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아시아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 시작됐다

美 아프간 철군으로 ‘힘의 공백’
中 “재건에 건설적 역할 할 것”
러 “아프간 정치세력과 접촉중”

미국이 20년 만에 아프가니스탄에서 철군하면서 ‘힘의 공백’이 생긴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그레이트 게임’이 시작됐다. 19세기 영국과 20세기 러시아에 이어 21세기 미국까지 장악에 실패하며 ‘제국의 무덤’이라는 평가를 받는 아프가니스탄에 이번에는 중국이 손을 뻗을 가능성이 높아졌다. 이런 가운데 미·중·러 외무장관이 16일(현지시간) 아프간 상황과 관련해 연쇄 통화에 나서고, 유엔과 유럽 주요국들이 테러 및 난민 확산 우려를 표명하는 등 국제사회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王毅) 중국 외교 담당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 세르게이 라브로프 러시아 외무장관은 이날 연쇄 양자 전화회담을 통해 아프간 문제를 논의했다. 미 국무부는 “블링컨 장관이 왕 부장과의 통화에서 안보 상황과 함께 미국인·중국인의 안전한 귀환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다. 당장 현지에 남아있는 미국인들의 안전한 탈출에 방점을 두고 경쟁국인 중국에 협조를 요청한 셈이다.

반면 중국과 러시아는 유라시아에서 미국의 영향력 약화를 활용하기 위해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중국 외교부 측은 탈레반의 카불 함락 뒤 성명에서 “우리는 아프간 재건에서 건설적 역할을 하겠다”면서 일대일로(一帶一路, 육·해상 실크로드) 사업의 확대 가능성을 시사했다. 러시아 라브로프 장관도 이날 블링컨 장관과의 전화통화에서 “치안 유지를 위해 아프간 정치세력과 접촉하고 있다”고 밝혔다. 라브로프 장관은 중국 왕 부장과의 통화에서 ‘중앙아시아에서 중국의 군사·경제적 입지 강화를 수용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유럽 주요국과 유엔은 테러와 난민의 확대를 우려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이날 “아프간이 과거와 같이 테러의 성지가 돼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임정환 기자 yom724@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