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과 만남은 고통?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힘!

클릭하시면 더 큰이미지를 보실 수 있습니다 ‘여행하는 철학자’ 윌 버킹엄의 신간은 고립과 단절의 시대, 낯선 사람을 환대한 인류의 역사를 찾아 나선다. 저자는 타인에 대한 공포를 뜻하는 ‘제노포비아’가 아닌 낯선 사람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인 ‘필로제니아’의 삶을 살아보자고 권한다. 게티이미지뱅크

■ 타인이라는 가능성│윌 버킹엄 지음│김하현 옮김│어크로스

초기 인류에서 현대인까지
‘낯선 이와 연대’사례 추적

“생소한 만남에 두려움보단
우호·환대의 태도 가져야”

각자도생이 판치는 세상
상생의 의미 다시 일깨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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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들은 저마다의 경계를 그어놓고, 타인이 그 안으로 들어오려 하면 질색한다. 낯선 사람들은 “우리의 통제 너머에, 우리가 가진 힘과 이해력 너머에” 있기에 두려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낯선 사람에 대한 공포인 ‘제노포비아’(xenophobia)는 현대사회를 규정하는 하나의 상징과도 같다. 이런 세태에 반해 영국의 철학자 윌 버킹엄은 ‘타인이라는 가능성’에서 “낯선 이에 대한 두려움은 이야기의 절반”이라며 “낯선 것과의 우호적 관계, 낯선 사람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망”, 즉 ‘필로제니아’(philoxenia)의 삶을 살아보자고 권한다. 모든 새로운 만남에는 “호기심과 두려움, 필로제니아와 제노포비아, 환대와 적의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낯선 사람과 나를 가장 먼저 구분 짓는 건 공간, 그중에서도 ‘집’이다. 집은 인간의 취약함을 극복하게 하는 공간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집은 “인간의 인식에서 특권적 위치를 차지”한다. 같은 30평대 아파트여도 강남 사람들에게 그곳은 부와 성공의 상징이다. 하지만 초기 인류, 아니 불과 30~40년 전까지만 해도 집은 (한국 사회에서는) 공동체를 지향하는 공간이었다. 초기 인류는 “지형상 방어에 적합하면서도 개방된” 장소를 좋아했는데, 이는 예술적·종교적 전통 속에 그대로 남았다. “우거진 수풀, 과일이 주렁주렁 달린 나무, 생선이 풍부한 강, 사람과의 만남을 두려워하지 않는 물 마시러 온 사슴” 등이 낙원으로 묘사되곤 했는데, 저자는 이 “낙원의 꿈”이 특정 환경에 대한 꿈이 아닌 “특정 공동체, 즉 평화로운 공동체에 대한 꿈”이라고 강조한다. 애초부터 인간은 낯섦보다 더불어 “조화로운 삶”을 살고자 했다는 것이다.

낯선 사람에 대한 환대는 세상의 차별과 혐오에 맞서는 길이기도 하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부터 이슬람교 신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는 도를 넘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사는 10대 소녀 유스라 라피키와 그의 가족은 가족회의 끝에 “일주일에 한 번 시내에서 가장 붐비는 교차로에 나가 모르는 사람을 식사에 초대”하기로 했다. 가족들은 “무슬림 가족과 함께 식사를” “이슬람 혐오와 싸워요. 무슬림 가족과 식사해요!”라고 쓰인 피켓을 들었다. 2017년 5월부터 1년간 이어진 이 식사 대접은 무려 50번 이상 이어졌다. 오래전 한 선지자는 “무엇이 신앙인가?”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먹을 것을 내놓고 인사를 나누는 것.” 왜곡된 신앙이 난무하는 세상을 향해 이 단순한 명제를 부르짖는 진정한 신앙인은 몇이나 될까.

환대의 정신이 빛을 발하려면 타인도, 주인도 마음가짐을 새롭게 해야 한다. 과거 몽골 초원 지대에는 까다로운 의례가 있는데, 방문객은 먼저 무장을 해제해야 한다. “집주인이자 보호자의 능력을 신뢰”한다면 당연한 행동이다. 하지만 무기를 기꺼이 내려놓지 못하는 사람이 많다. 그렇게 다툼과 전쟁은 시작된다. 주인은 맞이한 손님들을 최대한 섬겨야 한다. 저자는 ‘오디세이아’를 책 전반에 걸쳐 인용하는데, 이 대목에서는 이타카의 궁전에 페넬로페와 결혼하기 위해 몰려든 108명의 10대 남자애들을 언급한다. “10대 남자애가 얼마나 많이 먹는지 모두가 안다. 우리는 그들에게 너그러워야 한다. 그들은 그저 10대답게 굴고 있을 뿐이다.”

낯선 만남에는 알 수는 없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다는 두려움에 우리는 곧잘 빠지게 된다. 하지만 저자는 얻게 되는 보상이 더 크다고 말한다. 환대의 경험이 쌓이면, 너와 나, 우리에게 내부와 외부의 경계를 넘는 일에 대한 두려움이 줄어든다. 각자도생이 아니라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다. 비록 국경이 엄연히 존재하지만, 그것을 상쇄하고도 남을 “낯선 사람들의 친절”을 경험해 보는 일은 삶의 큰 자산이 된다. 대도시 안에서 이웃을 사랑하는 법도 알려준다. 저자는 17세기 출간된 한 문헌 중 “이웃을 사랑하라, 그러나 울타리는 허물진 말아라”라는 말을 인용한다. “좋은 울타리”는 문턱을 넘을 때 행하는 신뢰의 의례인 셈이다. 그 신뢰는 “외로움의 고통”을 넘어서는 길이기도 하다. 인간은 “혼자보다는 함께 있도록 만들어진 사회적 동물”이다. 타인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것이 숙명이라면, 그것을 희망으로 만드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타인이라는 가르침’은 “연대의 포옹이자, 고된 삶에 대한 공감의 표현”인 환대의 삶이 얼마나 큰 기쁨인지 단단한 논리와 사례로 설명한다. 352쪽, 1만7000원.

장동석 출판도시문화재단 문화사업본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