 중 하나가 소설가였다는데, 수긍이 간다. 2012년 교환학생으로 왔을 때도 매일같이 소설을 쓰며 외로움을 견뎠다고. “요리를 정말 좋아하는데요, 함께 나눠 먹는다는 기쁨이 크잖아요. 제가 영상 콘텐츠를 만드는 것도 ‘함께 본다’는 즐거움 때문인데, 글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죠.” 그는 지금 ‘단앤조엘’이라는 유튜브 채널을 운영 중이다. 사람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는 이 채널은, 한국 거주 외국인들이 쉽게 상상하는 ‘한국스러운’ 콘텐츠의 한계를 넘었다는 평을 받는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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