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지식포럼>통치자 뜻을 “국민의 명령” 호도… 인기영합 정치로 권력 유지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래픽 = 하안송 기자

■ ‘文 정부 민주주의’의 반민주성 탐구 - ② ‘국민의 뜻’과 포퓰리즘

국민을 내 편 - 네 편 가른 뒤
적개심 극대화시켜 적폐몰이
군중심리 동원해 新계급투쟁

자기편 인기 모아 권력 잡고
선심성 ‘좌파 포퓰리즘’ 구현
다수의 폭정에 민주주의 파괴

‘국민의 뜻’, 즉 여론은 양면적 속성을 갖는다. 김영평·최병선 교수 등 7명의 행정학자가 쓴 ‘민주주의는 만능인가’(가갸날, 2019)는 ‘국민의 뜻’에 대해 “민주주의의 척도가 될 수도 있지만 때로는 중우정치나 인기영합주의 정치로 흐를 위험성을 내포한다”고(145쪽) 밝혔다. 국민의 뜻을 앞세운 정치가 자칫 포퓰리즘으로 빠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신형독재 혹은 문민독재에 빠진 지도자들이 입에 달고 사는 말이 ‘국민의 뜻’이다. 문재인 정권이 바로 그렇다. 문화일보와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저술팀이 협업으로 진행하는 ‘문 정부 민주주의의 반민주성 탐구’는 두 번째 주제로 문 정권이 내세우는 ‘국민의 뜻’ 속에 배태된 포퓰리즘적 속성을 분석한다.

◇포퓰리즘과 민주주의

포퓰리즘과 민주주의는 다르다. 민주주의는 국민의 의사를 ‘존중’하는 정치체제다(앞의 책, 129쪽). 존중하되, 실제적으로는 천차만별의 견해와 생각을 가진 국민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그것의 실체에 가까운 것을 찾기 위해 토론과 비판의 과정에 의존한다. 제대로 된 토론과 비판이 이뤄지면, 포퓰리즘 정책과 프로그램들은 살아남기 힘들다. 반면 포퓰리즘은 대중의 인기에 ‘영합’한다(앞의 책, 129쪽). 이는 대중영합주의적인 정치인이 다수 국민이 환영할만한 사업이나 프로그램을 공약으로 제시해 정권을 잡거나 정권을 유지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이런 면에서 포퓰리즘은 선동에 기초해 있다. 이성과는 거리가 먼 반(反)이성이다.

민주주의의 위기는 나아가 통치자가 ‘권력자의 뜻’을 ‘국민의 뜻’과 동일시하는 데서 발생한다. 국정 운영 방식을 ‘치자(治者)와 피치자(被治者)의 동일성’에 두는 것은, 독재자들이 국가 권력을 자의적으로 행사하면서도 그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호도할 수 있게끔 하는 여건을 만들어 준다는 점에서 대단히 위험한 발상이다. 독재자는 자기가 하는 일이 국민이 원하는 일이고, 국민이 시키는 일이라고 핑계를 대거나 변명하면 그만이다(앞의 책, 42쪽).

‘치자와 피치자의 동일성’은 J J 루소가 논했듯 통치자가 ‘일반의지’를 국정 운영의 근거로 내세운 것과 흡사하다. 포퓰리즘이 전체주의를 닮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독일에서 가장 민주적인 헌법에 따라 바이마르공화국이 탄생했지만, 카를 슈미트 법 이론의 세례를 받은 나치당은 국민의 감성을 교묘히 이용해 정권을 획득했고, 국민 동원체제를 강화했고, ‘국민의 뜻’에 따라 히틀러 체제를 수립했다. 이를 허용해준 것은 국민의 ‘민주적’ 투표였고 권력이 동원한 논리는 루소의 ‘일반의지’를 닮은 ‘국민의 뜻’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치즘 통치 이론의 기반을 제공한 헌법학적 슈미트는 루소의 제자라 할만하다.

◇좌파 포퓰리즘의 분열적 정치

근대국가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전체주의의 탄생과 좌·우파 포퓰리즘의 출현은 국민이 다수의 뜻을 앞세운 정치권력의 논리에 사로잡히고 앙시앵레짐에 대한 불만이 겹쳐 악마의 유혹에 넘어갈 때, 민주주의가 ‘민주적’으로 붕괴할 수 있음을 웅변한다(앞의 책, 86∼87쪽).

문재인 정권의 국정 운영이 바로 그렇다. 국민을 ‘우(友)와 적(敵)’으로 나누고 군중심리를 동원해 적을 청산해야 할 적폐로 몰아 폭력과 야만을 행사했다. 군중심리의 작동 기제는 원한·분노·앙심 등을 의미하는 ‘르상티망’이다. 독일 나치즘이 유대에 대한 적개심과 르상티망을 극대화하고 이들을 희생양으로 국민 동원체제를 만들었듯, 문 정권도 보수에 대한 적개심을 극대화해 적폐 몰이를 함으로써 위기 때마다 촛불을 동원하며 권력을 유지했다. 슈미트의 정치이론을 계승한 프랑스의 정치학자 샹탈 무페는 자신의 책 ‘좌파 포퓰리즘을 위하여’(문학세계사, 2019)에서 이 같은 정치형태를 특별히 ‘좌파 포퓰리즘’이라 불렀다.

