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와 시각>文대통령의 ‘비겁한’ 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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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민 전임기자

‘검찰총장 직무 정지’라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는데도 문재인 대통령은 무슨 일인지, 왜 그랬는지, 어떻게 된 건지, 아무런 설명이 없다. 애당초 추미애 법무부 장관에게 친절한 설명을 기대하지 않았다. 추 장관은 24일 오후 6시 넘어 서울고검 기자실에 불쑥 나타나, 준비된 원고를 15분간 낭독했다. 질문이 쏟아졌지만 단 한마디 대꾸도 없이 사라졌다. 그는 그런 사람이다. 추 장관의 ‘무례’에 기자실 한쪽에서 욕설이 터져 나왔다.

추 장관이 윤석열 총장 직무 정지의 사유로 든 6가지는 하나하나가 사리에 맞지 않는 주장들이다. 정치권과 법조계에서는 장관의 권력남용이고, 적법절차 불이행이며, 법치 훼손이자 민주주의 파괴라는 평가가 쏟아진다. 이런 일을 청와대와의 교감 없이 단독으로 결정했다는 건 납득할 수 없는 일이다. 문 대통령의 지시나 묵인이 없으면 불가능하다고 보는 게 상식적 판단이고 합리적 추론일 것이다. 박형준 동아대 교수는 페이스북에 “청와대 감독, 추미애 주연, 이낙연 조연의 ‘윤석열 내쫓기’ 드라마”라고 썼다.

하지만 이틀이 지난 지금까지 ‘검찰 초유의 참(慘)’에 대해 인사권자인 대통령의 설명이 전혀 없다. 국정 운영과 관련한 대형 사건이나 이슈가 생겼을 때 못 본 척, 못 들은 척 침묵을 지키고 은근슬쩍 넘긴 일이 한두 번이 아니다. 탈원전 정책과 관련한 월성 1호기 경제성 조작 논란, 김해신공항 백지화 논란 때도 그랬다. 2017년 대선 판도를 바꿨을 수도 있는 드루킹 댓글 여론 조작 사건, 검찰 공소장에 청와대 7개 기관이 간여한 것으로 돼 있는 울산시장선거 개입 의혹 사건에도 모르쇠였다. 대통령의 이런 행태는 정치적 부담을 피하기 위한 생존술이겠으나, 비겁하다.

대신 대통령은 자신의 스타일과 이미지를 분식(粉飾)하는 데 도움이 될 만한 일에는 예외 없이 ‘숟가락’을 들고 나타났다. 빌보드 메인 싱글 차트 1위를 차지한 BTS를 청와대로 불러 생색을 냈고, 국내 첫 코로나 사망자가 발생하고 환자가 급증한 긴박한 상황에서 아카데미 작품상을 탄 영화 ‘기생충’팀과 짜파구리를 먹으며 파안대소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이렇게 약속했다.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는 대통령이 되겠습니다. 주요 사안은 대통령이 직접 언론에 브리핑하겠습니다. 퇴근길에는 시장에 들러 마주치는 시민들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겠습니다. 때로는 광화문광장에서 대토론회를 열겠습니다.…”

하지만 대통령은 국민과 수시로 소통하지 않았다. 퇴근길 시민들과의 격의 없는 대화도, 광화문광장 대토론회도 없었다. 직접 언론에 브리핑했던 사례는 신년회견 이외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책임감 있는 국정 운영은 국민을 향한 친절한 설명에서 시작된다. 그게 미국과 유럽 선진국 정치 지도자들의 품격이기도 하다. 본시 책임(responsibility)은 ‘설명 능력’을 뜻한다. 국민이 궁금해하는 국정 현안에 대해 ‘무엇이, 왜, 그리고 어떻게’를 말해주는 것이다. 설명하지 않는 경우는 두 가지다. 사망하거나 비겁하거나. 사자(死者)에게 책임을 묻지 않는 건 그가 설명 능력을 상실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침묵은 비겁한 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