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 기술에 좌우돼선 안돼…진화위해 더 많은 실험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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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화미래리포트 2021 - 디지털 전환과 민주주주의

1세션 - 21세기 민주주의 지속 가능한가

런시먼 “디지털 민주주의, 기술에 끌려가지 않고 끊임없이 질문해야”
프리든 “세계적인 양극화 해결 위해선 국제 정치와 경제의 통합 필요”
김대식 “AI 등장으로 ‘필터버블’에 갇혀”…기술혁신 통해 소외 해소

‘21세기 민주주의 지속 가능한가’를 주제로 24일 서울 중구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열린 ‘문화미래리포트(Munhwa Future Report) 2021’ 제1세션 강연에서 석학들은 디지털 기술이 민주주의에 끼치는 긍정적·부정적 영향을 균형감 있게 평가하며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확인할 실험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디지털 기술이 반세계화와 양극화를 부추겼다는 부정적 관점을 제시하며 민주주의의 기능을 회복해 형평성 등을 확보해야 한다는 주장도 내놨다.

기조연설을 맡은 데이비드 런시먼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민주주의를 디지털화할 것인가, 디지털을 민주주의화할 것인가’를 주제로 기술과 민주주의의 상관관계에 대한 통찰력을 내놨다. 국제 경제 전문가인 제프리 프리든 하버드대 교수는 기술의 발전이 초래한 양극화의 심각성을 짚으며 민주주의를 통해 문제점을 보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험 통한 민주주의 유연성 확대 = 런시먼 교수는 민주주의는 기술을 기다릴 필요 없이 기술을 형성하고 통제할 수 있으며, 민주주의가 기술에 좌우돼선 안 되고 해법을 찾기 위한 수단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30년간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었는데 민주주의만 제자리”라면서 민주주의 방식을 바꾸기 위한 실험이 계속되지 못한 문제를 지적했다. 런시먼 교수는 “우리는 여전히 20세기 민주주의 모델에 갇혀있다”면서 그 이유로 “디지털 민주주의는 기술 자체에 주도되는 게 아니라 질문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것인데 이런 실험을 두려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험의 한 예로 길거리 시위와 같은 거리의 정치를 거론했다. 그러면서 “민주주의의 특성은 무작위성에 있고, 엘리트만 민주주의를 이끄는 게 아니라 일반인, 비정치인도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민주주의는 굉장히 유연(flexible)하다”고 강조하면서 “우리가 실험하면 할수록 민주주의가 더 유연해진다”고 전망했다.

◇보상·대의 실패가 초래한 반세계화·양극화 = ‘정치, 양극화 그리고 팬데믹: 국제 경제 질서의 미래’를 주제로 강연한 프리든 교수는 세계화 과정에서 나타난 △보상의 실패(경제 성장 결과로 등장한 패자에 대한 정부의 보호 실패) △대의의 실패(기득권층 이익만을 대변)가 민주주의의 실패로 이어졌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이 과정에서 전 세계적으로 반세계화 열풍이 불었고 각국 정당시스템이 위기를 맞는 등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양극화된 상태에 놓였다는 주장이다. 민주주의가 가장 안정적이라는 미국에서도 위기가 나타났고 그 분수령으로 2016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을 꼽았다. 중국에 무역전쟁을 선포하고 다자주의의 상징과도 같은 파리기후협약을 탈퇴한 일 등이 이어졌다는 것이다. 영국에서도 유럽연합(EU)의 탈퇴를 결정한 브렉시트가 발생했다. 프리든 교수는 “같은 팬데믹을 경험하면서 양쪽 진영이 서로 다른 교훈을 얻고 있다”면서 “한쪽은 국제 협력의 필요성을 재확인했지만, 다른 한쪽은 팬데믹에 대응하며 정부가 얼마나 비대해졌는지 확인했음을 주장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극화를 해결하기 위해선 국제 정치와 경제의 통합이 필요하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기술의 혁명을 통한 평등 추구 = 토론 패널로 나선 김대식 카이스트 전기 및 전자공학부 교수는 인공지능(AI)의 등장으로 사람이 ‘필터버블’ 안에 갇히고, 공통의 현실을 공유하지 못하게 된 상황을 지적했다. 그는 “사람들이 공통으로 인지하고 있는 일련의 현실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AI 기술이 도입되면서는 공통의 현실을 공유하지 않는다”면서 “현실이 조각조각 분산돼 수백만 개의 작은 현실로 산산조각났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다른 사람이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다는 걸 인지하지 못하고 토론하지 않는다”면서 “우리는 민주주의적 절차에 대한 신념과 믿음을 갖고 있지만, 필터버블에 갇혀 있어서 현실을 인지하지 못하니 조각조각 나지 않은 현실을 다시 합쳐서 인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프리든 교수는 “양극화, 사회적 분열이 오늘날 민주주의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면서 “기술 혁신을 통해 소외된 사람들의 우려를 해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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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상 및 대의의 실패 = 제프리 프리든 하버드대 교수가 언급한 ‘보상 및 대의의 실패’는 경제 개발과 세계화로 나타난 승자와 패자 사이에서 특히 패자에 대한 보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부유층·기득권이 민주주의를 대표하게 된 상태를 지적한 개념이다. 경제 개발에 따른 승자들은 자신들의 세계가 계속해서 발전하기를 바라며 패자들을 철저히 소외시켰고, 국가가 소외된 자들을 제대로 보호하지 못했다는 비판적 시각이 담겼다.

필터버블(Filter bubble) = 김대식 카이스트 교수가 언급한 ‘필터버블’은 대형 인터넷 정보기술(IT) 업체가 개인 성향에 맞춘(필터링된) 정보만을 제공해 비슷한 성향의 이용자를 한 버블 안에 가두는 현상을 말한다. 기업은 이용자가 좋아하는 것 위주로 정보를 제공하고 이용자는 필요한 정보만 받게 되는 것이다. 필터버블의 위험성은 자신의 생각과 비슷한 것만 보게 돼 인식이 왜곡될 수 있다는 데 있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을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가 생기고 공통의 현실 인식을 갖기 힘들어진다.

김유진·송유근·윤명진·조재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