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논단>50년 내다본 학문 균형발전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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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호 서울대 자연과학대학 학장 생명과학부 교수

2022년은 유엔이 지정한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세계 기초과학의 해’다. 그런데 특이한 점이 있다. 바로 앞에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이라는 말이 추가된 것이다. 이는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유엔이 추구하는 불평등의 해소, 양질의 교육, 빈곤종식 등 17개 분야의 목표를 달성함에 있어서 기초과학이 근간이 됨을 확인함과 동시에, 인류가 해결해야 할 사회문제들의 융합적 성격을 보여주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사회문제의 융합적 성격으로 말미암아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학문의 융합적 접근은 필수적이다. 이미 서구의 대학들은 전공과 무관하게 기초과학을 더욱 강조할 뿐만 아니라 인문사회 프로그램에도 꾸준히 공을 들이고 있다. 전공을 불문하고 인문, 철학, 경제, 문학 등의 커리큘럼을 이수하게 해 강인한 학문의 기본 체력을 기르도록 하는 대학이 늘어나고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공지능(AI) 시대가 우리에게 와 있다. 새 정부의 국정과제에서도 미래기술들을 키워드로 배치해 치열한 과학기술 패권경쟁에 대비하고 있음을 체감한다. 그러나 급변하는 과학기술 세상에서도 학문이 한쪽으로 쏠려 있어서는 안 된다. 메타버스 기업으로의 변신을 선언한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는 심리학 전공자였고 빌 게이츠는 자연과학에서도 가장 인문학적 특성을 갖는 수학 전공자이자 독서광이라는 점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 인재 양성이 당면과제임은 부인할 수 없지만, 코딩·디지털 역량·소프트웨어 활용 기술 배양으로 길러지는 것이 디지털 인재라는 관점은 협소할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하다. 기술이 발전할수록 인간적 창의성은 더욱 중요해질 것임을 우리는 이미 깨닫고 있다. 한 사람이 기술 역량뿐만 아니라 인문학적 소양까지 갖춘 초융합적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그 사람을 키워주는 (또는 안내해 주는) 학문 생태계가 뒷받침돼 있어야 한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학문 생태계에서도 학문 간의 융합과 균형은 건강한 발전을 위하여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고등교육에 대한 투자가 소홀하였음을 지적하고, 인재양성의 중심기관으로서 대학에 대한 투자를 늘려야 한다는 최근의 논의는 뒤늦었지만 반갑다. 그러나 대학과 대학의 연구기능을 과학기술 전담부처에 두어야 한다는 일각의 주장은 우려스럽다. 대학은 과학기술 연구만 하는 곳이 아니라 본질적으로 다양한 학문이 공존하면서 교육과 연구의 혼연일체를 통해 인재를 육성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학문의 다양성과 균형발전을 정책의 중심축 중 하나로 두지 않는다면 기초과학 분야와 인문사회 분야 그리고 지역기반 학문생태계의 고사(枯死) 상황이 벌어질 것이고, 학문 분야의 극심한 불균형이 종국에는 생태계의 붕괴를 초래할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자신할 수 없다.

미래세대는 과학 소양을 가진 인문인재, 인문학적 통찰력을 가진 과학인재가 메타버스 세상에서 공존하며 AI를 통해 소통하는 세대일 것이다. 이러한 세대에게 물려줘야 할 것은 다양한 학문과 지혜가 온전히 공존하는 세상이어야 한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 과학기술교육분과에 향후 5년이 아니라 50년을 바라보는 균형 있는 학문발전 정책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