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호화폐, 탈세·은닉 악용… 125억 보유한 체납병원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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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고액체납 1566명 적발
676명의 암호화폐 251억 압류

체납자들 “아직 뺄 때 아니다”
매각보류 요청하며 ‘애걸복걸’

“2년만 시간을 주시면 체납 세금 2000만 원을 전부 내겠습니다. 아직은 뺄 때가 아니에요. 매월 0.75%의 중가산금이 추가돼도 좋습니다. 2년 뒤에 추심하면 세금, 중가산금 모두 내고도 남는 돈이 있을 겁니다.”

체납자 A 씨는 최근 서울시로부터 암호화폐 300만 원을 압류당하자 애걸복걸하며 매각 보류를 요청했다. 압류 조치로 인해 암호화폐 처분권이 서울시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는 2년 만에 300만 원을 2360만 원 이상으로 10배 가까이 ‘뻥튀기’ 시킬 자신이 있다고 했다.

서울시 38세금징수과는 장기 고액체납자들에게 암호화폐 압류 사실을 통보하고 납부를 독려하고 있다고 23일 밝혔다. 시는 주요 암호화폐 거래소 3곳과 협업해 고액체납자 1566명을 찾아냈다. 이 중 즉시 압류가 가능한 676명의 암호화폐 251억 원을 압류했다. 이들의 총 체납액은 284억 원이다. 그 과정에서 A 씨처럼 ‘장밋빛 미래’를 기대하며 추심을 미뤄달라는 요청이 쏟아졌다.

또 암호화폐 거래가 막히자 자진 납부하는 체납자들도 대거 등장했다. 예컨대 이번에 압류된 체납자 중 가장 많은 암호화폐(125억 원)를 보유한 병원장(40대)은 10억 원의 체납세금 중 5억8000만 원을 돌연 즉시 내고, 나머지 금액은 납세담보를 제공했다. 그러면서 암호화폐 매각을 보류해달라고 요청했다.

시 관계자는 “앞으로 암호화폐 가치가 더 오를 것으로 기대하고 체납세금을 납부해 압류를 푸는 것이 더 이익이라고 판단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번에 적발된 고액체납자들이 가장 많이 보유한 가상화폐는 △비트코인(19%) △드래곤베인(16%) △리플(16%) △이더리움(10%) △스텔라루멘(9%) 등으로 나타났다.

시는 암호화폐 거래소 14곳에 추가로 고액체납자의 암호화폐 보유자료를 요청했다. 시는 지방세 관계 법령에 따라 정당하게 자료 요청을 했음에도 자료제출을 미루는 거래소에 대해선 법적 조처를 할 예정이다.

이병한 서울시 재무국장은 “최근 암호화폐 가격 급등으로 큰돈을 벌면서도 유형의 실체가 없는 틈을 이용해 재산은닉 수단으로 악용하는 고액체납자들이 있다는 정보를 입수, 신속하게 압류 조치를 취했다”며 “끝까지 추적해 반드시 징수함으로써 조세정의를 실현하겠다”고 강조했다.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