韓정부 “법인세 인상 계획 없다” 일단 선그었지만…

재정건전성 악화 가속화하면
美압박 명분 삼아 올릴 수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법인세 인상’ 및 재닛 옐런 미 재무부 장관의 “주요 20개국(G20) 차원에서 법인세율 최저한도 인상 논의”와 관련해 정부는 6일 “법인세 인상 계획이 없다”며 일단 선을 그었다. 하지만 갈수록 늘어나는 재정 수요를 감당하기 위해선 증세가 요구되고 부동산 관련 과세에 대한 국민의 저항이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결국 기업을 희생양으로 삼아 법인세 인상이라는 카드를 꺼내 들 수 있다는 관측이다.

기획재정부는 옐런 장관이 G20 차원에서 법인세율 인상을 논의하고 있다는 소식에 대해 “주권의 문제”라며 표면상 부정적인 견해를 나타냈다. 한 관계자는 “자국의 통상 경쟁력을 이유로 다른 나라의 법인세율에 대해 간섭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평가도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정부는 현시점이 법인세 인상 등 증세를 논의하기엔 ‘매우’ 부적절하다는 판단을 하고 있다. 이미 편 가르기 식 조세정책을 추진해온 문재인 정부로서는 법인세 인상까지 추진할 경우 강한 조세저항에 부딪힐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세법개정안을 통해 소득세 최고세율을 인상한 데 이어 ‘부동산 공시가격 현실화’를 통해 소득세·종합부동산세 인상까지 우회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이미 최고세율이 25%에 달하는 법인세율까지 올린다고 할 경우 이는 ‘사실상의 증세’가 아닌 ‘증세’를 정부가 선언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점에서 부담이 크다. 특히 가진 자에 대해선 가차없는 증세를 추진한 정부가 40%에 육박한 근로소득자 면세비율을 줄이는 일에는 소극적인 태도로 일관해 조세 형평성이나 국민개세주의를 해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각종 세액공제와 비과세에 대한 개편을 제쳐 두고 일방적으로 고소득자 과세에만 치우쳐 인기영합적인 조세정책이 아니냐는 의미다.

기재부는 이런 상황을 의식한 듯 법인세 인상에 대한 말을 아끼고 있는 모습이지만 미국의 압력이 현실화하고 재정 건전성 악화가 심해질 경우 결국 법인세 인상 등 기업이나 특정 고소득자에 대한 증세를 단행할 수밖에 없을 것이란 우려가 크다. 연이은 추가경정예산 집행으로 인해 국가 빚이 늘어나는 상황에서 미국의 압박은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 될 수도 있다. 한 재정전문가는 “미국의 법인세 인상 압박은 현 정부의 법인세 추가 인상에 좋은 명분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정민 기자 bohe00@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