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나리’의 한국어는 어떤 외국어보다 깊은 ‘마음’의 언어였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1일 영화 ‘미나리’로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서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은 정이삭 감독이 딸을 품에 안고 비대면 화상 인터뷰를 통해 소감을 말하고 있다.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 ‘미나리’ 정이삭 감독

“제 딸이 이 영화를 만든 이유
일곱살 딸의 눈으로 세상보고
그때 느꼈던 것 되새기게 돼

지금과 같이 힘든 시기에는
사랑의 언어 쓰는 법 배우길”

“제 딸이 ‘미나리’를 만든 이유입니다.”

정이삭(리 아이작 정·43) 감독의 ‘미나리’가 미국 골든글로브 최우수 외국어영화상을 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했지만 ‘기생충’의 엄청난 행보를 떠올리게 하는 의미 있는 수상이다. 이로써 15일 후보작을 발표하는 아카데미상(오스카) 도전에도 청신호가 커졌다. 워낙 평단과 관객의 평가가 좋아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과 남우주연·여우조연상 등 주요 부문에 후보로 지명될 것으로 예측된다.

1일 비대면으로 진행된 제78회 골든글로브 시상식에 어린 딸과 함께 동영상으로 참여한 정 감독은 “‘미나리’는 가족의 이야기이고, 그 안의 언어는 마음의 언어(Language of the heart)”라고 소감을 밝혔다. 정 감독의 딸은 “내가 기도했다”며 아빠의 품에 뛰어들었다.

미국 땅으로 간 한국 가족의 정착 과정을 보여주는 ‘미나리’는 정 감독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의 주요 모티브이자 배우 윤여정이 연기한 할머니 순자는 실제 정 감독의 기억 속 할머니를 투영시킨 캐릭터다. 그는 지난달 26일 국내 언론과 가진 화상 인터뷰에서 할머니에 대한 질문을 받자 울컥하며 “인천 송도에서 교수 생활을 할 때 갯벌에서 조개 캐는 나이 든 여성들을 보면 할머니 생각이 많이 났다. 6·25전쟁에서 남편을 잃고도 홀로 자식을 키운 할머니가 안 계셨다면 ‘내가 여기 있을 수 있을까’ 싶어 할머니를 생각할 때마다 눈물이 난다”고 말했다.

그런 할머니 아래서 태어난 아버지는 미국으로 건너간 후 19년간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며 타지 생활을 꾸려갔다. ‘미나리’ 속 가족이 병아리 감별사로 일하며 생계를 꾸리는 모습은 정 감독이 어린 시절 보던 풍경이었다. 그리고 할머니와 애틋한 추억을 쌓는 손자 데이비드는 정 감독 자신이었던 셈이다. 그는 “딸이 일곱 살이 됐을 때 딸의 눈으로 세상을 보기 시작했고 딸의 나이 때 느꼈던 것을 되새기게 됐다”며 ‘미나리’를 만들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도 했다.

할머니와 부모를 통해 내리사랑을 받은 정 감독은 이제 아버지로서 딸에게 그 사랑을 전하는 동시에 그의 부모 세대가 느꼈을 감정을 영화를 통해 구현했다고 볼 수 있다. 수상 소감에서 “‘미나리’의 언어는 영어 혹은 그 어떤 외국어보다 깊은 마음의 언어다. 특히 올해 같은 때에 모두가 이 사랑의 언어를 말하는 법을 배웠으면 한다”고 말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미나리’가 한국어 대사를 고수한 것 역시 소통의 도구로서 언어가 가지는 역할 이상에 무게를 둔 결정이었다. 미국 CNN은 이날 ‘영어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미나리’, 그렇게 되지 않은 이유’라는 기사에서 “정 감독은 투자가 안 될 것을 고려해 영어 버전의 시나리오도 썼지만 한국계 미국인 프로듀서인 크리스티나 오가 정 감독의 비전을 지지했고, 정 감독도 그런 프로듀서를 믿었다”고 전했다. 이어 정 감독의 말을 빌려 “‘미나리’에도 영어 대사가 있으나 (한국인) 가족이 집에서 한국어로 말하는 것은 영화에 복잡하고 미묘한 차이를 보탰다”고 강조했다.

안진용·김인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