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일러스트 작가 이정호
■ 일러스트 작가 이정호와 함께 되돌아본 ‘한국인의 마음’
뇌과학자부터 작가·뮤지션까지
다양한 인물 통해 ‘우리’를 찾아
마지막 ‘행복’편만 인물 생략해
빛·어둠사이 오묘한 그림자 표현
“나르시시즘 편이 가장 인상 깊어
온전한 자기파악은 불가능한듯
내면의 거울에 균열 생기기전에
마음 살피고 점검하는 노력 중요”
지난 10월 5일부터 26일까지 총 7회에 걸쳐 연재된 ‘한국인의 마음-우리를 이해하는 7개의 질문’은 뇌과학자, 정신과 전문의, 소설가, 프로파일러, 배우, 뮤지션 등 다양한 인물을 통해 ‘우리’를, 그리고 ‘나’를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또, 전문적이면서도 개인적 경험까지 녹아든 인터뷰는 이를 토대로 그려진 일러스트(삽화)와 함께 게재돼, ‘읽고 보고 생각하고 느끼는’ 다채로운 체험을 선사했다.
우울, 분노, 나르시시즘, 콤플렉스, 집착, 번아웃과 열정, 행복이라는 7개의 키워드에 맞춰 매회 새로운 ‘마음’을 그려 준 이정호(사진) 작가와 최근 서면으로 대화를 나눴다. 인터뷰이 7인의 말을, 기자들의 글을, 누구보다 꼼꼼히 듣고 읽었을 이 작가와 함께 ‘한국인의 마음’을 다시 들여다본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마음-우리를 이해하는 7개의 질문’ 중 걸그룹 출신 뮤지션 핫펠트를 인터뷰한 ‘번아웃과 열정’ 편의 일러스트(큰 사진). 화려한 조명 아래 태엽이 멈춘 인형으로 주제를 전달했다. 왼쪽 위부터 시계 반대방향으로 우울·분노·나르시시즘·콤플렉스·집착 편의 일러스트. 아래는 행복 편. 이정호 작가
“시리즈 개요를 받고 반가웠어요. 여러모로 관심 가는 분야였거든요. 인터뷰이들이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지 궁금하고 기대가 됐습니다.” 이 작가는 몇 해 전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개정판 작업을 맡게 된 계기로 정신세계의 여러 현상에 대해 많은 관심을 두게 됐다고 했다. 그는 “작업에 좋은 영감을 주는 영역이기도 하다”면서 “작업과 무관한 일상에서도 마음과 정신 건강의 중요성을 새삼 깨닫게 되는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7편의 일러스트 중에는 보자마자 주제를 알 수 있는 작품도 있고,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한 것도 있다. 예컨대, 이수정 프로파일러가 분석한 ‘분노’ 편(문화일보 10월 7일자 15면)은 폭발하는 화산 앞에 서 있는 한 인간을 그렸다. 매우 직관적이어서 이해가 쉽고, 주목도도 높았다. 한편, 하지현 정신과 전문의의 조언을 구한 ‘집착’ 편(10월 19일자 14면)은 겹겹이 쌓인 삼각형 형태의 구조물을 돋보기를 통해 응시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이 삼각형은 한국인들이 ‘투자’로서 집착하는 자녀의 사교육이면서, 부동산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 일상이 무너질 정도로 중독된 개인 저마다의 것일 수도 있다. 다층적이어서, 볼 때마다 새로운 시선과 생각할 거리를 줬다.
이 작가는 “감정을 색으로 치환해보라고 하면 대부분 분노를 적색 계열에서, 우울을 청색 계열에서 연상한다”면서 “보편적인 감각을 단순 재생시키는 이미지는 상투적으로 보일 수 있고, 그것으로부터 너무 멀리 벗어나면 본문과 따로 놀거나 난해해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이 작가는 ‘한국인의 마음’을 작업하며, 그 두 지점 사이에서 균형을 맞추는 데 중점을 뒀다고 했다.
시리즈의 시작을 알린 정재승 뇌과학자의 ‘우울’ 편(10월 5일자 13면)부터 걸그룹 원더걸스 출신으로 지금은 뮤지션 핫펠트로 거듭난 예은의 ‘번아웃과 열정’ 편(10월 21일자 14면)까지, 총 6편의 일러스트엔 늘 ‘사람’이 있다. 불 꺼진 창문에 홀로 서 있고(우울), 폭발하는 화산을 바라보며(분노), 연못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들여다본다(나르시시즘·10월 12일자 13면). 또, 깨어진 알에서 나오지 못하고(콤플렉스·10월 14일자 14면), 무언가를 계속 쌓아 올리고(집착), 화려한 조명 아래 멈춰진 태엽 인형이 된다(번아웃과 열정). 그러나 이 작가는 마지막 편인 ‘행복’(10월 26일자 14면)에선 의도적으로 인물을 그려 넣지 않았다. 빈 의자가 마주 보고 있고, 나무 사이로 내려앉은 햇살과 나무가 만들어내는 그림자가 어둠도 밝음도 아닌, 오묘한 빛을 내고 있다.
이 작가는 “인터뷰 내용 중에서 어렵지 않게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했으니. 6개의 아프고 불편한 마음들을 지나, ‘행복’이 진정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 김건종 정신과 전문의의 사색적인 말들이 다시금 생각난다. “햇살이 비치는 것만큼 같은 양의 그늘이 존재하는 게 삶”이라고, “괴로운 걸 다 지워 하얗게 표백된다면 그것은 삶이 아니다”고, “행복은 권위자나 전문가, 타인에게 기댈 것이 아닌 지극히 개인적인 것”이라고, “자기 자신과 친하고, 스스로 잘 아는 데서 출발한다”는 그것. 이 작가의 그림은 이 모든 걸, 말없이 말해주고 있다.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한국인의 마음’은 문화일보 문화부 유튜브에서 동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이 작가는 “사실 모든 ‘마음’들이 다 내 안에 있는 것들이다”고 했다. 그는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해 어느 정도의 ‘집착’이 필요한 직업에 종사하고 있다. “작업이 원하는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으면 화가 나기도 한다”고 했다. 원점에서 일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도 있다. 그럴 땐 무기력하고 우울해진다. “약간의 나르시시즘이 그런 상황을 극복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하죠. 장기간의 프로젝트를 마치고 나서 번아웃의 늪에 빠졌던 경험도 있습니다.” 한 해 두 해 나이를 먹어가는 것 자체가 때론 콤플렉스처럼 여겨진다. 물론, 그러한 일상의 여러 기복 사이에서 선물처럼 주어지는 행복을 짧게나마 맛보기도 한다. “처한 상황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생길 뿐, 모든 마음이 내 안에 상존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거라 생각해요.”
■ 이 작가는…
홍익대 미대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2007년부터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며 다양한 매체와 책에 그림을 그렸다. 2016년 직접 쓰고 그린 첫 작품집 ‘산책’으로 영국 일러스트레이터 협회 AOI가 주관하는 월드 일러스트레이션 어워즈에서 최고영예상을 수상했다.지난해 문화일보 기획 ‘팬데믹 시대의 인문학’과 ‘딥 퀘스천’에도 참여했다.
박동미 기자 pdm@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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