실제로 문 정권 집권 후 4년의 임기 내내 적폐청산 명분으로 내세운 수단과 명분은 ‘국민의 뜻’이었다. 물론 그때의 국민은 ‘촛불’과 ‘적폐’로 분열된 권력 편의적인 ‘촛불 국민’이다. 노재봉 교수 등이 ‘한국 자유민주주의와 그 적들’(북앤피플, 2018)에서 “촛불의 명령을 받았다고 자처하는 문재인 정부는 고도로 사전에 계획되고 조직화한 촛불 대중을 놓고 ‘새로운 국민’으로 호명하고 있다”고 말한 것은 문 정권의 포퓰리즘적 성격을 잘 묘사한 설명이다.

포퓰리스트의 등장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수리가 필요하다는 신호이자, 표준적인 세계관이 고장 났다는 신호이기도 하다(존 주디스, ‘포퓰리즘의 세계화’, 메디치, 2017). 문 정권의 적폐청산은 형식 면으로는 좌파 포퓰리즘이고, 내용 면으로는 정신 분열적인 ‘스키조(schizo) 정치’이며, 본질 면으로는 신형 계급투쟁이다.

◇국가 파탄 재촉하는 포퓰리즘

경제 영역에서의 포퓰리즘도 앞서 설명한 것 같이 ‘국민이 다수의 뜻을 앞세운 권력에 사로잡히고 앙시앵레짐에 대한 불만이 겹쳐 악마의 유혹에 넘어갈 때’(‘민주주의는 만능인가’, 86∼87쪽) 발생한다는 진단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경제적 포퓰리즘을 단순하게 정권이 유권자의 인기를 얻기 위해 돈을 뿌리는 것으로만 생각해선 안 된다. 그 뿌리는 역시 신형 계급투쟁 방식이다. 국민의 뜻을 내세우는 척하며 정치적 반대자나 비판세력을 적폐로 몰아간다는 점에서 그렇다.

예를 들어보자. 문 대통령의 청와대와 정부는 집권하자마자 원전 관련 의혹 몇 개를 꼬투리 잡아 전문가 집단을 ‘원전 마피아’로 몰고 ‘탈원전’을 밀어붙였다. 문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집권 첫해부터 최저임금을 대폭 올리기 위해 자영업자들을 적폐로 몰아갔다. 문 정권과 여권은 거대 노조의 편을 들어 소수 대기업을 악으로 몰았고, 검찰을 무력화하기 위해 무리수를 동원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를 밀어붙였다. 임기 내내 세입자를 편드는 척하며 임대인들을 악마화하기 일쑤였다.

그러나 포퓰리즘 정책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재정적자나 국채 증가, 국가부도 등을 자기 문제로 보지 못한다. 세금이 오르고 요금이 올라야 겨우 반응하기 시작한다. 그 후유증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긴축 재정, 통화 긴축, 대폭 증세 등 ‘뼈를 깎는’ 개혁을 해야 하는데, 달콤함에 빠진 국민은 허리띠를 졸라맬 생각을 하지 않는다. 개혁 조치에 대해 신경질적인 반응부터 보인다. 자신이 누리는 혜택이 어느 사이 청구권, 기득권이 돼 버린 것이다. 정권이든 국민이든 포퓰리즘이란 늪에 한번 빠지면 헤어나오기 힘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무책임은 포퓰리스트에게만 해당되지 않는다. 국민 모두의 책임의식을 하향 평준화한다. 누구도 국가 파탄의 책임을 지려 하지 않는다. 그것은 자신이 해결할 문제도, 자신이 책임져야 할 문제도 아닌 것이다(앞의 책, 132쪽).

◇민주주의의 역설

포퓰리즘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민주주의가 가장 보호해야 할 또 다른 국민에게 폭정을 가한다. 그런데 그 피해는 결국 소수가 아니라 온 국민에게 돌아간다. 포퓰리즘이 민주주의에 반한다고 주장하는 이유다. 민주주의를 가장 위험스럽게 만드는 것은 ‘문 정부 민주주의의 반민주성’ 다음 주제에서 논의될 ‘다수의 폭정(tyranny of majority)’인데, 포퓰리즘은 ‘다수의 폭정’의 전형이다. 문 정권의 민주주의는 명백하게 다수의 폭정에 입각해 있다.

역설적인 것은, 국민이 선거를 통해 집권세력을 결정하는 그 과정에 민주주의의 실패 가능성이 도사리고 있다는 점이다(앞의 책, 222쪽). 오늘날 민주주의를 망치는 최대 주범이 포퓰리즘이라는 사실, 또 그것이 어찌 보면 모순적이고 구조적인 민주주의의 취약점을 교묘하고 기만적으로 파고든 결과라는 사실은 아이러니하다. 이것이 바로 민주주의의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붕괴하며, 신형독재가 출현하는 전형적인 경로다(앞의 책, 224쪽).

허민 전임기자 ·‘민주주의는 만능인가’ 저술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