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가상자산 ‘안보 위협’ 대응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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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인 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석좌교수

가상자산 글로벌 경쟁 본격화
美는 행정명령 통해 공식 대응
러시아·중국도 통화 패권 도전

北은 가상화폐 해킹해 돈벌이
범정부 차원의 종합대책 시급
21일 韓美회담이 협력 출발점

얼마 전 글로벌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가 현금대출을 위한 담보로 가상화폐 사용을 허용했다. 전 세계 100여 개 국가에서는 중앙은행디지털화폐(CBDC)에 대한 검토가 진행 중이다. 전통 금융산업과 정부가 가상자산으로 이동 중이고, 가상자산의 제도권 진입이 머지않았다는 신호다.

글로벌 가상자산 패권 경쟁에서 우위를 차지하기 위한 각국의 제도화 노력도 본격화하고 있다. 국내에서도 새 정부를 향해 신속한 범정부 정책 수립을 통한 제도화 요구가 커지고 있다. 가상자산정책은 가상자산의 이익을 활용하는 동시에 위험을 해소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정부는 예상되는 모든 이익과 위험을 식별하고 비용과 편익을 종합적으로 면밀히 따져봐야 한다.

하지만 국내의 가상자산 위험 논의는 대부분 투자자 위험에 한정되고, 안보 위험은 빠져 있어 국내 가상자산정책 논의는 산업 진흥과 투자자 보호 간 균형 잡기 수준에 머물러 있다. 반면, 미국의 가상자산정책 논의는 혁신과 투자자 보호 외에도 안보와 지속 가능성까지 종합적으로 다룬다. 특히, 안보 이슈는 조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3월 행정명령을 통해 가상자산정책 개발에 본격적으로 나선 이유이기도 하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러시아는 서방의 금융 제재와 국제은행간결제시스템(SWIFT) 퇴출에 대응해 루블화 가치 폭락 전에 가상화폐로 바꿔 자산 가치를 보존함으로써 규제를 무력화했다. 중국은 자국 CBDC인 디지털위안화의 국제화를 통해 미국의 통화 패권을 직접적으로 위협하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의 행정명령은 가상자산이 미국의 경제·안보에 미칠 영향에 대한 포괄적 분석과 대응 계획을 요구하면서, 국가경제위원장과 국가안보보좌관이 함께 CBDC 관련 입법 의제를 대통령에게 보고토록 하고 있다. 대통령이 이들 경제 수장과 안보 수장에게 공동성명을 통해 함께 행정명령을 발표하게 한 것도 가상자산이 안보에 미치는 영향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우리는,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해킹해 가상자산의 안정성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가장 큰 안보 위협 요소인 북한과 마주하고 있다. 북한 해커들은 가상화폐 해킹으로 전 세계에서 수천억 원을 챙겼고, 최근 가상자산 6억 달러가 사라진 게임사 해킹 배후에도 북한 해커 그룹 라자루스가 있었다.

큰돈이 모이고 규제는 약한 가상자산 산업은 쉬운 먹잇감이다. 국내 가상자산 기업과 거래소 대부분이 표적이 된다. 또, 전시에는 전쟁자금 마련, 경제 제재 회피, 경제 혼란 유도를 위한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의 가상자산 시장이 북한 돈주머니가 되거나, 북한이 우리 국민에게서 훔친 가상자산으로 사들인 무기가 전시에 국민을 향해 사용될 수도 있다. 최근 한국군합동지휘통제체계(KJICCS) 해킹을 위한 북한의 간첩 활동에서도 거래소 대표와 한국군 장교 포섭에 가상자산이 사용됐다.

이처럼 가상자산을 둘러싼 국내외 안보 위협은 실존한다. 이 불안 요소들이 국내 가상자산 시장에 존재하는 한 가상자산 패권국가 등의 목표 달성은 쉽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산업 발전이냐 투자자 보호냐를 두고 서둘러 결론을 내릴 때가 아니라, 안보 위험까지 포괄하는 진정한 범정부 차원의 종합적인 논의 시작을 서두를 때다. 새 정부의 국가안보실에 신설될 경제안보비서관과 사이버안보비서관, 관련 민관합동위원회도 이 논의에 참여해야 한다.

오는 21일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포괄적 전략동맹 차원에서 공급망 문제와 가상자산 관련 협력 등 경제안보 이슈가 주로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미 가상자산 행정명령에 국제 협력 노력이 포함된 만큼 디지털위안블록에 맞선 디지털달러블록 구축 또는 CBDC 표준 경쟁에서 협력 이슈가 논의될 수도 있다. 이에 대비해 신냉전 시대의 변화한 글로벌 안보 환경, 가상자산을 둘러싼 국내 안보 위협 환경과 과제, 포괄적 전략동맹으로서의 한·미 관계 발전 전망에 근거해 우리 입장을 정하고 양국 간 건설적인 가상자산 협력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범정부 정책 논의의 시작과 미국과의 발 빠른 공조는, 국내 가상자산 업계엔 더 많은 기회를, 투자자들에겐 더 든든한 안전을 보장할 것이다. 아직 늦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