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기 저성장 위기 속 윤석열 정부 과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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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협 경제부장

우크라 전쟁에다 S공포 고조
자고 나면 경제지표 요동치는
최악의 상황에서 새 정부 출범

잃어버린 30년 일본 안 가려면
잠재성장률 최대치로 올려야
民 주도 官 적극 지원만이 해법

세계에서 가장 높은 산은 기준점을 어떻게 잡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해발고도로 따지면, 네팔 에베레스트(Everest)가 8848m로 1위인데 지구 중심에서 떨어진 거리로 계산하면, 에콰도르 침보라소(Chimborazo)가 1위다. 지구 모양이 누워 있는 달걀 형태라 적도 일대가 극 지점보다 더 두껍기 때문이다. 남위 1도에 있는 침보라소는 북위 28도 에베레스트보다 2168m 높게 하늘을 향해 솟아 있다. 해발로는 침보라소가 2580m 낮은데도 에콰도르가 “지구 최고봉을 갖고 있다”고 자랑하는 이유다.

경제는 더 복잡하다. 6일 현재 글로벌 경제가 요동치는 폭은 하루 전보다 더 커졌다. 기준점도 잡기 어려운데 자고 나면 달라져 있다. 성장률, 물가, 금리, 환율을 비롯해 기준지표의 구성 요소도 줄줄이 틀어지면서, 20년도 넘은 경제위기의 기억을 소환한다. 포스트 코로나 채비를 서두르던 와중에 온갖 악조건이 한꺼번에 터졌다. 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에 국제기구와 각국 정부가 세웠던 경제의 기준점과 기본계획 전체가 흔들리는 상황이다. 우크라이나 전쟁의 후폭풍이 세계를 강타했다. 미국의 양적 팽창 완화, 기준금리 인상, 긴축프로그램 가동 시간표를 보면, 연말로 갈수록 그 강도가 심해질 수밖에 없다. 중국 정부의 셧다운 확산 기류는 글로벌가치사슬(GVC) 마비 우려를 키운다. 중국과 경제패권 다툼을 벌여온 미국은 5월 중순 대중 포위 전략을 발표한다. 에너지, 제조업, 유통, 농업 등 전반에 걸쳐 먹고 사는 문제 모두가 위기다.

이런 최악의 상황 속에 윤석열 새 정부가 10일 출범한다. 안팎으로 위협 요인들만 즐비하다. 고물가, 고환율, 고금리 흐름에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 위기”(국제통화기금·IMF 발표) “세큘러 스태그네이션(Secular Stagnation·장기 저성장)이 걱정”(이창용 한국은행 총재)이라는 경고음이 잇따랐다. 원·달러 환율은 1300원대 돌파를 향해 걸어가고 있다. IMF가 전망한 올해 한국 1인당 국내총생산(GDP) 3만4990달러는 대만의 3만6050달러보다 적다. 한국이 10위 경제 대국 타이틀에 안주할 상황이 아니라는 얘기다. 잃어버린 30년의 일본 전철을 밟을 수 있다는 걱정도 커진다.

연간 GDP 성장률은 한은이 2월만 해도 3.0%를 내다보더니 오는 2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는 2%대 중반으로 낮출 가능성이 크다. 세계은행이 발표한 세계 성장률 전망치 3.2%보다 훨씬 밑이다. IMF는 지난달 한국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5%로 내려 잡았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한은 목표치 2.0%를 훌쩍 뛰어넘은 4%대를 내다봤다. 이미 3월 4.1%, 4월 4.8%를 기록했다. 잠재성장률 추락은 더 심각하다. 생산가능인구(15∼64세)가 감소하고, 저출산·고령화 속도가 빨라져 문제다. 문재인 정부에서 관치, 규제가 기업과 개인의 경제적 자율을 침해하면서 잠재성장률 추락이 더 심해졌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2030년 이후 한국의 1인당 잠재성장률이 0.8%까지 떨어질 거로 봤다. 38개 회원국 중 캐나다와 공동 꼴찌다. 이 시점이 윤석열 정부가 끝나는 2027년으로 당겨질 수 있다는 분석도 있다. 잠재성장률은 일단 한번 추세가 무너지면 회복하기 어렵다.

한은 기준금리 역시 한두 달 전까지만 해도 연말 2.00% 안팎을 예상했는데 현재 전망치는 2.50∼2.75%로 치솟았다. 미국이 11월 중간선거를 앞두고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에 나서면서 금리인상을 베이비스텝(0.25%P)에 그치지 않고 빅스텝(0.50%P), 자이언트스텝(0.75%P)을 연달아 밟아 최소 2.50%로 끌어올릴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미 금리 3% 이상을 점친다. 미국과의 금리 격차를 유지하는 데 여력 확보가 여의치 않다. 증시·환율 모두 발작을 일으키는 비상상황에 처할 수 있다. 산업계는 물론, 영끌족·빚투족, 동학개미군단의 부담도 급증한다.

새 정부는 기준점, 기본지표부터 철저히 살펴 필요한 일, 하지 말아야 할 일, 옥석을 정밀하게 가려 리셋에 나서야 한다. 성장 동력 발굴과 미래 게임체인저 산업 육성에 사활을 걸어야 한다. 안철수 인수위원장이 강조한 대로 “자율과 창의가 보장된 민간 주도 경제”가 최소한의 조건이다. 노동 유연성 제고, 혁신 생태계 조성 역시 관건이다.